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파괴말라”...네타냐후 사법개혁에 수만명 빗속 시위

임선영 2023. 1. 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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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종말", "우린 이란이 되지 않겠다".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하비마 광장. 춥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8만여 명이 모여 정부의 사법 개혁에 대한 반대를 외쳤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텔아비브를 포함해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들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추진 중인 사법 개혁안에 항의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시위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판사 등 법조인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정부의 사법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시위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이라고 평가받는 네타냐후 정권이 출범 2주 만에 내놓은 사법 개혁안이 촉발시켰다. 이 개혁안은 의회가 단순 다수결로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화할 수 있게 해 대법원의 권한을 약화시켰다. 네타냐후 정부는 선출직이 아닌 판사들의 권한이 너무 커 3권 분립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사법 개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에선 이 조치가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을 파괴할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비가 내린 하비마 광장엔 한 손에 우산을, 다른 손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든 이들이 보였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우리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의 하이파·모디인 등 주요 도시들에서도 관련 소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 관저 앞에 시위대 수천 명이 모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14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사법 개혁 반대 시위.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현직 대법관들과 전직 법무장관들도 정부의 사법 개혁안에 반발하고 있다. 에스더 하윳 대법원장은 "정부가 발표한 사법 개혁은 이스라엘 민주주의에 치명타가 돼 법치주의와 개인에 대한 법적 보호를 가치가 없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브 리브니 전 법무장관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자유와 권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야권은 네타냐후 총리와 내각 주요 인사들이 '셀프 면죄부'를 얻기 위해 사법 개혁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3건의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 아리에 데리 내무장관 겸 보건장관은 조세 포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반아랍 인종 혐오를 선동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고 WP는 전했다.

중도파인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은 네타냐후 총리를 겨냥해 "당신이 가는 길을 계속 간다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시민들이 정부의 사법 개혁에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WP에 따르면 시위가 벌어진 이날 텔아비브엔 1000명이 넘는 경찰이 배치됐다. 또 벤 그비르 장관은 경찰에 선동적인 내용의 팻말을 들었거나 거리를 점거한 시위자 등을 강경 진압하라고 지시했다. 소셜미디어엔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일부 시위자들과 경찰이 실랑이를 벌이는 영상이 번지기도 했지만, 시위는 큰 충돌 없이 대체로 평화롭게 끝났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여권에선 사법 개혁안에 대한 변함없는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이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네타나후 총리가 속한 리쿠드당의 중진 의원 미키 조하르는 "오늘 밤 시위엔 수만 명이 나왔지만, 두 달 반 전 치러진 선거엔 수백만 명이 나왔다"며 "사법 개혁안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13일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개혁안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선거 전부터 논의한 일"이라며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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