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정서경·박찬욱 『헤어질 결심』
서래: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내려가요. 점점 내려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중국어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 내가 다 가지고 갈게요. 당신한텐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정서경·박찬욱 『헤어질 결심』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오리지널 각본집이다. 변사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를 의심하면서 이끌리는 과정을 그린 멜로 영화다. 인용문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을 서래가 재워주는 장면. 이어지는 장면 #70은 ‘일요일이지만 가랑비가 오니 경내에 승려 몇 말고는 사람이 없다. 까마귀 몇 마리가 난다. 우산을 함께 쓰고 한가로이 거닐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해준과 서래’로 시작된다. 정보를 담은 지문이지만 충분히 문학적이다.
요즘 서점가에서 영화·드라마 대본집이 인기다. 영화를 사랑하고 간직하는 방법의 하나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아, 됐고 (…) 가인이한테, 너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 주세요.’ 명대사가 많다. 오리지널 각본집이라 완성본 영화와 소소하게 다른 부분들이 있다. ‘헤어질 결심’은 최근 골든 글로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3월 아카데미에 도전장을 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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