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실태추적]④“전재산 다 날려”…보금자리 빼앗긴 2030청년

류태민 2023. 1.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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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정말 한순간에 일상이 무너졌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살고 있는 빌라에 대한 경매 절차가 진행된다는 통지서를 받게 된 거죠. 저를 포함해 모든 입주민이 전세사기를 당해 거리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술로 밤을 지새우며 종일 울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29세 직장인 최모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건축업자의 사기 행각으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가 쑥대밭이 되면서 최씨의 소중한 보금자리도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최씨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은 총 8000만원. 가족들과 함께 살던 그는 3년 전 생애 처음으로 본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셋집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최씨는 인터넷으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5층 빌라 건물의 물건을 알게 됐고, 2020년 12월 전세보증금을 주고 계약을 체결했다. 5000만원은 대출을 통해 조달했고, 나머지 3000만원은 그가 3년 넘게 생활비를 아끼면서 꾸준히 저축한 소중한 자금이었다.

계약 전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살펴보던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해당 주택에 근저당 1억2000만원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완강하게 주장하는 중개업자를 철썩같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중개업자는 “집주인이 여러 채의 건물을 가진 재력가인데다 본인(중개업자)과 10년 이상 거래해왔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게 없다”라며 “대부분의 주택은 이 정도 근저당을 가진 게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씨는 중개업자가 집주인과 한패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전세 사기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중개업자가 나를 속일 줄은 전혀 몰랐다”라며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가 어려운 용어를 쓰면서 설명하는데 믿고 계약하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비극은 갑작스럽게 닥쳐왔다. 별다른 걱정 없이 1년 반을 살던 그에게 지난해 6월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같은 빌라 내 다른 집들도 동시에 경매절차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해당 빌라는 한 명의 집주인이 모두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집들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것은 집주인이 사실상 파산한다는 의미다. 결국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줄만한 여력이 없다는 뜻이 된다. 이들의 경매사건 번호가 연결됐다는 것을 알게 된 최씨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고, 황급히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순위인 근저당과 세금 총액이 낙찰대금에 필적하다 보니 사실상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근저당이 잡혀있는 탓에 최씨는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일대 빌라·도시형 생활주택이 대거 경매매물로 쏟아지면서 경매 유찰이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찰이 거듭될수록 최저 낙찰가격은 낮아지는 탓에 최씨가 받을 수 있는 전세보증금의 액수는 더욱 줄어드는 셈이다.

최씨는 집이 경매에 넘어간 탓에 언제 이사를 가야할지 모르는 데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조차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속이 울렁거려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하루 종일 눈물만 났다”라며 “어쩌다가 청춘을 바쳐가며 열심히 번 돈으로 사실상 이들의 빚을 갚아주는 꼴이 됐는지 한스럽다”라고 토로했다.

그의 바람은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것뿐이다. 최씨는 “수천만원의 대출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가진 재산을 모두 날렸다 보니 개인회생 신청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주변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라며 “대책 방안이 마련돼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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