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도 주저한 16년전 충격 실화…'아프간 피랍' 영화로 만든 이유
해외 무장세력에 피랍된 한국인들을 구출해야 하는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 위험천만한 임무를 안은 이들은 어떤 고뇌와 역경을 거쳐 작전을 수행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상상으로 풀어낸 영화 ‘교섭’이 18일 개봉한다. 영화는 2007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소재로 한다. 23명의 한국인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됐던 극적인 실화가 바탕인 만큼, 인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피랍된 인질들이 아닌,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요원들의 이야기를 쫓는다. ‘리틀 포레스트’(2018) 이후 5년여 만에 ‘교섭’을 내놓은 임순례 감독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면 기존 한국 영화들과 다른 이색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국민 생명 지키려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피랍 사건 자체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교섭 작전이 초점인 만큼, 영화는 뜸들이지 않고 선교단이 피랍되는 장면부터 보여주고 시작한다. 뒤이어 신념과 원칙이 꼿꼿한 외교관 정재호(황정민)를 필두로 한국 정부 대표단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고, 중동 및 중앙아시아 사정에 능통한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이 현지에서 합류한다. ‘인질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방법론에 이견을 보이는 이들이 갈등하는 사이 탈레반이 제시한 살해 시한의 시계는 째깍째깍 흐르고, 온갖 협상 시도를 거듭한 끝에 영화는 최후의 대면 교섭 현장으로 내달린다.
실화가 바탕인 영화들의 핸디캡,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불리한 지점을 ‘교섭’도 피해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실화가 기반이기에 그 안의 인물들이 겪는 위기와 감정적 파고에 대한 몰입감이 높다는 장점은 뚜렷하다. 외교관 재호는 작전 초반, 공식 외교 통로인 아프가니스탄 외무부를 통한 협상을 고집하며 “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식의 말을 무시한다. ‘테러 세력과 직접 협상 불가’라는 외교가의 원칙을 지키려는 재호와, 인질이 살해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트라우마 탓에 물불 안 가리고 인질을 구하려는 대식. 두 사람의 대립과 화해는 40여일간 지속됐던 실제 피랍사건 해결 과정이 ‘진짜 저랬을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동시에,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소명의식이란 과연 어때야 하는지 숙고하게 한다.
처음 호흡 맞춘 황정민·현빈의 시너지…강기영 존재감도
개성이 뚜렷한 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과 현빈은 기대를 충족하는 시너지를 낸다. 기존 이미지대로라면 황정민이 거칠고 자유로운 대식을, 현빈이 단정하고 올곧은 재호를 맡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런 틀에 박힌 인상을 깨뜨린 캐스팅이 되레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렸다. 현빈이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액션신으로 극에 역동성을 채워 넣는다면, 황정민은 마지막 30여분간 이뤄지는 최후 교섭 장면에서 오로지 대사와 표정 연기만으로 긴장감을 증폭시킨다는 차이점도 흥미롭다.
여기에 통역가로 활약하는 카심 역의 강기영도 감초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따뜻한 상사의 모습을 보여준 강기영은 ‘교섭’에서는 현지에 완벽히 녹아든 카심을 연기하기 위해 아프간의 두 공용어(다리어·파슈토어)를 노래 가사 외우듯 익히는 노력을 기울였다. 재호와 대식이 어찌 보면 지극히 이상적인 공직자라면, 카심은 탈레반과의 대면을 두려워하고 인질들을 원망하는 등 일반인의 현실적인 시선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더욱 실감 나게 와 닿는다.
요르단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구현한 아프가니스탄의 풍광은 극의 현실감을 끌어올리는 주요 볼거리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근 2020년 여름 촬영이 진행된 탓에 출국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영화 속 교섭을 방불케 하는 교섭을 거쳐 예외적으로 요르단에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임 감독은 요르단을 촬영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 “아프간과 풍경이 비슷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였다. 할리우드와도 여러 영화를 찍어서 영화 산업 인프라가 많이 갖춰져 있었다”며 “중간에 실제 아프간 풍경도 있는데, 이는 현지에 있는 스태프에게 부탁해서 찍어 삽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을 향한 국내 관객들의 민감한 정서는 ‘교섭’이 극복해야 할 숙제다. 임 감독은 “이 사건이 민감한 소재일 수 있어서 나도 처음에는 (감독을 맡기) 주저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으며, “하지만 동일한 사건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많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탈레반이라는 잔혹한 집단을 상대로 국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책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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