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취 가능성 현저히 낮은 조건에 성취 의제 규정 적용 못해"

허경준 2023. 1. 1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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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성취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조건의 경우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칙에 반해 조건 성취를 방해해도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의제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는 2심 과정에서 'B사가 처음부터 전자제품을 개발 및 양산하는 등 매출을 발생시킬 의사가 전혀 없었던 이상, 신의칙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경우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민법 제150조 제1항에 따라 조건의 성취가 의제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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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애초부터 성취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조건의 경우 조건 성취로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칙에 반해 조건 성취를 방해해도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의제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투자자 A씨가 전자제품 개발·판매업체인 B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A씨는 2007년 B사에 1000만원을 투자하면서 ‘B사가 지적재산권을 통한 매출이 발생하면 수익금의 10%를 투자금 원금을 포함한 5배의 금액이 될 때까지 상환한다’는 내용의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B사 대표는 회사 제품이 곧 출시된다고 전자제품 유통 점주들을 속여 유통점 계약 신청금과 제품 선급금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에 A씨는 B사가 민법상 ‘계약 조건 성취를 방해’한 것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이미 계약 조건을 달성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2017년 투자금의 5배인 5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민법 제150조 1항은 ‘조건의 성취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 성취를 방해한 때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은 A씨와 B사가 맺은 투자협정에서 정한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보고 B사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2심 과정에서 ‘B사가 처음부터 전자제품을 개발 및 양산하는 등 매출을 발생시킬 의사가 전혀 없었던 이상, 신의칙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경우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민법 제150조 제1항에 따라 조건의 성취가 의제된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B사는 투자협정에서 약정한 매출 발생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등 처음부터 조건을 성취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이므로, 이는 신의칙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부당하게 방해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애초부터 매출 발생이라는 조건이 성취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조건의 성취가 의제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란 사회통념상 일방 당사자의 방해행위가 없었더라면 조건이 성취됐을 것으로 볼 수 있음에도 방해행위로 인해 조건이 성취되지 못한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방해행위가 없었더라도 조건의 성취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B사가 본래부터 매출 발생이라는 조건을 성취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방해행위만으로 조건성취가 의제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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