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위협 느끼며 4통의 유언 쓰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김삼웅 2023. 1. 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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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17] 암살자들의 '거사'는 실행되지 않았다

[김삼웅 기자]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국회의 석방결의로 풀려났는데,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재구속하고 순천경찰서에 구치시켰다. 

밤이 깊었을 무렵 한경록 경찰국장을 비롯한 몇 사람의 경찰간부들이 순천서 내에서 나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좌중에서 한이 육중한 음성으로 "야쯔 도오도 가깠다나 사이간배이 아게요(그놈은 드디어 걸려들었다. 자 건배를 들자)"라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내가 구속되어 있는 유치장에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계속 무슨 말 끝에 "이제 서민호는 매장되었다. 오늘 밤 12시면 넘어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주석 9)

그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이 자들이 오늘 밤 12시에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시국은 전시이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군인들이 백주에 마을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시대였다. 하지만 달리 생명을 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언장을 썼다. 신익희 국회의장과 그동안 뜻을 같이해온 엄상섭 의원, 자식들과 아내에게 남기는 유언장이다.  

신 의장님!

독재자의 횡포로 국정은 나날이 어려워가는 이 절박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뜻하지 않았던 불상사로 그들에게 묶인 몸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독재자가 파놓은 함정을 벗어날 길은 없을 것 같아 초조와 번뇌 속에서 다만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들과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억울하게 숨질 불초 의원은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신 의장님!

여러 동지들을 이끌고 이 땅에 민주의 꽃이 활짝 필 그날까지 투쟁해 주시리라 확신하면서 못다한 조국의 과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독재자의 총앞에 서민호의 몸 하나 쓰러졌다고 해서 민주정신마저 쓰러진 것은 아니라고 자부하겠습니다.

부디 천추의 한을 남긴 채 젊은 날에 숨져간 서민호의 고혼이 머지않은 앞날에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편히 잠들게 하소서….   

도탄에 빠진 국민의 고통이 해결되고 독재자의 그림자가 이 땅에서 사라진 뒤 평화가 있을 그날까지 안녕을 빕니다. 

엄상섭 의원에게!

드디어 독재자의 마수에 목덜미를 잡히고만 내가 어찌 내일을 기약할 수 있으며 언제 저들이 나를 헤칠는지 실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게 씌워진 죄명이 무엇이든 간에 훗날 나의 사건을 국민 앞에 정당히 밝혀 주신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밑거름으로 이 한 몸을 바쳤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저세상에서나마 편히 쉬겠습니다. 다시는 독재자의 발굽 아래 희생의 재물이 되는 불행한 동지들이 없기를 바라면서 옛날처럼 당신과 함께 의정단상에서 독재자의 부정을 폭로하여 국민의 억울함을 대변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쉽고 서글픈 감회가 마음을 심란케 하는군요.

엄 의원님!

부디 초지일관 독재자와 투쟁하여 그들의 부정을 뿌리 뽑고 민주주의 목적을 달성하여 온 백성이 풍요와 평화 속에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너희 5형제를 남겨두고 언제 유명을 달리할지 모르는 아비는 목에서 피가 넘어올 것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너희들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아비가 이 나라의 민주수호를 위하여 잔악한 독재자와 투쟁하다 비명에 간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너희들은 나의 정치신념과 애국 애족했던 마음을 계속 받들어 최후까지 싸워주기 바란다. 

큰애 원룡아 너는 우리집안의 장남으로서 책임이 막중함을 가슴에 깊이 새겨서 아래로 여러 형제들과 우애 있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도록 최선을 다해다오. 

다만 너희들에게 아비로서의 애정을 한껏 쏟아보지 못한 채 허구한 날 정치 활동에 몸담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파란많은 수난의 생활로 너희들을 불안하게 했던 것이 미안할 뿐이다. 지금도 아비는 대의를 위하여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값 있는 생을 살았다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만, 내손으로 독재자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한 채 그들에게 억울하게 당한 게 분하고 원통할 뿐이다. 부디 너희들은 아비의 원한을 통렬히 생각하여 독재와 싸우며 애국애족하고 정의감에 빛나는 내 자식들이기를 기원하면서 목메인 심정을 더 쓰지 못하고 필을 놓는다.

내 자식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부인에게 이 글을 남기오.

오늘밤은 왜 이리 유치장의 실내 공기가 적막하고 스산한지 모르겠소. 밖에는 칠흑처럼 어둡고 봄에 뿌리는 밤비가 처량하기 그지 없구료.

