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돈으로 명품 산다"...'문구 덕후' 불러 모은 핫플 비결 [비크닉]

박영민 2023. 1.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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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새로운 마음


새해의 문턱, 1월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13년 전 스무 살이 됐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꼭 이맘때쯤 칼바람이 부는 1월의 겨울이었어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세상에 나아갈 준비에 한창이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재수 종합학원으로 첫걸음을 하던 우울한 재수생이었죠.

고3 내내 썼던 제도 샤프를 버리고, 대형 서점으로 가 새로운 샤프펜슬과 샤프심을 고르고 또 골랐어요. 가고 싶었던 대학 문턱에서 미끄러진 것이 샤프 탓이겠냐마는, 새것을 사니 새로운 마음가짐이 들어 좋더라고요.

샤프를 사서 돌아오는 발걸음에 기분만큼은 산뜻했던 저처럼, 문구 하나에 가슴 설레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있어요. 비크닉 새해 첫 레터는 '문구 덕후'가 차린 문구점,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포인트오브뷰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포인트오브뷰

#연필과 지우개를 스토리텔링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한 포인트오브뷰. 연필, 샤프, 볼펜, 종이, 지우개 등 필기구와 그를 사용하는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까지, '문구'라 하면 떠오르는 모든 제품을 한곳에 모아둔 문구 편집숍 브랜드예요.

2018년 성수동 카페 '오르에르'의 2층 한 구석, 20평 정도 되는 곳에 조그맣게 차린 판매대가 포인트오브뷰의 출발이었어요. 간판도 없이, 아는 사람만 아는 점포 속 또 다른 점포였죠. 지난해 11월 새단장을 해 공간을 확장하면서 지금은 180평, 3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요.

포인트오브뷰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1층 모습. 사진 포인트오브뷰


'창작을 위한 도구를 제안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곳.'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든 김재원 대표는 포인트오브뷰를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했어요. 브랜드명 포인트오브뷰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관점’이라는 뜻이에요.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관점이자, 도구를 보는 이들의 관점이기도 하죠.

"연필로 종이에 글이나 그림을 그렸을 때 어떤 사람은 사각거리는 느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물 흐르듯이 부드러운 촉감을 좋아하죠. 포인트오브뷰는 그러한 다양한 관점에 맞춰서 상품을 제안하는 곳입니다."

포인트오브뷰의 상징은 세잔느의 사과다. 사과 정물화를 즐겨 그린 세잔느는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사과를 작품에 녹였다. 사진 박영민

#써본 이와 써보지 않은 이의 경험치는 달라


포인트오브뷰의 상징은 사과예요. 애플(Apple)이 아닌, 프랑스의 화가 '세잔느의 사과'죠. 정물화의 대가인 세잔느는 일평생 사과 그림을 그렸어요. 그는 사과를 한 각도에서 본 것이 아니라 앞, 뒤, 옆, 위에서 각각 본 시점을 하나의 프레임에 그려 넣었어요. 하나의 오브젝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작품에 녹아 있죠.

브랜드의 상징인 사과를 그려 넣은 다이어리, '애플 저널'에도 포인트오브뷰가 도구를 대하는 관점이 숨어있어요. 성경처럼 측면을 금박과 은박으로 길딩(Guilding, 박 인쇄)한 것이 특징인 제품이죠. "다이어리에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도할 때의 마음으로 빗대어 표현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에요.

포인트오브뷰의 대표 상품 '애플 저널'. 측면을 금박과 은박으로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 박영민


"한번은 가게를 방문한 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세상에 문진(文鎭,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눌러두는 물건)이라는 것을 돈을 주고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라고요. 그 학생에게 문진은 쓸모없는 것이라 돈을 주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죠. 문진을 사러 일부러 가게에 방문하는 고객도 물론 있어요. 문진을 써본 사람과 써보지 않은 사람의 경험치는 달라요. 그 역시 관점의 차이인 거죠."

