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루저' 권순우, 애들레이드II 챔피언 역사 다시 썼다

심재철 2023. 1. 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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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II 테니스 결승] 랭킹 26위 바우티스타 아굿 물리쳐

[심재철 기자]

 권순우가 14일(현지 시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ATP 투어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 결승에서 스페인의 로베르토 바우티스타 아굿을 2-1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 AFP/연합뉴스
세계 랭킹 15위 카레뇨 부스타(스페인)를 16강에서 이긴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권순우의 상승세는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의 토요일 하늘을 꿰뚫고 날아올라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한국 남자 테니스계의 레전드 이형택도 이루지 못한 세계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2회 우승의 위업을 이룬 것이다. 더구나 권순우는 이번 대회 예선 2라운드에서 패했기 때문에 본선에 직행할 수 없었던 '럭키 루저'였기에 더 놀라운 역사를 쓴 셈이다.

남자테니스 세계랭킹 단식 84위 권순우(당진시청)가 우리 시각으로 14일(토) 오후 4시 40분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는 메모리얼 드라이브 테니스 센터에서 벌어진 2023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II(ATP 250) 결승전에서 2시간 42분만에 로베르토 바우티스타 아굿(스페인, 26위)을 2-1(6-4, 3-6, 7-6)로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여기서 최고의 랭킹 점수를 따낸 권순우는 5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이틀 뒤 개막하는 메이저 대회 호주 오픈에 참가하게 됐다.

3세트 두 번의 '러브 게임' 집중력 보여준 챔피언 권순우

이 대회 본선 라운드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84위의 권순우는 예선에 참가해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 게임(예선 2라운드)에서 체코의 토마스 마하치에게 1-2로 패하며 예상보다 일찍 돌아가는 짐을 싸야 했다. 하지만 권순우에게 행운의 소식이 들려왔다. 본선 32강 토너먼트에 이름을 올렸던 일부 선수가 대회 참가를 포기하는 바람에 빈 자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대회 남자단식 대진표 권순우 이름 앞에는 LL(럭키 루저)이 찍혀 있던 것이다. 바로 그 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 

ATP 투어에서 이렇게 특별한 럭키 루저의 우승 기록은 권순우가 통산 열 번째다. 2018년 부다페스트에서 마르코 체키나토(이탈리아)가 아홉 번째 대기록을 세운 뒤 처음이라 세계 테니스계의 보기 드문 뉴스가 된 것이다.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우승한 권순우
ⓒ EPA/연합뉴스
2019년 윔블던 챔피언십 4강에 진출하면서 한 자릿수 랭킹(9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던 실력자 바우티스타 아굿의 서브로 시작한 결승전은 권순우가 초반 기세를 휘어잡았다. 1세트 첫 게임을 권순우가 따낸 것이다. 2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아내면서 침착한 스트로크 싸움을 펼친 권순우의 작전이 주효했다.

권순우는 내친김에 이어진 자기 서브 게임에서 196km/h 속도의 서브 에이스로 러브 게임을 만들어 앞서 나갔고, 첫 세트를 6-4로 따냈다. 세트 포인트조차 204km/h의 완벽한 서브 에이스였다.

권순우가 상승세라고 하지만 그보다 10년 먼저 프로 무대에 나선 바우티스타 아굿의 노련한 스트로크는 두 번째 세트 곳곳에서 빛났다. 2세트 두 번째 게임에서 서브를 넣은 권순우의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것이 드러났고 바우티스타 아굿은 이 결정적인 브레이크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2세트는 바우티스타 아굿이 6-3으로 가져갔다. 

결승전 파이널 세트는 한 순간도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놀라운 순간이 교차됐다. 2세트에서 역전 우승 가능성을 확인한 바우티스타 아굿이 3세트 초반 기세도 휘어잡은 것이다. 3세트 첫 번째 게임 권순우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네트에 걸리는 바람에 바우티스타 아굿의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어진 바우티스타 아굿의 서브 게임도 듀스 끝에 서버의 품으로 들어가 2-0으로 달아난 것이다.

