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영화보다 더한 기후재난
19년 전 초여름 당시 친구가 좋아했던 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투모로우’(2004)라는 영화를 봤다. 대강 내용은 이렇다. 기후학자가 남극 탐사 중 지구에 기후 재난이 일어날 것을 감지한다.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남·북극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며 해류 흐름이 바뀌게 돼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재앙이 닥친다는 내용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도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지구가 배경이다. 빙하기를 맞은 지구를 끝없이 순회하는 열차 내부에서 벌어지는 인간 불평등 투쟁기가 끔찍하다. ‘인터스텔라’(2014)도 이상 기후로 인해 황폐해진 지구를 대체할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항성 간 우주여행을 떠나는 탐험가의 모험을 다뤘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에선 핵전쟁으로 인해 온 세상이 모래로 뒤덮이고 물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들은 말 그대로 ‘영화’(映畵·촬영으로 필름에 기록한 화상을 보여주는 영상물)였다.
그런데 이젠 기후 재난 영화가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지오스톰’(2017)을 보면서 등줄기가 오싹했다. 기후 재난을 막기 위해 인공위성을 조작해 만든 날씨 조종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겨 용암 분출·혹한·폭염 같은 기상 이변이 일어나 인류가 위기를 맞는다는 내용인데, 마치 다큐멘터리 같았다.
아마도 코로나19 영향이 클 테다. 10년 전 개봉한 영화 ‘감기’ 속 같은 현실을 살고 있으니 무리는 아니다. 이 영화 속에선 호흡기로 감염되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도시는 폐쇄되고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자연스레 ‘마스크 대란’이 떠올랐고 내 얼굴 반을 덮고 있는 마스크로 눈길이 갔다.
이미 영화 같은 뉴스는 많다. 강렬한 태양의 상징인 카리브 국가 베네수엘라에 최근 눈이 내렸다. 겨울 평균기온도 20도를 넘는 따뜻한 지역인데 한창 여름인 지금 눈이 쌓였다. 같은 남아메리카인데 칠레는 극심한 가뭄으로 땅이 갈라지고, 콜롬비아는 폭우로 농작물이 죽어간다. 같은 시기 일본에선 폭설로 인명사고가 속출한다.
기후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화석 연료 등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다. 당장 세제와 샴푸부터 바꾸자. 또다시 기후 재난 영화가 일상이 되게 둘 순 없다.
최현주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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