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간 '3천원 국숫집'... 놀라움의 연속 [성낙선의 자전거여행]
[성낙선 기자]
▲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 경고 문구가 사라진 철책선. 오른쪽으로 자전거도로와 자유로가 보인다. |
ⓒ 성낙선 |
그 국숫집은 맛집으로 소문을 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가격은 3천 원에 불과했다. 그뿐만 아니라 양이 무척 많았다. 냉면 그릇에 가득 담긴 국수를 바닥까지 비우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더 많이" 달라고 주문하면 그릇에 국물이 흘러넘치게 국수를 내왔다. 처음에 멋모르고 "더 많이"를 외쳤다가, 국수를 남기는 사람이 허다했다.
▲ 자전거길 위에 그려진 평화누리길 마크. |
ⓒ 성낙선 |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를 여행하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국숫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주유가 필요한 때였다. 날이 추운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식당 앞에 그 많던 자전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국수 값은 어느새 6천 원으로 올라 있었다. 순간 격세지감이 밀려왔다. 그새 세상이 이렇게 바뀌다니.
▲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 안내도. |
ⓒ 성낙선 |
어렵게 찾아낸 자전거길, 그런데 '그 길'이 아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는 '고양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방화대교 북단에서 시작해 출판도시휴게소에서 끝나는 이 자전거길은 북쪽으로 자유로를 따라가며 오롯이 고양시를 지나가는 것으로 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고양길을 여행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소 10년은 더 지났을 것으로 기억한다.
▲ 길을 헤맨 끝에 찾아낸 자전거길. |
ⓒ 성낙선 |
▲ 이렇게까지 친절한 자전거도로라니... |
ⓒ 성낙선 |
지금도 행주대교에서 고양길을 찾아 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복잡하다. '행주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평화누리 자전거길' 표지판을 못 보고 지나치는 바람에 어느새 고양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도로가 복잡하니까 표지판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교차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시 고양길 자전거도로를 찾아가는데, '이 길이 맞나' 긴가민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길바닥에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표시하는 파란색 실선이 닳고 닳아 흐릿해진 것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예전에 이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하지만 길을 헤매는 것도 길 안내 표지판조차 없던 시절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길을 잃은 것은 잠깐, 자유로에 접근하면서 자전거길 표시가 점점 더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 철책선이 사라지면서 전망대로 바뀐 초소. 전망대 아래에는 여행자들이 앉아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긴 의자가 놓여 있다. |
ⓒ 성낙선 |
철책선은 '울타리'로, 경계를 서던 초소는 전망대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군인들이 철통경계를 서던 곳을 자전거길로 만들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정도면 가히 천지개벽이라고 할 수 있다. 철책선이 계속 그곳에 남아 있을 거라는 기존의 관념에 금이 가면서, 그때 내 머리 속으로 일종의 '자유'가 찾아온다. 자동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리는 것 이상으로 통쾌한 '자유'다. 이대로 자전거를 타고 DMZ를 넘어가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게 단지 나만이 느끼는 '상상의 자유'일까?
철책선은 단순한 철조망 형태로만 남아 있다. 거기에서 무언가를 통제하고 감시하려는 의도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녹슨 철조망 위로 넝쿨식물의 말라붙은 잔해만 잔뜩 남아 있다. 그 철조망에서 이전에 평화누리 자전거길 1,2코스를 여행하면서 수시로 볼 수밖에 없었던 '접근 금지', '촬영 금지' 같은 경고성 문구 같은 건 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 자유로 밑을 지나 신평군막사로 가는 지하도 벽에 그려진 벽화. |
ⓒ 성낙선 |
아쉽게도 이 자전거길은 중간에 '신평군막사'가 있는 곳에서 막을 내린다. 길은 자유로 밑을 통과해 오른편 소도로로 이어진다. 이 도로는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도로다. 신평군막사는 한강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군인들이 머무르던 곳이다. 이들 군인 막사들도 앞서 보았던 초소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모두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민간인 신분으로 군인 막사를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게 된 현실이 낯설다.
▲ 장항군막사 시설물 일부. |
ⓒ 성낙선 |
DMZ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강 철책선은 1970년대에 무장 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됐다. 철책선 제거 작업이 시작된 건 2012년부터다. 고양시가 앞장섰다. 시는 오랜 기간 끈질기게 군과 협의한 결과, 1차로 행주산성에서 김포대교까지 약 3km에 해당하는 구간의 철책선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후 작업은 재차 난항을 겪다가, 2019년에 이르러서야 김포대교에서 일산대교까지 8.4km에 이르는 구간의 철책을 마저 걷어내며 마무리됐다.
철책선을 제거한 자리에는 앞서 보아온 대로 자전거길과 생태탐방센터 등을 조성했다. 물론, 이것으로 한강하류에 설치했던 철책선과 초소들이 전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양시의 경우, 일부는 이곳에 철책으로 만든 장벽과 그것을 지키는 초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한 역사적 유물로, 일부는 장항습지 같은 곳에 찾아드는 철새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고양시 위로 북한과 좀 더 가까이 있는 지역의 철책선과 초소들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그대로 여전히 엄격한 통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물샐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시설들도 고양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유산으로 남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변화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 고양시의 철책선 제거가 그 전조가 될 수도 있다. 이어서 김포와 파주에서,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DMZ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 백로 한 마리와 청둥오리들. 왜가리는 훌쩍 날아가 보이지 않는다. |
ⓒ 성낙선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