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검찰의 ‘창’과 이재명의 ‘방패’
한쪽에선 피의사실 공표라는 창을 들고 덤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체포특권이라는 방패를 들었다고 비판한다.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유다.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법률적ㆍ도의적인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거나, 이미 넘었다.
이재명 수사에 ‘방탄 국회’ 논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시작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검찰청에 출석하며 ‘정치 검찰’ ‘검찰 쿠데타’ ‘정권의 시녀’ ‘검찰 공화국’과 같은 단어를 포함한 격앙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특권을 바란 바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으니 당당하게 맞서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민주당 지도부와 수많은 지지자에 둘러싸인 모습은 이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대비책도 마련했다. 이 대표에게 닥쳐올 상황을 확신한 듯 민주당은 단독으로 지난 9일부터 30일간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해외 순방과 민주당 의원 20여 명의 해외 출장이 예정된 상황에서 안보위기와 경제위기를 이유로 들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헌법 제44조 1항)는 불체포특권을 행사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방탄국회’라는 비판을 비껴가려니 군사독재 시절에나 사용하던 험악한 말을 검찰 앞에 붙여가며 억지 수사라고 연일 주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대표의 위법 행위 의혹과 관련된 기사가 나올 때 자주 “정치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한다.
예행연습도 마친 상태다. 지난해 12월 28일 6000만원의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는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여야 의원 271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가 나왔다. 무기명 투표여서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169석을 가진 민주당에서 대부분의 반대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제21대 국회에서 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 이상직 전 무소속 의원,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3건은 모두 가결됐다.
정제된 수사 내용 공개 아쉬워
민주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책임을 돌렸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체포동의안 요청 설명을 하면서 피의사실 공표를 했다고 비판했다. 한 장관의 설명은 구체적이었다.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는 목소리,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고 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법률에 따라 설명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장관의 설명이 역대 어느 체포동의안 요청 설명보다 자세하고 길었지만 위법한지를 따질 명확한 규정은 없다. 국회법 제93조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안건에 대해서 제안자가 안건의 ‘취지’를 설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방법과 수위에 대한 기준이 없고, 실제 유죄판결 난 사례도 없다.
이대로라면 민주당과 검찰(혹은 한 장관) 간 피의사실 공표를 둔 공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미 민주당은 대장동 비리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엄희준ㆍ강백신 부장검사, 그리고 수사검사를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해석이 필요 없는, 정제된 수사 내용 공개라면 이런 문제제기조차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제한 필요
‘방탄 국회’라는 오명의 씨앗이 된 불체포특권 제한 논의도 재개돼야 한다.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월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면 즉시 의결하고 기명 투표로 표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의힘도 지난해 5월 체포동의안 표결 시점을 본회의 보고 72시간 이내에서 48시간 이내로 단축하고 기한을 넘기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헌이 필요한 폐지 대신 권한을 축소하자는 현실적 방안이었다.
이 대표 자신도 지난 대선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으로도 내걸었었다. 지난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면서 ‘방탄 출마’라는 공격을 받자 “의원들 면책ㆍ불체포특권이 과하다. 100% 찬성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이 대표는 물론 여야 모두 이 논의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물론 여야 의원들의 당시 주장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 보여주길 바라는 건 과도한 바람일까.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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