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늘푸른 모습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한 나무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는 늘 겨울이지요. 새해에 대한 희망과 추위가 함께라서 뭔가 긴장감이 있는 1월입니다. 이 긴장감이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기도 하겠지요.
아직 봄이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따듯하게 입고 산책하러 나가보면 공원이나 숲속에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꽤 눈에 많이 띕니다. 분명히 나무는 겨울을 맞아 잎을 떨어뜨린다고 배웠는데 저 나무들은 뭐지? 하고 의문이 생기지요. 그런 나무들을 ‘늘푸른나무(상록수·常綠樹)’라고 합니다. 늘푸른나무들은 소나무·잣나무·주목·측백나무·향나무와 같이 주로 바늘잎나무(침엽수)들이 많지만 간혹 넓은잎나무(활엽수) 중에도 사철나무·동백나무처럼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이번 호에서는 늘푸른나무 중에 소나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나무는 동양화에서 1월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해서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것 같네요.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왜 좋아할까요? 알다시피 겨울이 되어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푸른 기백을 유지하기 때문에 강인한 선비의 기상을 나타낸다고 해서 좋아했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생물을 그린 십장생도(十長生圖)가 있지요. 거기에도 소나무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에 소나무가 등장해요.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신적인 부분만 따지는 게 아니고,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나무는 건축재로 많이 사용됩니다. 단단하면서도 가공하기도 쉽고 줄기에서 나오는 송진 성분 때문에 벌레가 잘 먹지 않아서 한번 집을 지으면 오래가죠. 예로부터 궁궐을 짓거나 절을 지을 때 목재는 어김없이 소나무를 사용했어요. 장롱이나 반닫이 등의 가구에도 많이 썼죠. 난방용 장작으로도 활용됐고요.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해지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습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있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풀뿌리(초근)와 나무껍질(목피)을 먹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때 언급되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입니다. 소나무의 속껍질 부분을 먹었던 것인데요. 타닌 성분이 있어서 똥을 눌 때 고생을 좀 했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말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또, 송편 만들 때 솔잎을 넣는다는 것 알죠. 송편의 송이 소나무 송(松)자랍니다. 편은 떡을 의미하고요. 떡 속에 솔잎에서 발산되는 소나무의 정기(精氣)를 침투시킨 건데요. 이런 송편을 먹으면 소나무 정기를 체내에 받아들여 소나무처럼 건강해진다고 여겼죠. 떡에 솔잎의 향을 입힌 것이기도 하고요. 솔잎은 날것 혹은 말려서도 활용이 가능하고 쪄낸 뒤에 말려서 가루를 내 요리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엔 사람이 태어났을 때 문 앞이나 길 어귀에 ‘금줄’을 건너질러 쳤어요. 금줄은 부정(不淨)한 것을 막기 위해 매는 새끼줄인데, 이때 솔가지를 끼워요. 간장독에도 금줄을 치기도 했죠. 간장을 새로 담았을 때 간장 맛을 좋게 하고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에요. 이 밖에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소나무가 사용되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인 거죠.
그런데 소나무는 어떻게 잎을 달고서도 추위를 견디는 걸까요? 바늘잎나무들은 잎을 가늘고 도톰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잎 속에 잘 얼지 않는 부동액 같은 물질을 갖고 있죠. 그렇다면 왜 추운데 굳이 잎을 달고 견디는 걸까요? 세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는 한 가지 방법으로 사는 게 아니고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요. 잎지는나무(낙엽수)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광합성을 열심히 하고 가을부터 겨울은 쉬는 것을 선택한 거고, 늘푸른나무들은 적은 양이지만 꾸준하게 조금씩 광합성을 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소나무는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푸른빛을 유지하는 겁니다. 많은 나라에서 늘푸른나무들의 강인함을 신성시했어요. 금줄에 솔가지를 끼우는 것도 소나무의 강인함으로 나쁜 기운을 막아내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모두 잎을 떨어뜨릴 때 자기만의 방식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푸른 빛으로 독특함을 유지하는 소나무. 그런 소나무를 보며 우리도 이번 새해에는 나다움을 잘 찾아내서 멋진 꿈을 이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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