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병은 뇌의 문제… 감정 기복·우울증과 전혀 달라"
'조울병 명의' 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원명 교수
우리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에게 '조울증이냐?'고 쉽게 물어보고, 단시간에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변화하면 스스로 조울증을 의심한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은 조울증 또는 조울병이라 불리는 양극성 장애를 단순히 감정 기복이 심한 증상 정도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으면 해결되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는 그렇게 단순한 병이 아니다. 양극성 장애 명의 여의도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원명 교수를 만나 친숙한 이름이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울병에 대해 정확히 들어봤다.
양극성 장애는 '조증'과 '우울증'이라는 두 양극을 왔다갔다하는 병이다. 흔히 조울증, 조울병이라고 불리는데, 학술적 명칭은 양극성 장애이다. 상당 기간 우울하거나 들뜨는 기분이 지속되는 정신장애를 말한다. 기분이 저조해 우울한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하고, 들뜨고 아주 좋은 상태를 '조증(mania)'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질환은 고혈압-저혈압, 갑상선 기능 항진증-저하증처럼 한쪽에 치우치지 극단을 왔다갔다하지 않는다. 양극성 장애처럼 양 극단을 오가는 질환은 드물다.
증상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울증이 먼저 나타나기도 하고, 조증이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조증이 먼저 나타나면 언젠가는 우울증이 나타나지만, 우울증이 먼저 나타나면 일반적인 우울증, 즉 '단극성 우울증'인지 조증이 나타나는지 경과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초기 진단이 어려운 병이기도 하다.
-단극성 우울증과 조울병의 우울증이 다른가?
단극성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의 우울증은 완전히 별개의 질환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우울증은 단극성 우울증으로, 증상이 좋아지면 정상이 되고 나빠지면 우울증이 된다. 증상이 좋아진다고 해서 조증이 되진 않는다. 반면, 양극성 장애는 증상이 악화하면 때에 따라 우울증 또는 조증이 된다.
또한 양극성 장애의 우울증은 대부분 청소년기에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40~50대 전업주부 등 나이가 든 사람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으면 단극성 우울증, 청소년기 우울증은 조울병일 가능성이 크다.
증상의 차이도 있다. 단극성 우울증은 불안, 초조, 불면, 입맛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반대로 양극성 장애의 우울증은 대부분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과면증), 너무 많이 먹고(과식증), 만사가 귀찮고 하기 싫은 지체성 우울증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다가 조증이 된다.
-조증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평상시보다 말이 많아지고, 잠들지 않는다. 우울증의 불면증은 자고 싶어도 자지 못하는 것인데, 조증의 불면은 잠을 잘 필요가 없는 상태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잠을 자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하는 거다. 예를 들면 회사원인데 갑자기 미사일을 만들어야겠다고 밤새서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아침에 힘든 게 잠을 못 자서 힘든게 아니라 할 일을 못 해서 힘든 거다.
조증이 나타나면 과대망상, 피해망상도 나타난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면서, 자신이 너무 위대한 사람이라 타인이 질투하고 해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니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며 돈을 마구 쓰는 등 과대행동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반 우울증이 심해지면 양극성 장애가 되진 않나?
단극성 우울증이 아무리 심해져도 양극성 장애가 되진 않는다. 개인차가 큰 병이기에 우울증이 반복되다가 수년 뒤에 조증이 나올 수는 있다. 조증이 계속되다가 우울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초기 증상을 보고 단극성 우울증인지 양극성 장애의 우울증인지 예측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가 노력하고 있고, 일부 예측 지표가 있긴 하나, 이 패턴으로 100% 확진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양극성 장애는 전조 증상이 없나?
대개는 수면패턴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특별히 없다. 초기 증상만으로는 양극성 장애를 알기 어렵다. 살다보면 며칠 잠이 안 올 수도, 수면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양극성 장애는 하루 이틀의 증상만으로 진단하는 병이 아니란 것이다. 조증이 1주일 이상, 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했을 때 진단을 내릴 수 있다.
회사나 대학에 합격하거나, 소풍이나 여행 가기 전 기분이 좋아지는 일, 시험을 잘못 보거나 질책을 받아 우울해지는 일 등은 병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정상이다. '병'으로 진단할 때 중요한 건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과 심각도이다. 특히 기간이 중요하다. 보통 기쁜 일은 2~3일, 슬픈 일도 1주일 정도면 사라진다. 들뜬 기분이 1주일 이상, 우울함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의심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2~3일 이상 기분이 들떠도 주시를 할 필요가 있다.
