고등학생이 낸 소설 '만일 DMZ가 무너진다면?'

오문수 2023. 1. 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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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초록 가마우지 노래> 출판기념회 열려

[오문수 기자]

 세 명의 고등학생들이 남북 통일을 희망하며 쓴 소설 <초록 가마우지 노래> 표지 모습
ⓒ 오문수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4일 오후 5시, 서울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 3층에서는 <초록 가마우지 노래> 북뮤직 콘서트가 열렸다. 사단법인 CMAK 음악인협회가 주최하고 도서출판 '성득'이 주관한 행사장에는 작가들의 부모와 지인을 포함해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CMAK 음악인협회에 속한 14명의 음악가들이 노래와 연주를 하는 중간중간에 3명의 고등학생들이 쓴 소설의 일부를 그림과 함께 낭독하는 것.

객석에 앉은 청중들은 음악공연과 함께 고등학생들이 쓴 소설 줄거리가 펼쳐지는 것에 대해 생경해했다. 청중 속에는 세 학생의 부모와 친구, 학교 교사로 보이는 이들도 참석해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고 있었다.
 
 북뮤직 콘서트 시작을 알리며 인사말을 하는 CMAK 정혜경 이사장 모습
ⓒ 오문수
식이 시작되자 마이크를 잡은 CMAK 음악인협회 장혜경 이사장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 대해 소개했다. 사단법인 CMAK 음악인협회는 2009년 피아노, 성악, 기악, 작곡 등 모든 예술인이 함께하는 앙상블 단체로 이름의 첫 글자인 C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Collaboration 즉, 협업을 의미'한다.

세 명의 고등학생이 통일을 기원하며 쓴 소설

고등학생인 김태희, 오명경, 김유정 세 명이 쓴 소설 <초록 가마우지의 노래>는 274쪽짜리 단행본이라 일반인들이 읽기에 부담되지 않은 책이다. 전쟁이나 평화회담을 통해서만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성세대들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다.

<초록 가마우지의 노래>는 굳게 닫힌 DMZ의 철조망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무너지고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상황이 전개된다. DMZ를 지키는 남북한 군인과 화합회에 참가한 남북한 학생들이 서로 지지않으려는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는 섬세한 심리를 묘사했다.

양측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과 갈등은 대화를 통해 해소되고 결국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결론을 통해 하나가 되는 연대감을 그리는 소설이다. 책이 출판되기 전부터 학생들의 집필 소식을 듣고 검토 수정 작업을 도왔던 필자는 학생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깜짝 놀랐다.

한반도의 통일은 정말 어려운 숙제다. 4강에 둘러싸인 현실과 양쪽 기득권 세력들의 이기심 때문에. 그런데 천재지변으로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는 10대들의 발상이 놀랍지 않는가? 역사는 꼭 '필연'에 의해서만 이뤄지지 않고 '우연'에 의해 이뤄지기도 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이뤄진 독일 통일
 
 콘서트 중간 무대에 올라 <초록 가마우지 노래> 출판 후기를 말하고 있는 세 명의 고등학생 작가들
ⓒ 오문수
교사였던 필자는 1990년 여름방학 동안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중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돌아본 후 무너진 장벽을 통해 동독지역을 여행하며 통일된 독일을 부러워했었다. 독일 통일이 예정된 수순에 의한 필연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1989년 동독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자 동독 정부는 동서독 여행자유화 조치문을 발표했다. 여행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내용으로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회유책인데 한 기자가 독일사회주의 통일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귄터 샤보브스키에게 "언제부터 여행자유화 조치가 시행되느냐?"고 묻자 "지체없이 당장 시행된다"고 말실수를 했고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세 명의 작가 중 오명경 학생은 누구보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크다. 북한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부모와 함께 탈북해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남북한 실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명경이의 꿈은 의사다. 의사가 되어 고향 친구도, 친지도 마을 사람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는 그녀의 꿈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빈다. 오명경 학생이 책 말미에 쓴 작가의 말이다

"책을 쓰면서 상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상상은 나와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를 좁혀주는 작은 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통일이라는 주제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은 책을 만드는데 중심 역할을 했던 김태희 학생이 북뮤직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에게 한 감사의 말이다.

"<초록 가마우지의 노래>는 미래 우리나라의 통일을 주제로 써내려간 책입니다. 통일이라고 하지만 거창하다기보다는 주인공 일행 앞에 닥친 고난과 역경이 주 포인트입니다. 통일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 포인트로 잡았고 그 과정에서 주위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작가로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초록 가마우지의 노래>로 첫발을 내딛은 것 같아 기쁩니다."
 
 세 명 작가 중 막내인 김유정 양이 기라성같은 음악가들 속에서 영화 <주토피아> ost인 <힘들어도 뭐든 다 해볼거야>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남북통일이든 작가든 뭐든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절절히 들어있는 고등학생의 마음이 묻어났다.
ⓒ 오문수
김유정 학생은 고2로 셋 중 막내다. 언니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힘을 합쳐 어려운 작업을 마친 김유정 학생은 노래 솜씨도 수준급이다.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이 출연한 무대에 올라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OST인 <힘들어도 뭐든 다 해볼거야(Try Everything)>를 멋들어지게 부르며 관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녀의 말이다. 

"세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것들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하루에도 수백개의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질문에 대한 답을 달며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넓혀온 나의 세상이 담긴 첫 번째 글로 책을 남기게 된 것이 무엇보다 뜻깊은 경험이다."

1년 동안 글쓰기를 지도했던 전신자 교사는 무대에 올라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만든다고 했더니 책을 만들어?라며 주위에서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봤지만 꿈이 이뤄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청소년 작가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청소년기의 꿈과 희망은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장벽 아래 묻히기 일쑤이다. 하지만 그들만이 지닐 수 있는 바람직한 모습과 소중한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청소년 시기에만 빛날 수 있던 별들이 바래고 성인이 되면 어느샌가 잊혀 영원히 사라지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청소년들의 별 중에서 '글쓰기'라는 별을 캐낸다. 이 시기의 별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고 청소년들이 글쓰기라는 별을 빛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이다. '청소년 작가만들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책을 출판한 '성득'의 유미경 대표의 말이다.  

"원래 가마우지는 까만색인데 희망을 노래하자는 의미에서 초록 가마우지로 바꿨습니다. 이 책이 또 다른 꿈을 꾸는 청소년들에게도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 학생 작가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탄생한 <초록 가마우지의 노래>는 2022년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세 학생 작가들의 무한한 미래를 그려본다.
 
 콘서트가 끝나자 고등학생 작가들의 사인을 받는 청중들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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