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은 늘 해롭다”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가르침
마키아벨리가 생애 마지막으로 쓴 저서 『피렌체사』가 국내 최초로 완역돼 출간됐다. 『피렌체사』는 13~15세기 피렌체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정치와 역사를 총망라한 책이다. 한국어 완역본은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무블출판사·사진)라는 제목에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라는 부제를 달고 지난달 세상에 나왔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하인후(52)씨는 780쪽에 달하는 ‘벽돌책’을 번역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고 했다. 하씨는 번역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트레카니 백과사전을 뒤져 사건의 발생 연도 등 주요 사실관계를 일일이 확인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사이 사이에 각주 수백 개와 그림·지도도 끼워 넣었다. 번역뿐 아니라 감수와 편집까지 겸한 셈이다. 지난 5일 만난 그는 “마키아벨리의 천재성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피렌체사』는 마키아벨리 4부작(피렌체사·군주론·로마사논고·전술론) 중 하나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당연히 『군주론』이지만 학계에서는 『피렌체사』를 한 수 위로 친다고 한다. 『군주론』이 공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에 잘 보여 재임용을 받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쓴 ‘구직용’ 인 반면 『피렌체사』는 그가 죽기 전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대작이라는 이유에서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를 통해 13~15세기 피렌체의 평민이 어떻게 귀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됐는지, 귀족은 어떻게 권력을 잃게 됐는지, 계급 간 권력 투쟁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됐는지 등을 자세히 설파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통합만이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게 하씨의 견해다. 하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오해”라며 “마키아벨리는 20년 동안이나 전쟁의 참극을 목격한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방법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하씨는 『피렌체사』 중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문장으로 “피렌체의 분열은 파벌을 동반했고 그 결과는 항상 해로웠다”를 꼽았다. 그는 ‘조국 사태’로 여론이 두 동강이 난 2019년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분열만큼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없다는 메시지가 5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힘이 있는 책”이라고 했다.
하씨는 『피렌체사』 번역을 위해 네 가지 다른 버전의 영문 『피렌체사』를 파고들었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다 갑자기 자신의 해설이나 상상력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한 권만 읽어서는 정확한 번역이 어려웠다”는 게 그 이유다. 한 권을 보고 해석이 막히면 또 다른 번역서를 보고, 그렇게 네 권을 다 읽고도 이해가 안 되면 “이탈리아 백과사전을 영어로 번역해가면서 숨은 뜻을 해석”한 그의 작업 방식은 수백 개의 각주와 미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씨는 『피렌체사』외에 『로마사논고』와 『군주론』을 번역 중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 4부작을 모두 번역한 후 마키아벨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 소설을 쓰고 싶다”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60세까지의 일감이 생겨 기쁘다”고 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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