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높이는 노동개혁 잰걸음…숨 돌릴 틈도 없이 연일 TF, 제도 개선
정부의 노동개혁을 향한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테스크포스가 발족하고, 전문가 중심의 자문회의가 열리고 있다. 하나같이 상반기 중으로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기구로 출범했다. 정부의 법·제도 개선 작업도 이달 중에 마무리되는 것이 나올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정부가 올해를 '노동시장 개혁 원년'으로 선포한 건 지난 9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용노동부가 업무보고를 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유연성과 공정성, 노사 법치주의,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 문제, 이런 것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잘못된 것을 상식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절대로 정치나 선거, 진영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 의지는 업무보고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11일 전·현직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을 초청한 간담회에서 "이중구조 착취를 바로잡는 게 노동개혁"이라고 말했다. "노노간 착취를 바로잡자는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대·공기업 중심의 노조가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해 취약한 근로자 계층과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른 정부의 행보는 일사천리다. 업무보고가 끝나자마자 정책 추진 작업에 곧바로 착수하더니 연일 숨 돌릴 틈도 없이 속도전 양상이다.
윤 대통령이 경사노위 위원장과 간담회를 가진 날 고용부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발족시켰다. 전문가 8인으로 구성됐다. 처벌요건이나 제재 방식 등 법 시행과 관련된 전반을 손볼 것으로 보인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가감없이 개선방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에는 개선방안을 낼 방침이다.
12일에는 조선업 상생협의체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 간담회는 이중구조 해소가 목표다. 노동개혁과 직결되는 업종별 추진체인 셈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이중구조는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 추구 탓"이라고 말했다. 조선업 상생협의체가 노동개혁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같은 날 이 장관은 '불합리한 노동 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도 열었다. 김경율 회계사 등 7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노조 회계 투명성과 노동법 개선 방안 등을 도출한다.
특이한 점은 전문가가 전면에 등장하는 노동개혁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거나 노사정 대화로 노동개혁 과제를 도출하던 과거 역대 정부의 방식과 확연한 차이다.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노동개혁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석이다.
정부의 행정 보폭도 넓어지고 빨라졌다. 20일부터 노사부조리신고센터를 운영한다. 노조에 의한 불법, 불합리한 행동은 물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등 전반을 신고받는다. 31일까지는 노조 회계 자율 개선을 유도하고, 점검 결과를 보고토록 했다. 이어 3월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노조를 대상으로 사무실 지원실태와 지원사업 등을 전수조사한다. 건설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부처 합동 지도 ·점검도 예고돼 있다.
그렇다고 노사정 대화의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다만 노사정 대화를 위한 사전 작업이 이전 정부와 결이 다르다. 이달 중으로 경사노위에 설치하는 노사 관행 개선 및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위원회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상생임금위원회는 모두 전문가 중심 조직이다.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아직 대면도 못 한 상태다. 그런데도 조직 내 전문가 회의체 구성에 잰걸음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문가 중심으로 논의 과제를 사전에 도출해 이를 중심으로 협의함으로써 과제 선정에서부터 갈등이 일던 과거 협의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도다. 그만큼 노사정 대화를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얘기다.
제도 개선 작업도 속도전이다.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최대 '연' 단위로 다양화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선안을 2월 중 입법 예고한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 불법·부당행위 규율을 신설하는 노조법 개정안도 내달 중으로 낸다. 노조의 가입 강요, 타 노조원 차별적 조치 요구 등 노조에 의한 불법행위 금지 조항이 담길 전망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올 한 해는 매달 노동개혁을 위한 정책 행보가 지속해서 이어질 것이고, 이게 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노동개혁을 서두르는 것은 경제상황이 위기인 데다 노조의 불법 행동에 대한 국민의 염증으로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한국노총의 위원장 선거(17일)가 끝난 뒤 노정 갈등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현장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 채 소위 전문가 중심으로 끌고 간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선 각 후보도 경사노위 참여에 부정적이다. 상시 투쟁기구 설치 또는 총파업 투쟁을 예고하는 상황이다.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전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일탈을 방치하거나 눈 감는 등 노조가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노동개혁을 하면서 노동계를 배제하고 학자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가 끝나면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겠지만, 노동계와의 진솔한 물밑 교섭 등의 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개혁 행보에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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