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인공지능과 휴머니즘
2016년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4대 1로 이겼을 때 세계는 경악했다. AI의 위력을 실감한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알파고의 최신 버전인 알파고 제로는 바둑을 익힌 지 40일 만에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100전 100승을 기록했다. 이제 알파고 제로는 인간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바둑의 신’이 돼 버렸다.
우리 일상의 많은 분야에서 AI는 인간을 대신하고 있으며 그 발전 속도와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AI가 인간의 직업을 다 빼앗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2016년만 해도 약간의 희망은 있었다. 즉 화가, 조각가, 작가, 연주자 등 예술가는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창조성과 독창성의 영역인 예술만큼은 인간과 AI를 구분하는 최후의 보루라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 최후의 보루마저 허물어지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자체 개발한 AI 작곡가 ‘이봄(EvoM)’은 화성학 및 대위법 등 주요 음악 이론을 학습하고 음악 샘플을 반복해서 들은 뒤 스스로 6년간 30만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3만여곡을 판매해서 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2021년에는 포스텍 인공지능대학원 연구팀이 개발한 AI 소설가 ‘비람풍(毘嵐風)’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를 집필해 출간했다.
그뿐만 아니라 2022년에는 AI 화가까지 등장했다. 게임 기획자인 제이슨 M 앨런이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린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작품이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 1위에 당선됐다. 대회 심사위원들도 이 작품이 AI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 줄 몰랐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역시 2022년에는 AI 시인 ‘시아(SIA·詩兒)’가 첫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했다. 시아는 AI 연구회사 카카오 브레인과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개발한 것으로,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 등을 학습하고 1만3000편의 시를 읽으며 작법을 배워 시를 썼는데 주제어와 명령어만 입력하면 30초 만에 시 한 편을 쓴다고 한다. 또 시아의 작품 중 20편을 골라 ‘파포스’라는 제목의 시극(詩劇)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AI가 만든 예술작품이 아직까지는 인간에 의한 예술작품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AI 발전 속도를 볼 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예술 이외의 분야에서는 AI가 가시권 내에서 인간 지능을 추격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지금의 발전 속도로 봤을 때 50년 후에는 AI가 인간 지능을 능가할 것이라 말했다. 또 어떤 전문가는 앞으로 기술 장벽을 뚫는 데 5년, 나머지 문제 해결에 30년 등 총 35년 후면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라 예언했다. 초지능 AI가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언젠가는 호모사피엔스를 지구에서 멸종시킬 것이라 예언한 전문가도 있었다.
인간의 멸종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인간이 기계의 조종을 받는 시대, 즉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는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는 인간을 지켜야 한다. 오늘날 휴머니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휴머니즘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떠나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위협받는 순간에 항상 그 모습을 드러내 왔는데, 애초에는 14세기 이후의 르네상스 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중세 이래 교회적 권위 아래 질식돼 가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말하자면 신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위한 운동이었다.
오늘날엔 기계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위해 휴머니즘이 요청된다. 예술만 하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예술 활동을 한다. 예술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그런 예술 활동을 기계가 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짓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왜 시아와 같은 AI 예술가를 자꾸만 만들고 있는가? 시아의 제작자는 “문학의 바깥에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누구나 시인이 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시인이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도 아니다.
괴물과 같은 AI가 인간을 삼키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휴머니즘이 절실히 요청된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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