제품의 배치 등 고객의 관점에서 공간 구성을 신경 쓴 점도 특징입니다. 포인트오브뷰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해리포터의 도서관 같은 인테리어에 끌려 가게 곳곳을 산책하듯 물건을 살펴보죠.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본 것이 연필이라면, 바로 근처에서 연필과 어울리는 노트를 금세 찾을 수 있어요. 물론, 군데군데 숨어있는 예측할 수 없는 구성 또한 포인트오브뷰가 추구하는 공간의 매력입니다. 노트를 둘러보다가 옆으로 돌아섰는데 갑자기 유리구슬 오브제가 툭 튀어나와 호기심을 유발하죠. 당장 제품을 구매하진 않아도, 공간을 체험하는 것만으로 잠재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에요.

제품에 대한 관점을 설명하는 짤막한 토막글도 제공한다. 사진 박영민

#문구 덕후를 불러 모은 비결


포인트오브뷰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다는 성수동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가 됐어요. 또 다른 매장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점포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도, 상품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MD도 없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광고비를 써본 적도 없죠.

광고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을 가게로 불러 모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문구는 비교적 호불호가 나뉘지 않는 제품이에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바로 펜과 종이죠. 김 대표는 "적은 돈으로도 잘 만든 ‘명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부연했어요. "좋은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를 지불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10만원이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품질의 볼펜과 노트를 살 수 있어요."

포인트오브뷰에 방문한 한 소비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문구에 대한 관점을 메모지에 기록했다. 사진 박영민

#좋은 도구를 보는 안목


"어릴 때부터 문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모님께 용돈으로 100원을 받으면 친오빠는 슈퍼마켓으로 가서 100원짜리 과자를 사 먹었지만, 저는 문방구에 들러 100원으로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어요. 문방구 사장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젠 꿈을 이뤘네요. 도구가 바뀌면 창작물도 달라진다는, '도구빨'을 믿어요."

포인트오브뷰엔 문구 덕후인 김 대표가 직접 써보고 괜찮았던 제품들로 가득해요. 김 대표의 문구 콜렉션인 셈이죠. 이렇게 모은 제품 가짓수는 1만여개가 넘어요.

김 대표는 "좋은 제품을 보는 안목을 가지려면 일단은 많이 써봐야 한다"고 했어요. 또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창작을 위한 도구들을 모아 이런 상품도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문구를 잘 만드는 나라의 제품을 가져와 소개하고, 우리가 또 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직접 개발해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덧붙였어요.

사진 언스플래시

#뱀발: 성수동과 젠트리피케이션


"큰 공간과 작은 공간, 이상한 공간이 혼재하는 것이 성수동의 매력이었어요. 세련된 공간과 노포가 함께인 곳. 청담동이나 한남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죠." 김 대표는 2018년, 포인트오브뷰가 성수동에 처음 발을 디뎠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요즈음 성수동의 분위기는 그 때와는 사뭇 달라졌어요. 몇 달 새 골목골목마다 스티커 사진 숍 같은 프랜차이즈 점포가 많이 들어섰고요. '팝업스토어는 성수동에 차려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기면서 가게를 여는 것보다 '대관'을 하는 게 돈이 되는 동네로 바뀌고 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원주민이 내몰리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자리를 메우는 현상)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죠.

"스티커 사진 숍 같은 것도 있으면 좋지만, 그런 공간이 '성수동의 콘텐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팝업 또한 '변주' 콘텐트일 뿐, 메인 콘텐트는 아니죠. 메인 콘텐트를 만드는 공간도 함께 늘어나야 변주 콘텐트도 힘을 받아요. 포인트오브뷰가 그 역할을 미약하게나마 돕고 싶어요."

브랜드와 공간, 동네가 성장하는 것은 모두 콘텐트의 힘이라 믿는 김 대표. 콘텐트를 '돌보며' 성수동의 생명력을 연장하겠다는 포인트오브뷰의 원대한 계획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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