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니스 가기 귀찮을 때, 내 귀에 다급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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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훈 기자]
손흥민이 관중이 가득 찬 축구 경기장을 질주한다. 공을 빠르게 드리블하며 쉴 새 없이 달린다. 마치 지치지 않는 심장을 가진 것처럼 잔디 위를 종횡무진 누빈다. 수비수를 빠르게 제치고 슛을 날린다.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하고 빈 공간에 빠르게 침투해 들어가고 수비수를 돌파한다.
경기 도중 손흥민이 환한 얼굴의 미소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저렇게 엄청나게 달리고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나도 손흥민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고 싶다. 하지만 나는 손흥민의 경기를 보면서 소파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두 시간째 버티고 있다. 손흥민 같은 체력은 없고 소파에서 뒹굴며 버티는 지구력만 자꾸 늘어난다.
피트니스 2일차, 벌써부터 핑계가
드디어 피트니스 2일차이다. 나는 헬스라는 말보다 피트니스라는 단어가 왠지 더 멋져 보인다. 그래서 헬스클럽이 어느 날부터 피트니스로 이름을 바꿨을 것이다. 어제 하루 피트니스를 했을 뿐인데 온몸이 쑤시고 당긴다.
운동의 효과라기보다 운동의 부작용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몸을 거의 쓰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만 몸살 난 것처럼 몸 구석구석 뼈마디가 쑤신다. 벌써 마음은 오늘은 운동을 쉬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흘러간다. 피트니스에 가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찾는다.
'근육통을 회복하기 위해 격일로 운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무리하게 운동해서 정형외과 신세를 져야 했다는 사람도 있지.'
'하루 쉬면 더 즐겁게 운동할 수 있을 거야.'
이미 운동을 하지 않을 완벽한 핑계가 생겼다. 마음속 셀프 트레이너가 다급하게 외친다.
'회원님 오늘 안 가시면 내일은 더 못 갑니다. 작심삼일은 하셔야죠. 독하게 마음먹고 한 발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 보세요.'
하지만 천근 같은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셀프 트레이너가 살살 당근을 제시하며 구슬린다.
'회원님 오늘 열심히 운동하면 단지 바나나 우유 사줄게요. 얼음 가득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덤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시큰둥하다.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시원한 캔맥주 사주면 갈게요.'
못 들은 척 외면한다. TV 속 손흥민 선수를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고 쇼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래 오늘은 몸만 가볍게 풀고 오자.'
피트니스에서 도착해서 운동복을 갈아 있고 러닝머신 위에 무겁게 올라선다. 첫날 체육센터 강사는 헬스기구 운동을 권했었다.
"회원님, 러닝머신은 시작과 마무리 운동으로 활용하세요. 러닝머신에서 10분 정도 몸을 풀고 헬스기구 운동을 한 다음 마무리 운동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좋아요."
▲ 보라매 공원 달리기 |
ⓒ 정무훈 |
체육센터에 오기 전에 날씨가 좋으면 보라매공원 넓은 운동장을 달린 적이 있다. 해가 질 무렵 공원을 달리다 보면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몸이 열이 오르고 기분 좋게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호흡이 빨라지고 다리가 묵직해진다.
운동장을 달리면서 하늘을 쳐다보면 노을이 붉은색으로 주황색으로 보라색으로 회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간다. 가쁜 호흡을 내쉬면서 한발 한발 땅을 힘차게 디디면 충격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면서 가벼운 통증과 함께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만의 속도로 내가 정한 거리를 무리하지 않고 달리는 기분은 묘한 성취감을 준다. 나의 몸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은 덤이다. 하지만 체육센터의 러닝머신(트레드밀) 달리기는 야외 달리기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트레드밀이라는 말보다 한국식 영어인 러닝머신이 더 친근하다.
▲ 러닝머신 피트니스 |
ⓒ 정무훈 |
공원 달리기는 내가 달려 나가는 느낌인데 러닝머신에 다리가 끌려가는 느낌이다. 센터 안의 사람들은 러닝머신 위에서 TV 화면을 보면서 빠르게 걷는다. 나는 TV 화면을 보며 운동하는 것이 거부감이 든다. 마치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뭔가 운동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닝머신 위에서 얼마나 지루하고 시간이 안 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러닝머신에서 30분을 달리고 그만 달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셀프 트레이너가 다급하게 외친다.
"아직 슬슬 달리기 30분 밖에 안 했어요. 칼로리 소모량도 별로 없어요. 좀 더 운동 하셔야죠."
이미 종아리, 무릎, 허리가 아프다. 잠시 러닝머신에서 내려와서 숨을 돌린다. 뭔가 지루함을 벗어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혹시 몰라서 챙겨온 무릎 보호대로 장착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최신 드라마를 재생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달리는 치트키를 사용해 본다.
이렇게 러닝머신 위에서 겨우 30분을 겨우 힘들게 채운다. 한 시간을 달리고 나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니 어지럽고 마치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허벅지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요가 매트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니 신비의 묘약처럼 몸의 갈증이 싹 가시고 몸이 깨어난다. 캬! 이것이 운동 후 마시는 진정한 물맛이다.
운동을 하면 근력도 생기고 건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작은 성취감이다. 오늘 내 뜻대로 되지 않던 일도, 실수의 연속이던 순간도, 하루의 목표를 이루지 못해 자책하던 시간도 툭툭 털어버릴 수 있다.
한 시간의 운동은 나에게 작은 만족을 준다. 셀프 트레이너가 소파의 유혹을 박차고 나온 나의 결심을 격려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그만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한 시간 동안 기어이 달린 나를 칭찬한다.
"회원님, 오늘도 잘했어요. 이렇게 꾸준히 하시면 내일은 더 오래 달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오늘 운동을 통해 내일 다시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갈 용기를 얻는다. 오늘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날이 아니다. 오늘은 나를 위해 달리기를 한 특별한 날이다.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다. 그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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