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만 하루 5조원씩 나랏빚 늘어..美 ‘금융 아마겟돈’ 공포
공화당 "재정지출 삭감 없이 나랏빚 못늘려"
금융시장 혼란 우려 가중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정부 부채 한도 상향이 미국 의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나랏빚이 한도 턱밑까지 차올라 미 행정부가 더 이상 빚을 낼 수 없는 상황이 가까워졌지만, 공화당 강경파는 부채 한도 상향에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미국 정부는 지난달 하루 약 5조원의 빚을 새로 만들어 낸 것으로 나타나 부채 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공화당과 백악관·민주당의 정치적 충돌이 격화될 가능성이 예상된다. 양측의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과 고조되며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 부채 한도 못 올리면 국채 발행 막혀
15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부채 한도 상향 문제는 최근 공화당 의원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선출 이후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정부 부채 한도 상향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타협에 반대하며 매카시 의장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부채는 현재 31조달러를 넘어섰다. 정부 부채 한도(31조4000억달러) 가까이 차올랐고 이를 넘어설 경우 국채 발행이 막히게 된다. 미 정부가 지난 1939년 국가 부채 한도 제도를 도입한 후 부도를 낸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지금까지 90차례 이상 한도를 상향해 디폴트 위기를 넘겨 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치적 쇼'로 끝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르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미국 방송 채널 CNN은 디폴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며 향후 시장이 대혼란에 휩싸이는 '금융 아마겟돈(대종말)'이 도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강경파 완강…불안한 매카시 입지
미국 현지 언론이 디폴트 위기까지 거론하는 것은 매카시 의장의 당내 입지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카시 의장이 미국 권력 승계 서열 3위인 하원의장에 선출되긴 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로 남북전쟁(44회) 이후 가장 많은 15차례의 재투표 끝에 하원의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통상 미 하원의장 선출 투표가 요식 행위로 간주되는 것에 비춰 보면 당내 입지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부채 한도 상향에 반대하는 당내 강경파 의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칩 로이 공화당 의원은 부채 한도 상향 문제를 정부 지출 삭감과 연계해야 한다며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타협할 경우 즉시 해임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디폴트 위기가 와도 공화당 강경파는 꿈쩍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까지 있다.
자렛 세이버그 코웬 워싱턴 리서치 그룹 애널리스트는 "문제는 미국 공화당 내 강경 우파 하원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가 채무 불이행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과거엔 양당 모두 디폴트를 원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이 부채 한도를 둘러싼 디폴트 경고에 무감각해진 게 (차라리) 감사할 정도"라고 전했다.
美 재정적자 급증…갈등 장기화되면 금융시장 혼란
설상가상 미국의 재정적자도 급증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850억달러(약 105조7000억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년 전 같은 기간(213억달러) 보다 적자 규모가 무려 4배 증가했다. 금리인상에 따른 국채 이자 비용 증가 등이 원인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총부채는 지난 10일 기준 31조3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정부 부채 한도(31조4000억달러)까지 약 1000억달러가 남았다. 이에 대해 미국의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부채 중독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은 부채 한도 상향의 전제로 재정 지출 삭감을 요구하고 있어 백악관 입장에서는 더욱 난처한 상황이 됐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임기 초 시행한 확장재정 기조에 대해 공화당 안팎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극복 등을 위해 1조9000억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내놨는데, 이 같은 대규모 재정 투입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선 미국 정부의 디폴트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자칫 양당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대치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 증시가 급락하고,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 2011년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는 8월까지 국가 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늦어도 10월 이전이 데드라인이 될 것"이라며 "정부 부채 한도 문제는 지난 10년간보다 올해 더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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