여기서 더 밀리면 권순우에게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3세트 네 번째 게임에서 권순우가 전기를 마련했다. 바우티스타 아굿의 절묘한 드롭샷을 잡아내기 위해 네트 앞으로 달려온 권순우가 짧은 포핸드 크로스 포인트를 따내 듀스를 만든 순간이 압권이었다. 권순우가 바로 이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게임 스코어 2-2를 만든 것이다.

메이저 대회 개막 직전의 ATP 투어 결승전이기 때문에 몸을 사릴 것 같았지만 두 선수는 조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이 더 격렬하게 충돌했다. 일곱 번째 게임 도중 30개의 랠리 포인트, 23개의 랠리 포인트가 연거푸 이어지며 숨을 쉴 수조차 없었고 끝내 바우티스타 아굿이 또 하나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잡아내 4-3으로 다시 달아난 것이다.

파이널 세트에서 두 번이나 자기 서브 게임을 내줬기 때문에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권순우는 포기하지 않고 멋진 뒤집기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3세트 여덟 번째 게임, 바우티스타 아굿이 서브를 넣었지만 네트 앞 백핸드 발리 포인트로 3개의 브레이크 포인트(0:40) 기회를 잡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권순우의 세컨드 서브 백핸드 리턴 위너가 코트를 멋지게 빠져나갔다. 단 1포인트도 내주지 않고 따낸 권순우의 러브 게임이었다.
 
 14일(현지 시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ATP 투어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 결승에서 끈질긴 리턴을 보여주고 있는 권순우.
ⓒ EPA/연합뉴스
 
권순우의 놀라운 기세는 이어진 자기 서브 게임도 러브 게임으로 만들었다. 네트 앞 바우티스타 아굿의 스매싱을 권순우가 기막힌 백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눌러버린 순간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아찔한 타이 브레이크 마지막 고비에서도 권순우의 집중력은 바우티스타 아굿의 그것보다 월등했다.

이번 시즌 눈에 띄게 달라진 권순우의 포핸드 스트로크 위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빛났다. 타이 브레이크 5-4 상황에서 권순우의 과감한 포핸드 크로스가 정확하게 꽂혀서 더블 챔피언십 포인트가 찍힌 것이다. 그리고 네트 앞으로 달려오는 권순우를 피해 때린 바우티스타 아굿의 백핸드 패싱샷이 왼쪽 옆줄 밖에 떨어지며 1시간 15분이나 걸린 파이널 세트가 끝났다.

이로써 권순우는 2021년 아스타나 오픈 우승 이후 개인 통산 두 번째로 ATP 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이틀 뒤 시작하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 기대감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권순우는 16일(월) 시작하는 호주 오픈 남자단식 1라운드에서 미국의 크리스토퍼 유뱅크스(123위)를 만나기 위해 멜버른으로 짐을 옮겨야 한다.

2023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II 결승 결과
(1월 14일 4시 40분, 메모리얼 드라이브 테니스센터, 애들레이드)

권순우 2-1(6-4, 3-6, 7-6{7TB4}) 로베르토 바우티스타 아굿

주요 기록 비교
서브 에이스 : 권순우 11개, 바우티스타 아굿 5개
더블 폴트 : 권순우 2개, 바우티스타 아굿 2개
첫 서브 적중률 : 권순우 54%(53/98), 바우티스타 아굿 59%(60/101)
첫 서브로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79%(42/53), 바우티스타 아굿 75%(45/60)
세컨드 서브로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51%(23/45), 바우티스타 아굿 44%(18/41)
브레이크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57%(4/7), 바우티스타 아굿 57%(4/7)
네트 포인트 성공률 : 권순우 65%(15/23), 바우티스타 아굿 53%(8/15)
위너 : 권순우 42개, 바우티스타 아굿 23개
언포스드 에러 : 권순우 22개, 바우티스타 아굿 16개
서브 최고 속도 : 권순우 210km/h, 바우티스타 아굿 195km/h
첫 서브 평균 속도 : 권순우 192km/h, 바우티스타 아굿 178km/h
세컨드 서브 평균 속도 : 권순우 154km/h, 바우티스타 아굿 156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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