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된 엄마…로봇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부모에 대해 내가 뭔가 ‘리셋’(재설정)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에 담은 이런 질문들이 한국적인 SF라 생각했습니다.”
연상호(44) 감독이 ‘한국적인 SF’에 도전장을 냈다. K좀비 영화 ‘부산행’(2016)과 ‘반도’(2020), 시즌2로 계속될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에 이어서다.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정이’ 제작보고회가 지난 12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렸다. 원안·각본을 겸한 연 감독과 주연 김현주(45)·류경수(30)가 참석했다.
전설적 용병의 뇌를 복제한 인공지능(AI) 전투 로봇 ‘정이’의 개발에 얽힌 모녀 이야기다. 작전 실패로 용병 윤정이(김현주)가 식물인간이 되자, 딸 윤서현(강수연)은 AI 군수회사 크로노이드의 연구팀장이 돼 어머니를 닮은 ‘정이’ 복제에 매달린다. 상품화에 혈안이 된 회사에 맞서 어머니의 존엄을 지켜내려고 고군분투한다. 암울한 사이버 펑크 정조를 화면 가득 담아낸 연 감독은 “인간성이 과연 인간만의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작품에서는 로봇 액션보다 휴먼 드라마가 더 부각됐다. 주인공은 고 강수연이 연기한 서현이다. 중년의 어머니와 중년이 된 딸이 각각 로봇과 그 창조주가 돼 마주한다. 사지가 훼손된 식물인간으로 늙어가는 인간 정이와, 생성·폐기를 거듭하는 로봇 정이 모두 김현주가 연기했다. 시뮬레이션 전투에 끊임없이 투입되는 로봇 정이는 무표정하다가, 전원을 켠 순간 사고 당시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급격히 분출하고 정지하는, 극과 극의 연기를 오간다.
김현주는 “AI인데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부자연스러운 동시에 자연스러워야 했다”고 했다. 연 감독은 “김현주씨는 제가 생각한 정이와 그림체가 일단 맞았다. 잘 생겼잖나. ‘지옥’에서 순간적으로 감정을 뿜어내는 연기를 잘했는데, 당시 액션 훈련했던 것을 드라마에 모두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방대한 세계관과 일부 등장인물의 서사가 충분히 펼쳐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류경수가 연기한 크로노이드 연구소장 상훈 등은 ‘지옥’의 사이비 교단 인물들과 캐스팅이 일부 겹쳐, 두 작품이 어딘가 이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정이’가 시리즈물의 1화 혹은 프리퀄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정이’는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감독 임권택) 이후 강수연의 12년 만의 장편 복귀작이다. 그가 지난해 5월 갑작스레 별세해 유작이 됐다. 김현주는 “처음에 ‘내가 그분(강수연) 눈을 보며 연기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런데 촬영장에선 선배님이 아닌 그냥 동료였다. 누구보다 진지하고 현장에 열정적이셨고, 고민도 많으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연 감독은 “SF영화인 데다, 예산이 적지 않게 들어 종합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이어야 했다. 영화화에 회의적인 측면이 있던 차에 윤서현 역에 강수연 배우가 떠오르면서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고 돌이켰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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