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무인기 놓고 분열하는 동안, 매섭게 투지 다지는 北 [Focus 인사이드]
연말연시, 한국이 북한 소형 무인기의 영공 침입 사건으로 분열하는 동안 북한은 계획 달성을 위한 국가적 결집을 강화하고자 했다. 2022년 마지막 주, 북한은 제8기 제6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 그리고 제9차 조선소년단 대회를 개최했다. 뒤이어 2023년 첫 주에는 해당 행사들을 통해 하달된 과업들을 여러 번 주입하고, 과업 달성의 의지를 독려하기 위한 선전선동에 분주했다.
특히 행사들에서는 2023년은 물론, 향후 50년을 내다보며 세대를 아우르는 정치적 결의를 세우고, 이를 위한 정신적 무장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북한 정권이 현재 엘리트들과 미래 엘리트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입한 핵심 내용은 북한의 적이 누구인지, 그리고 핵무기가 왜 필요한지였다.
먼저 현재의 모범 당원들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남조선 괴뢰”이며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이라고 표현했다. 북한 매체 사설에서야 흔한 일일 수 있지만, 그간 김정은이 한 전원회의나 당대회 보고에서는 한국을 ‘남조선 당국’이라고 불렀다. 북한은 이미 2022년 6월, 상반기 결산 및 하반기 계획을 실시한 제5차 전원회의 때서부터 대남사업을 ‘대적투쟁’으로 바꿔 표현한 바 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대미, 대적 대응방향’이라는 표현으로 적이 한국임을 암시했다.
또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전술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군수로동 계급의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에서는 이 방사포들이 “침략자 미제와 괴뢰 군대”에 대항하는 것이며,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을 탑재하여 “적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전투적 사명을 가졌다고 밝혔다. 전술핵으로 한국에 대한 공격 위협을 노골화한 것은 2022년 4월부터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일관성 있게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5년 만에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소년단 대회에는 강국 건설의 역군, 미래의 당원들로 추켜세워진 수천 명의 모범단원들이 모였다. 소년단은 1946년 6월 6일에 결성됐고, 300만 명이 가입돼 있다. 지난 8차 대회인 2017년에는 김정은이 비교적 짧게 연설을 했다. 이번에는 훨씬 긴 서한을 보내고, 대신 함께 사진을 찍고 값나가는 선물을 증정하며 훨씬 더 공을 들였다. 후대를 위한 사업이 당의 제일 중대사라고 밝힌 서한을 읽어보면, 최근에 무기를 시찰한 현장에 여러 번 딸을 데리고 나타난 의도가 보인다.
서한에서는 ‘제국주의자’에 대한 언급이 있을 뿐 적이나 무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던 과거 연설과 달리, 적에 대한 인식과 무기 개발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심어주고자 했다. “세계 최강의 무기”를 만드는 이유가 후대들에게 “자손만대 복락할 영원한 강국을 물려주기 위함”이고, 북한이 강한 이유는 핵무기뿐만이 아니라 혁명의 교대자인 후대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놈들과 그 앞잡이들”이 소년원들의 보금자리와 희망을 빼앗으려 하니, 만일 그들이 덤벼든다면 탱크와 대포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직접 용맹하게 싸워야 한다고 했다. 2017년에 연설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었지만 누가 듣기에도 표현이 훨씬 노골적이다.
북한의 무인 정찰기 위협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북한의 무인 정찰기 개발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의 일부다. 그러나 당시 제시한 전략적 과업 중에 북한이 스스로 꼽은 최우선 5대 과업에는 속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는 눈앞에 떨어진 무인기로 분열해 서로를 탓하는 동안,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쌓고 한반도를 초토화할만한 능력을 제고하는 데 세대를 아우르는 전 인민을 동원하고 있다.
2021년에는 노동당원들에게 고난의 행군 때의 정신이 필요하다더니, 이번에는 1960년대, 70년대의 투쟁 의지를 촉구했다.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전후 재건을 넘어서 우리식 사회주의로 체제경쟁에서 이겨보겠다던 그때의 혁명적 투지는 한국에 대한 명백한 적대의식과 대결 구도로 인해 가공됐다. 다시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북한의 두텁고 매서운 투지가 두렵지는 않다. 다만 세대를 아울러 덤벼드는 북한을 앞에 두고, 우리끼리 싸워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깎아 먹는 일만은 이제 좀 그만했으면 한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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