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때 철근밭 맨발 투혼…13명 살린 구조견 소백이 은퇴
“어떤 재난 현장보다도 악조건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못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소백이는 포기하지 않고 해내더라.”
영남119특수구조대 김성환 소방장(핸들러)이 1년 전 광주 붕괴사고 현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소백이는 당시 현장에서 실종자 3명을 찾은 인명 구조견이다. 지난 7년 동안('연습생' 2년 제외) 총 223건을 출동했고, 실종자 13명을 찾아냈던 베테랑 구조견이다.
올해 10살, 사람으로 치면 65세 이상이 된 소백이가 지난 13일 중앙119구조본부 대강당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은퇴식엔 조인재 소방청 119구조본부장을 비롯해 소백이의 핸들러 김성환 소방장, 은퇴할 소백이를 입양한 이현주씨, 소백이에게 ‘평생사료이용권’을 약속한 한국애견협회 이사 등이 참석했다. 은퇴식에서 조 본부장은 “국민을 위해 일생을 구조 현장에서 헌신해온 119구조견 소백의 노고를 높이 칭찬하고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백이와 지난 4년 간 함께 근무한 김 소방장은 기자를 만나 “처음엔 숯처럼 새까맣던 소백이가 이제는 할아버지처럼 희끗희끗 수염이 났다”며 “앞으로는 평범한 가정에서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 잘 살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소방장에겐 소백이는 ‘동료’였다. 그의 가방엔 늘 자신의 물통과 소백이의 물통을 나란히 넣었다. 어두컴컴하니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깊은 산에선 서로 의지했다. 김 소방장은 “그럴 때면 나도 사람인지라 무서웠는데 그때마다 소백이가 제 앞을 안내하고 뒤를 지켜줬다”고 전했다.
광주 붕괴사고, 뛰어다니면서 짖었다
1년 전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에서도 김 소방장과 소백이는 한 팀이었다. 샌드위치처럼 쌓여있는 콘크리트 잔해물과 철근 덩어리 사이에서 소방장은 자신의 몸과 소백이를 ‘로프’로 묶었다. 냄새 맡는 데 몰두한 소백이가 외벽이 무너져 내린 건물 20층에서 발을 잘못 디뎠다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람도 문제였다. 사방이 뚫려 있는 고층에선 바람이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나가기 때문에 냄새의 근원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김 소방장은 소백이가 반응을 보이는 곳 주변에 ‘파우더’를 날려 바람의 방향을 파악했다. 콘크리트 더미 가운데 미세하게 바람이 새 나오는 틈이 있었고 안쪽을 헤치고 들어가자 방 크기만 한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들어간 소백이는 막 뛰어다니면서 짖기 시작했다. 광주 붕괴사고 희생자 6명 중 5명은 모두 이 공간 주변에서 발견됐다.
당시 소백이의 활약상이 언론에 보도되며 구조견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오해도 받았다. 소백이가 철근 밭을 맨발로 수색하는 것에 대해 항의가 들어온 것이다. 김 소방장은 “오히려 신발을 신기면 지면 감각이 떨어져 위험할 수 있다”며 “구조견 조끼도 철근 구조물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입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삼풍백화점 사고 뒤 도입한 구조견
현재 각 시·도 소방재난본부에선 소백이와 같은 인명 구조견 총 35마리가 활동 중이다. 인명 구조견은 발달한 후각능력으로 각종 재난사고에서 실종자 위치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내에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특수재난 사고 대비 인명 구조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후 1998년 삼성생명이 인명 구조견 2두를 사회공헌 차원에서 강원소방본부에 기증하며 국가 차원의 구조견 양성 사업이 시작됐다.
구조견 양성은 소백이가 몸 담았던 영남119특수구조대에서 도맡고 있다. 먼저 10개월~2년 미만의 후보 개 중 타고난 체력·소질·성품 등을 검증해 구조견 ‘연습생’을 뽑는다.
선발된 개체는 2년 동안 양성과정에 들어간다. 환경적응·친화 훈련 같은 기초단계부터 산악·붕괴 수색, 헬기출동 등 고난도 훈련을 거친다. 훈련을 마치면 ‘공인인증평가’가 있다. 산악·재난 수색능령과 종합전술(장애물·복종)에서 분야별 70% 이상 점수를 얻어야 비로소 인명 구조견이 될 수 있다. 한 마리의 구조견을 양성하는데 약 2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구조견들은 재난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는 일뿐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거나 실종된 치매 노인을 찾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일하게 된다. 이들의 후각은 사람보다 3만배 더 뛰어나다.
소백이의 경우 훈련 때 사람의 혈액 샘플을 뽑아 건물 2층 소화전에 넣어두면 1층에서 수색하다가도 혈액이 있는 위치 바로 아래에서 천장을 향해 짖었다고 김 소방장은 전했다. 지능도 사람으로 치면 3~5세 아이 수준이다. 집중력은 좋은 편이지만 길진 않아서 훈련은 20분에 한 번씩 끊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출동이 없는 날엔 주기적으로 훈련을 한다.
베테랑 구조견도 산책 땐 ‘먹성 조심’
김 소방장과 소백이는 4년간 ‘합’을 맞췄다. 이제 소백이는 소방장의 눈짓 한 번에도 알아듣고 움직인다. 한동안 김 소방장은 소백이가 은퇴하면 직접 입양 신청을 할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백이가 갑갑한 아파트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쉴 수 있길 바래 망설이던 중 마침 좋은 입양자가 나타나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입양 절차는 까다로웠다. 직원들이 일일이 입양 후보 가정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하고 수차례 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그 결과 구조견 ‘세빈이’와 ‘승리’를 키우고 있던 이현주씨가 소백이를 새 가족으로 맞이하게 됐다.
김 소방장은 이씨에게 소백이를 인계하며 말했다. “수색할 땐 베테랑이어도 평소엔 애교쟁이예요. 코를 잘 쓰는데 먹성이 좋아서 산책할 땐 아무거나 주워 먹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무엇보다 남은 견생(犬生)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키워주세요. 고마웠다, 소백아.”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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