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벗어나야 할 남북관계 착시들

2023. 1. 1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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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요즈음 남북 관계를 묘사할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어가 ‘강대강’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적 무력시위에 대해 우리 역시 단호한 대응을 보이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표현의 이면에 내재된 의식이 올바른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강경한’ 대응책일까. 그렇다면 북한 위협에 대해 침묵하거나, 우리 관할하에 들어온 북한 주민들도 무조건 송환하거나, 국민이 위해를 당해도 상대의 유체이탈식 발언에 ‘사과’란 의미를 억지로 부여해야 그것이 ‘온건한’ 대응일까.

강대강 표현에는 우리 역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담겨 있으며, 이는 북한이 바라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에 대해 ‘강대강·선대선’을 선언한 이후 수시로 이 용어를 사용해 왔다. 2022년에 들어서는 한·미 연합훈련 등 우리의 대비 태세 강화에 대해서도 강대강 대결 국면을 선언했다. 북한은 대북 제재가 체제를 위협하는 악의적인 것이고, 연합훈련이 전쟁 도발을 위한 연습이며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이는 자신들의 핵 개발로 인해 조성된 긴장의 책임을 우리와 미국에 전가하거나 국제적인 양비론을 유도하겠다는 포석이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강대강 용어에는 지나친 한반도 긴장이 군사 충돌이나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도 반영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긴장은 나쁜 것이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북 양보도 고려해야 한다는 편견이 담겨 있다. 체제나 국가 간 관계에서 긴장은 종종 발생하고, 이는 관리돼야 할 것이지 회피돼야 할 문제가 아니다.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경고, 능력 시위, 국제적 압력 유도, 협상 및 대화 등 다양한 방안이 존재한다.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보고 뒤흔드는 데도 평화 아니면 전쟁 식의 이분법에 매몰돼 양보만을 모색한다면 결국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고 그 결과는 참혹하다.

설사 우리 대응이 강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과도한 대응과 동일시하는 것도 또 하나의 착시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계속 위반하자 정부는 향후 동일한 행태가 반복될 경우 합의의 효력 중단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합의의 효력 중단이 북한 도발을 오히려 촉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 간의 상호 군사적 투명성과 신뢰 구축을 위한 것이며, 북한의 도발 저지는 기본적으로 정전협정의 몫이다. 북한의 9·19 군사합의 위반은 엄연히 도발인데, 도발을 막기 위해 도발을 인내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모순적인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북핵 위협 대응 발언과 관련한 해석에서도 나타난다. 대통령 발언은 맥락상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보장 능력이 떨어지고 북한 핵 위협이 계속 심화될 경우에는 다양한 대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것인데도, 현재 시점에서 핵무장을 시사한 것처럼 왜곡하는 의견들이 있다. 북한의 ‘강’은 합리적 우려이고, 우리의 ‘강’은 한반도 긴장의 원인인 것처럼 바라보는 이런 착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런 착시는 문제의 본질을 원형대로 보는 것을 가로막아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필요한 대응조차 호전적 조치로 비치게 한다. 이에 더해 북한으로 하여금 현재 노선이 잘 먹혀들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착시를 유도하게 되며, 결국은 또 다른 도발과 기만으로 이어진다. 남북 관계에서 우리가 그냥 넘겨 온 착시를 벗어나야 남북 관계 정상화도, 한반도 평화도 가능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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