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21만명 사망” 세계 최강 미국, ‘펜타닐’에 붕괴중
미국은 ‘악마의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과 전쟁 중이다. 2015년~2021년 6년 동안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21만명에 이른다. 자살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펜타닐 중독에 따른 사망자가 많다.
미국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Families Against Fentanyl)’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 6년 동안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20만949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2015년 이후 거의 모든 주에서 100% 이상 증가했다. 루이지애나주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5년 이후 24.6배 증가했고,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의 사망률은 20배 이상 증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근 미국 18~49세 사망 원인 1위는 불법 펜타닐 중독이다.
펜타닐은 말기 암이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보다 훨씬 강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 소량으로도 치사량에 이를 수 있다. 니코틴의 치사량이 40~60mg이라면 펜타닐은 2mg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펜타닐에 대해 ‘미국이 직면한 가장 치명적인 마약’으로 규정했다. DEA는 지난해 말 3억8000만번 정도 투약할 수 있는 양의 펜타닐을 압수한 뒤 “미국인 모두를 숨지게 할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다.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사고는 유명 연예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1일 인기 여성 래퍼 ‘갱스터 부’(롤라 미첼)는 친구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유명 힙합 그룹 ‘스리 6 마피아’ 멤버다. 갱스터 부의 몸에서 마약 성분이 발견됐는데, 펜타닐을 섞은 물질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인기 드라마 ‘워킹데드’의 스핀오프 시리즈에 출연했던 18살 배우 타일러 샌더스도 펜타닐에 중독돼 숨졌다.
펜타닐의 급격한 확산에는 마약성 진통제라는 이유로 펜타닐류의 약물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NYT는 전했다. 허술한 감시를 틈타 미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중국의 비협조적 태도도 미국 내 펜타닐 확산의 배경으로 언급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펜타닐은 주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대량 제조해 미국에 유통한다. 그런데 인권·대만 문제 등과 관련한 미국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중국이 자국의 펜타닐 성분 제조사들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헐겁게 잡아 미국 내 펜타닐 유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WSJ은 2018년부터 미중 양국이 펜타닐의 불법적인 유통을 막기 위한 협력을 시작했고, 중국이 자국 내 화학기업들의 펜타닐 성분 생산과 판매를 제한함으로써 미국 내 유통도 줄었으나 미중 충돌 때마다 중국의 비협조가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 진정제 ‘자일라진’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에서 자일라진이 함유된 경우가 90%를 넘고, 뉴욕시에서도 마약 샘플 중 25%에서 자일라진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자일라진은 규제약물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마약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자일라진은 말이나 소의 마취제나 고양이 구토유발제로 널리 쓰는 동물용 의약품인데, 미국에서는 ‘트랭크’(tranq), ‘좀비 약’(zombie drug) 등 속어로 불린다. 마약중독자이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자일라진을 펜타닐 등 기존 마약과 섞어 주사로 투약하면 여러 시간 동안 정신을 잃기에 성폭행이나 강도 등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팔다리 등에 ‘괴사 딱지’라고 불리는 죽은 부스럼 조직이 생겨,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중독성이다. 자일라진 투약 후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날 때는 약효가 이미 사라진 상태여서 다시 마약을 투약하게 된다. 또 자일라진을 아편류 마약과 섞어서 투약하면 마약류 과량투여를 치료하기 위한 응급치료의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실제로 타투 아티스트인 브룩 페더는 자일라진을 투약했다가 뼈까지 상처가 번져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여전히 하루에 여러 차례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 금단증상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자일라진은 미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NYT는 지난해 6월 발표된 연구를 인용해 미국 수도 워싱턴DC, 그리고 50개 주 중 36개에서 유통되는 마약에서 자일라진이 검출됐다고 전했다. 필라델피아시 켄싱턴 지역의 마약중독예방센터 사회복지사 숀 웨스트팔은 “필라델피아는 이미 늦었다”며 “전국의 다른 지역이 이를 피할 방법이 있다면, 우리 얘기를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의 광범위한 확산에 미국에서는 갖가지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학교 교사가 약에 취해 학생들 앞에서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필드의 루스벨트 중학교 한 교실에서 미술 교사 프랭크 톰슨(57)이 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반응이 없는 상태인 것을 학생들이 발견했다. 학교 측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톰슨의 교실 옷장에서 펜타닐을 비롯한 다양한 마약 관련 도구를 확보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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