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달랏, 팜유라인 먹방만 기억하면 손해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1. 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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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 도시...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

[김찬호 기자]

저는 하노이를 떠나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남부의 산간 도시, 달랏에 도착했습니다. 몇 년 전 베트남을 종단한 경험이 있어, 굳이 다른 도시는 들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달랏에는 꼭 들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대입니다. 서쪽으로 향하는 이 여행에서, 굳이 다시 베트남에 온 것은 달랏을 방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달랏 전경
ⓒ Widerstand
 비행기를 타고 달랏 공항에 내려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달랏은 평균 해발 1,500m의 산간 도시입니다. 공항에서도 꽤 오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도시죠.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베트남의 최대 도시인 호치민 시나, 남부 해안 도시인 냐짱 정도에서 버스를 타고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아슬아슬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마법처림 이 도시가 나타납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 속에 갑자기 펼쳐지는 도심의 모습을 본다면, 마법 같다는 말이 꼭 과장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런 광경이 펼쳐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실제로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산간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니까요.

전형적인 식민 도시, 달랏

달랏은 처음부터 프랑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였습니다. 1893년 프랑스의 탐험가들이 이 지역을 발견해 도시 건설을 청원했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정부에 의해 도로와 인프라 건설이 시작됩니다. 당시 이 지역을 발견한 탐험가 중 한 명이, 페스트균을 발견한 생물학자 알렉산드르 예르생이기도 했죠.
 
 달랏 쑤언흐엉 호수 인근의 맑은 날 풍경(2017).
ⓒ Widerstand
 높은 산지에 위치한 달랏 지역은 언제나 시원한 기후를 보였고, 많은 서양인들이 이주하거나 여행을 다녀갔습니다. 이렇게 식민지 지역에 더위를 피해 만들어지는 고산 도시를 '힐 스테이션(Hill Station)'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였던 사이공 주변에 마땅한 힐 스테이션이 없는 상황에서, 달랏은 호텔과 병원, 학교, 주택, 공원, 성당 등이 지속적으로 건설되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결국 달랏은 전형적인 식민 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달랏에는 굴곡이 심한 산지라는 지형 조건에도 불구하고 저지대까지 이어지는 철도도 있었습니다. 여러 개의 스위치백 철도와 터널을 만드는 24년 간의 난공사 끝에 1938년에 판랑탑짬 시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철도는 베트남 남북을 잇는 통일열차를 보수하기 위해 철거되었지만, 7km 길이의 구간이 복원되어 관광열차가 운행 중에 있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프랑스인을 위해 건설된 성당이나, 프랑스의 철저한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베트남의 마지막 왕 바오다이의 여름 궁전이 위치해 있기도 합니다.
 
 달랏 대성당
ⓒ Widerstand
이렇게 만들어진 식민 도시이니, 당연히 달랏은 연중 좋은 기후를 자랑합니다. 1년 내내 평균 17-18°C의 기후로, 언제나 봄과 같은 날씨를 가지고 있죠. 달랏의 중앙에 위치한 호수의 이름도 '봄의 향기'라는 뜻의 '쑤언흐엉(春香)' 호수입니다. 심지어 이 호수마저도 우기에 홍수를 막기 위해 프랑스 당국에서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니, 이 도시의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있겠죠.
결국 달랏은 전형적인 식민 도시, 근대 도시입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라는 베트남의 근대사가 그대로 쌓여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그 도시 위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이기도 하죠.

제가 처음 달랏에 방문했던 때에만 해도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였고, CNN에서도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로 선정할 정도로 외국인에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달랏으로 향하는 직항편까지 운행할 정도로 잘 알려진 관광지가 되어 있죠.

달랏에서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 그리고 이곳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까지 대부분은 그 식민의 역사를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절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찬동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시 그 위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한편으로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달랏 쑤언흐엉 호수 인근
ⓒ Widerstand
달랏은 산지에 위치한 덕에, 베트남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등 베트남이 현대사에서 겪어 온 전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습니다. 도시의 모습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죠. 결국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도시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의로운 결말이 아니라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식민지의 유산인 이 도시가 전쟁과 혼란으로 파괴되고 무너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적절한 결말이어야 했을까요. 그렇게 이 도시가 무너졌다면, 지금 이 도시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재건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파괴되어가고 있는 한국의 근대유산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근대지상주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것이 식민주의에 대한 찬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흔적을 부정하는 도시, 재건 없는 파괴를 정의라 말하는 도시에는 별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겨울 비 내리는 풍경도 좋아
 
 달랏 쑤언흐엉 호수 인근 전경
ⓒ Widerstand
 지금 달랏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원래 겨울의 달랏에는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는데, 제가 달랏에 머무는 며칠은 내내 꽤 굵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쑤언흐엉 호숫가에 앉아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비 오는 달랏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고, 언젠가 다시 이 도시에 올 구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랏(Dalat)이라는 도시는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랏(Lat)' 민족의 언어로, 랏 족의 강(江)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이 '달랏(Dalat)'이라는 말을 라틴어 약자로 만들어 부르기를 즐겼죠. 라틴어로 "Dat Aliis Laetitiam Aliis Temperiem(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누군가에게는 조화를)"의 앞 글자를 따 '달랏(DALAT)'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역두문자어를 만든 것이죠.
 
 달랏 쑤언흐엉 호수의 야경
ⓒ Widerstand
 언제나 봄비를 맞을 수 있는 도시, 달랏에서 비를 맞으며 이 도시가 주는 기쁨과 조화를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든, 이 도시가 파괴 되지 않고 켜켜이 쌓인 근대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라면 그것이 정의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다시 파란 하늘의 달랏을 봐야겠다는 핑계로 제가 이 도시에 돌아올 때를 상상합니다. 다시 구불거리는 산길을 위태롭게 넘으면 마법처럼 그 도시가 나타나는 순간을 말이지요. 그때까지 달랏의 사람들이, 다만 파괴되지 않은 이 도시를 만끽하며 살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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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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