여보! 당신께 할 말이 너무나 많소. 나를 만나서 오붓한 가정생활도 제대로 못해보고 1년이 멀다하고 감옥생활로 당신을 놀라게 했으니 말이오.

그런데 또 이 잔악한 독재자의 마수에 붙잡혔으니 어떤 극단적인 불행이 불시에 밀어 닥칠는지 모르는 일 아니겠소. 

마음을 가다듬고 단정한 자세로 내 마지막 글을 읽어 주시오. 

부디 냉정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나의 최후를 받아들이구려. 너무 감정에 휘말려 건강을 상하지 마오. 

나는 억울한 죄명으로 독재자의 부정부패를 위하여 제물이 되었지만 나의 깊은 구국의 길이오. 뜻 있는 죽음이니 훗날 사가들이 이를 증명하여 줄 것이오. 당신은 내 뜻을 저바람 없이 현명한 여자로서 또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잘 보살펴 주시라 믿소. 

여보! 백년해로 하자하고 만났으나 먼저 떠나야 하는 심정이 몹시 울적하구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이리도 많은 미련 때문에 몸부림쳐야 하나보오. 

너무나 긴 얘기 많으오만 자꾸만 가슴이 산란해 져서 여기서 아쉬운 대로 끝을 맺겠소. 부디 오래 정결하고 부덕이 높은 여자의 길을 닦아보시오.

그럼 하루속히 마음의 평정을 찾으시길 빌겠소…. (주석 10)

암살자들의 '거사'는 실행되지 않았다. 사령탑의 의사인지 집행팀의 변심인지는 헤아릴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독안에 갇혔는데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었을 것이란 추론이다. 하지만 '숨쉬기'의 생명이 연장되었을뿐으로 그의 육신은 긴 세월을 갇힌 신세가 되었다.

이후 그가 기록한 재판 과정의 고난에 찬 역정이다. 

△ 5월 22일 부산지방법원서 공판 개시.
△ 6월 4일 영남고등군법회의로 이송.
△ 6월 30일 대구고법 구류집행 정지 결정을 취소. 다시 구속.
△ 7월 1일 고등군법회의 사형언도. 국회의원 130명 연서 재심리의 청원서 제출.
△ 7월 4일 대통령이 원 게엄사령관에 재심 지시.
△ 8월 1일 군법회의 재심 끝에 8년 징역 선고. 
△ 1953년 5월 6일 계엄령 해제. 부산지검으로 이송.
군법회의 7차 사형선고, 1차는 언도. 국회의원 엄상섭, 양병일, 윤형남·김의준·조재천·정구영 제씨 변호단 구성. 관선 변호인으로는 이일, 장우영·김달호 제씨.

△ 7월 26일 검찰은 살인죄만으로는 무죄 가망성이 있으므로 돌연 부산지법은 '배임'과 '업무횡령' 두 가지를 첨가 병합심리로 결정. 

△ 10월 20일 판결. 배임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미결구류 160일 통산. 살인, 업무 횡령은 무죄. 법의 정의 건재. 관여 검사 불복공소, 나도 불복공소. 

△ 1954년 4월 22일, 대구고법 판결. 배임 10월 집행유예 2년, 미결구류 270일 통산. 살인은 면소, 업무횡령 무죄언도. 나는 대법원에 상고, 검사도 상고.

△ 1955년 1월 16일 대법원은 '원 판결 파기 대구고법에 환송'의 판결을 내림. 
△ 5월 24일 대구고법 재심리, 배임 징역 10월 미결구류 2백 70일 통산, 살인면소, 업무횡령 무죄의 판결. 검사 또 대법원에 즉시 항고.

△ 9월 16일 대법원 상고 기각의 최종 판결을 내림. 
그리하여 결국 1952년 5월 1일 영남고등군법회의가 선고한 징역 8년이 확정. 이상 4년 3개월 21일의 긴 재판기록을 수렴. 

△ 그 결과 미결의 구류생활이 4년 3개월 21일, 부산형무소 1년 7개월(마산헌병대 잠시 이감) 대구형무소 3년, 대전형무소 3년 6개월 동안 복역타가 1960년 4월 29일 8년 5일 만에  출옥함. (주석 11)

주석 
9> <이 정권과의 투쟁(35)>.
10> <이 정권과의 투쟁(35)>.
11> 서민호, <명인 옥중기>, 110~111쪽, 희망출판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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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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