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삼킨 ‘악마 마약’… 펜타닐에 6년간 21만명 사망

자살·코로나 사망자보다 많아
마약성 진통제… 소량으로도 위험
규제 사각지대… 감시망도 허술

펜타닐 및 동물진정제 자일라진 과다복용으로 숨진 미국인 묘비. AP뉴시스

미국이 ‘악마의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과 전쟁 중이다. 미국에선 최근 6년 동안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21만명이 사망했다. 자살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펜타닐 중독에 따른 사망자가 많다.

미국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Families Against Fentanyl)’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20만949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2015년 이후 거의 모든 주에서 100% 이상 증가했다.

루이지애나주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5년 이후 24.6배 증가했고,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의 사망률은 20배 이상 증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근 미국 18~49세 사망 원인 1위는 불법 펜타닐 중독이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보다 훨씬 강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 소량으로도 치사량에 이를 수 있다. 니코틴의 치사량이 40~60mg이라면 펜타닐은 2mg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지난해 말 3억8000만 차례 투약할 수 있는 양의 펜타닐을 압수한 뒤 “미국인 모두를 숨지게 할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다.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사고는 유명 연예인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1일 인기 여성 래퍼 ‘갱스터 부’(롤라 미첼)가 친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명 힙합 그룹 ‘스리 6 마피아’ 멤버인 그의 몸에선 펜타닐을 섞은 마약 성분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기 드라마 ‘워킹데드’의 스핀오프 시리즈에 출연했던 18살 배우 타일러 샌더스도 펜타닐에 중독돼 숨졌다.

펜타닐이 급격한 확산한 건 마약성 진통제라는 이유로 펜타닐류의 약물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허술한 감시망을 틈타 미 전역으로 퍼졌다는 얘기다.

마약 중독자들이 몰려드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켄싱턴스트리트의 한낮 풍경.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등에 중독된 노숙자들이 마약 거래 등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5~2021년 펜타닐 중독으로만 20만9491명이 사망했다. SNS캡처

중국의 비협조적 태도도 미국 내 펜타닐 확산의 배경으로 언급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펜타닐은 주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대량 제조해 미국에 유통한다.

그런데 인권·대만 문제 등과 관련한 미국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중국이 자국의 펜타닐 성분 제조사들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헐겁게 잡아 미국 내 펜타닐 유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은 2018년부터 펜타닐의 불법적인 유통을 막기 위한 협력을 시작했다. 중국이 자국 내 화학기업의 펜타닐 성분 생산과 판매를 제한해 미국 내 유통이 줄었다. 하지만 미·중 충돌 때마다 중국의 비협조가 두드러졌다고 WSJ은 전했다.

최근엔 동물 진정제 ‘자일라진’이 마약 규제 당국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자일라진은 말이나 소의 마취제나 고양이 구토 유발제로 널리 쓰는 동물용 의약품인데, 미국에서는 ‘트랭크’(tranq), ‘좀비 약’(zombie drug) 등 속어로 불린다. 마약 중독자에게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자일라진을 펜타닐 등 기존 마약과 섞어 주사로 투약하면 여러 시간 동안 정신을 잃기에 성폭행이나 강도 등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팔다리 등에 ‘괴사 딱지’라고 불리는 죽은 부스럼 조직이 생겨,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타투 아티스트인 브룩 페더는 자일라진을 투약했다가 뼈까지 상처가 번져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금단 증상을 못 견디고 여전히 하루에 여러 차례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고 한다. 자일라진은 미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NYT는 최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유통되는 마약에서 자일라진이 함유된 경우가 90%를 넘고, 뉴욕시에서도 마약 샘플 중 25%에서 자일라진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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