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2'를 관통하는 삶의 메시지 변화
[김지원 기자]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이미지 |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일까(What am I)?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비하면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질문이 얼마나 쉬운 물음인지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나의 속성들을 나열하면 된다. 나의 성별, 키, 꿈, 직업, 취미, 나이 등등. 그러한 속성들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나를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What am I)? 의식을 관장하는 뇌가 '나'인 걸까. 신체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신체는 '나'라는 개념에 몇 % 지분을 차지할까. <아바타 2>에서 죽은 쿼리치 대령의 기억을 아바타에 이식하자 그의 아바타는 마치 본인이 쿼리치 대령인 것처럼 느끼고 행동한다. 심지어 후반부에는 쿼리치 대령의 아들인 스파이더에게 일종의 부성애를 느끼는 듯한 모습도 연출된다.
로봇이든 아바타 같은 유기체든 어떤 하드웨어에 기억만 심을 수 있고 그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일까. 기억만 보존할 수 있다면 영생을 살 수 있는 걸까. 불멸이란 것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한편, 기억이 곧 '나'라는 자아라면, 기억할 수 없게 될 경우 '나'라는 정체성, '나'라는 자아 구성이 어려워진다. 기억이 사라지면 '나'에 대한 정립이 안되고, 내가 없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란 질문에 답변할 수도 없다. <아바타 2>는 'what am I'라는 물음에 '나=기억'이라고 답하는 것 같다. 기억할 수 없다면 그저 백업되지 않아 데이터가 날아가버린 채 전원만 켜진 컴퓨터일 뿐이다.
'나=기억'이라는 가정 하에 얼마나 많은 논의가 가능한가. 노인에게 많이 발병하는 알츠하이머 병은 머릿속의 지우개라고 불린다. 노인들이 다른 어떤 병보다 알츠하이머에 걸릴까 봐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는 실존이 위협받기 때문이리라.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 기억할 수 없어 연속된 삶을 살지 못하는 그 두려움은 <메멘토>라는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기억이 없으면 시간을 못 느낀다는 사실이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되면, 기억을 못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간 개념이 사라져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What am I'에 대한 대답은 결국 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만들어내고 과거의 기억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기억의 집합체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기는 자아를 굳건히 지켜주는 수단이며, 나답게 사는 데 도움을 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기록하자. 기억하자. 나라는 존재는 결국 기억의 축적이니까.
삶의 복잡성에서 모순을 이해하다
진리의 반대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가. 진리의 대척점에는 복잡성이 있다. 인생은 복잡하다. 그래서 모순이 필연적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말도 안 되는 게 이해되기도 하는 이유는 인생이 복잡해서다. 이런 모순점들을 하나씩 이해하게 되는 것이 나이 드는 과정이다.
'평화를 위해 싸운다'라는 말은 그 모순성에 아직도 반감이 생기지만 머리로는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나비족이지만 인간이 나비족을 침략해 오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응한다. 그리고 내 가족, 내 부족을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적을 죽여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평화주의자가 전쟁에 나가는 이러한 모순과 복잡성이 삶을 비극으로 만들기도 한다.
모순과 복잡성. 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금의 상태가 고정이고 변하지 않는다면 삶은 복잡하지도 그리 모순적이지도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움직이는 힘, 에너지의 이동이 세상을 복잡하고 모순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또 엔트로피(ἐν-τροπή 에너지 변화) 증가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모순과 복잡도가 늘어나는 세상에서 가만히 있으면 현상을 유지하지 못한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생은 기본값이 고행이다.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 |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판도라 행성에 사는 나비족에게 지구에서 온 인간은 '하늘 사람'으로 불린다.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그들의 하늘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구인으로서 우리는 외계인을 상상할 때 하늘에 떠 있는 UFO를 떠올린다. 외계생명체가 지구의 하늘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외계인이다.
미시적으로 보아 지구 안에서도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대상과의 관계에서 항상 상대성이론이 작용한다. 영원한 지위나 속성은 찾기 어렵다. <아바타 2>에서도 설리 가족이 주류에 있을 때는 권력자였다가 다른 부족으로 건너가 이방인이 되고 소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어느 위치, 장소, 관점에 놓이는지에 따라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물리학에서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걸 밝힌 이론이다. 또한 물리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함을 확인한 이론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의 상대성이론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제가 누구에게나 동일함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내 지위와 속성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대성 이론은 인간이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들고 미래를 준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인적, 경제적 자본을 축적하고 상황 변동의 불확실성을 대비해 관계에 있어서는 호혜적 관계를 맺는다. 인간이 진화하며 취하게 된 전략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바타 2>를 보며 얻은 세 가지 메시지를 점으로 이어 본다. 그 중심에는 "변화"가 있다. 불완전한 기억과 새로운 기억에 구성되는 우리는 언제나 정체성과 자아가 변할 확률을 안고 살아간다. 루빅스큐브의 여섯 면이 모두 맞을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낮은 것처럼, 사람은 변할 확률이 높은 존재다. 또한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선인이 악인이 되기도 하고 본인의 가치관을 어기게 되는 변화를 겪기도 한다. 모든 것은 변하기에 나의 속성들도 언젠가는 달라진다.
결국 "인간은 평생 변화를 다루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큰 메시지를 얻는다. 변화란 자연스러운 것.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이라는 변화에 몸을 싣는다(성장 혹은 노화도 결국 변화).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연스러운 변화를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잘 다룰 수 있는 법을 익혀 인생을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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