양극성 장애는 약물치료가 최우선이다. 90% 이상의 환자에게 약물치료가 우선으로 사용된다. 일반인들은 정신과 치료라고 하면 상담치료, 행동치료 등을 생각하는데 이는 외부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불안증이나 공황장애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조울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일반인보다 과하게 또는 적게 분비되어 발생해서 생기는 문제이기에 이를 맞추기 위해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조울병의 약물치료는 다른 정신질환과도 다르다. 우울증은 항우울제를, 조현병은 항정신병약을 쓰면 되지만 조울병은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는 병이라 일반적으로 한 가지 약물만 쓰면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조울증의 치료목표는 우울증도 조증도 아닌 중간인 정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기분조절제를 1차적으로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양극성 장애 약물치료는 기분조절제 외에도 비전형 항정신약물, 항우울제를 사용하는데, 이 약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을 적절히 가감하고 조합해야 하기 때문에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면 가급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중에서도 조울증 전문가에게 치료 받을 것을 권고한다.
-단극성 우울증보다 진료를 자주 봐야 하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대개는 다른 정신질환 진료를 보는 정도면 된다. 또한 증상에 따라 약을 적절히 사용하고, 안정이 되면 한두 가지 약제만 사용하는 방향으로 약의 개수를 줄여갈 수 있다.
-약물치료 시 재발률은 어떤가?
약물치료의 재발률이라기보단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 재발하는 경우가 70~80%이다. 약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거나 주변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듣고는 약을 안 먹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정신과 약에 대해 담당 의사의 말보다 주변 사람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정신과 약은 먹으면 더 안 좋다, 약을 먹지 말고 힘을 내서 이겨내야 한다 등의 얘기를 듣고 약을 먹지 않았다가 망가진 다음에야 병원에 나타난다. 주변에서 정신과 약에 대해 얘기를 하면 '책임질 것이냐'는 말을 해줘라. 전문가인 담당 의사를 믿어야 한다. 환자 주변은 환자를 지지해주는 시스템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약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수 있지 않다.
-하지만 실제 정신과 약을 복용한 환자들이 부작용 후기를 남기는데?
그건 대개 이전에 사용하던 약에 해당하는 얘기이다. 특히 양극성 장애의 경우, 현재 사용하는 주 치료 약제 중 어느 약도 의존성이나 중독성을 가진 약은 없다. 복용 후 체중이 증가하거나 졸음, 손발 떨림 등 부작용이 있는 약물이 있지만, 환자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의사와 상의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의사와 상의를 해라.
어떤 약도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다. 약의 부작용을 정확히 알고 조절해 대처해가는 게 주치의의 사명이므로, 약 복용 후 부작용이 있었다면 의사와 상의를 해 조절해가면 된다.
-증상이 개선되면 약을 중단할 수도 있나?
현대의학에서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는 일부 질환을 빼면 완치가 가능한 병은 없다. 현재 의학의 목표는 관해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일이다. 한 알만 먹어도 양극성 장애를 극복하고 평생 제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게 보약이다. 나이가 들면 건강을 생각해 비타민이라도 챙겨 먹지 않나. 양극성 장애 환자는 처방약을 보약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
-비약물적인 치료로는 양극성 장애를 치료할 수 없나?
양극성 장애는 상담 등 정신치료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환경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악화할 수가 있어 상담치료 등이 필요하지만, 최우선 치료는 약물치료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면 효과는 더 좋다.
-환자가 약을 잘 먹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약을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신과 약물은 증상을 더욱 나빠지게 한다는 편견과 낙인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학회 등에서 양극성 장애에 대한 편견을 해결하고자 다양한 정보를 발행하고 있으니, 환자와 가족들이 이를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불안이나 우울은 가까운 사람이 포옹만 해줘도 나아지지만, 이 병은 그렇지 않다. 양극성 장애는 마음의 병이 아니다. 뇌의 문제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포옹이 약이 되지 않고, 열이 나는 사람에겐 해열제를 먹여야 열이 떨어지는 것처럼 양극성 장애는 약을 먹어 치료해야 한다. 오늘날 양극성 장애는 확실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고, 치료하면 확실히 사회로 복귀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길 바란다.
가톨릭대학교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맥린 병원에서 조울병 및 정신증 프로그램 방문 교수로 근무했으며,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과장을 지내고, 현재 의약품임상시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 회장과 이사장, 대한정신약물학회 회장과 이사장을 지냈다. 우울증과 양극성장애 교과서 초판 및 개정판편찬위원장, 한국형 양극성 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 프로젝트 총괄위원장, 대한정신약물학회 고문, 대한우울조울병학회 고문 등을 맡고 있다.
양극성 장애 등 기분장애와 성인 ADHD, 정신약물학, 조현병 분야 권위자인 박 교수는 대한정신약물학회 윤도준연구자상과 대한우울조울병학회 평생공로상, 대한정신약물학회 공로상·오츠카학술상,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창립 20주년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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