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돌봄'.... 성미산 마을 방과후 교사의 고백

김상목 2023. 1.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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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김상목 기자]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포스터 이미지
ⓒ 스튜디오 그레인풀
 
'돌봄'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물이 스며들 듯 번진 지 오래다. 아이들로부터 노인,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과 범위는 무한 확장 중이다. 분명히 예전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전 사회적으로 범람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돌봄 영역은 온전히 주체와 책임이 확립되진 못한 상황이다. 장애인의 경우는 장애인 복지정책에서 활동지원사/활동보조인 등의 명칭으로 통용되는 지원인력과 관련 시설 등에서 돌봄이 행해지고, 노인의 경우는 지역 사회복지기관과 관공서 등을 중심으로 '지역사회통합 돌봄'이라는 개념으로 시행되는 중이다. 여기까지는 '복지영역'으로 (실제 실행문제는 논외로 치자면) 큰 문제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념과 주체 문제에서 혼란을 겪는 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영역이다. 현재 대부분은 '초등 돌봄 교실'이라는 형태로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학교 교실 등을 활용해 행해지는 형태로 제공된다. 소수의 정교사를 제외하면, '돌봄 전담사' 등의 명칭으로 교육공무직원으로 채용된 이들이 정규수업이 끝난 뒤 몇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 동안 방과 후 수업 등의 과정이 행해지기도 한다. 사교육 시장의 과도한 범람을 막고 맞벌이 가정의 보육 문제도 일정 부분 해소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돌봄 교실은 나날이 학교 내에서 비중이 커지고, 일부 저학년을 넘어 적용대상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는 중이다.

하지만 그 유용성을 넘어 현재 초등 돌봄 교실은 정책적으로 격심한 논쟁에 휘말린 상황이다. 이 돌봄 영역의 책임주체가 학교인지 지자체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즉, 교육 vs. 복지 영역 중 어디에 속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이는 도시공간에서 유·청소년들에 대한 복지 기능과 영역의 관리 및 책임주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쉽게 번져나간다. 초등학교에선 정규 수업기능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교가 탁아소 마냥 과외업무에 시달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학교 내 주체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중이다(교사와 교육공무직원, 교육청과 개별 학교 관계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초등학교 내에서의 돌봄 논란이 악화되면서 돌봄은 복지 영역이니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의도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이런 부류의 논란은 결국 학교 vs. 지자체 간 책임소재 문제로 기울곤 한다. 학교가 물리적 공간은 제공할지 몰라도 인력 관리와 책임주체는 기초 지자체가 맡으라는 요구가 존재한다. 관련 당사자들은 합종연횡하며 무성한 입장들을 내지만 근복적 해결을 위한 대안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느새 돌봄 영역은 우리 사회 전반의 현황과 전망 차원으로 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1) 공교육 기관인 학교 vs. 사교육 영역인 학원
(2) 초등교육 영역 (초등학교) vs. 지역복지 영역 (행정 및 복지기관)

이렇게 대비되는 관리주체 논란은 매년 쟁점으로 뜨겁게 타오르지만 명확하게 해소되지는 못한 채다. 혹자는 명백하게 복지 영역인데 왜 교육 영역이 억지로 떠맡아야 하냐고 강조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 동네 학원들이 그저 사교육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금방 인지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지역사회가 아이 돌봄을 책임지려 해도 이미 도시공간에서 기존에 아이들을 이웃들이 맡아주던 '마을' 기능은 소멸된 지 오래다. 출생률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족도, 동네 이웃도 이제 돌봄 기능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본질적 문제인 셈이다. 그 근본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소모성 논쟁은 거듭될 테다.

교육과 복지 사이 어딘가에 '도토리 마을 방과후'가 있다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
ⓒ 스튜디오 그레인풀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 일대엔 '성미산 마을'이란 명칭의 도시 속 마을공동체가 존재한다. 1994년부터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마을공동체를 모색하며 공동육아를 실시하던 끝에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가 들어서고 천 단위의 도시 속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그 주동력의 출발부터 이곳은 공동육아를 실행했고 그 흐름은 여전히 지속되는 중이다(성미산마을은 이후 대도시 영역에서 마을공동체 추진의 롤 모델이 되었다). 마을의 기원이 된 공동 돌봄 및 교육공동체는 현재 '도토리 마을 방과후'라는 명칭으로 존재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바로 이곳에서 부대끼는 60여 명의 아이와 그들과 함께 하는 5명의 교사, 그리고 '아마'라 불리는 학부모들의 풍경을 담았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는 알고 보면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태동과 거의 동일한 역사성을 지닌 유서 깊은 곳이다. 1996년부터 활동했으니 말이다.

영화는 (공동감독인 황다은의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다이렉트 시네마', 즉 관찰영화 스타일로 이 마을 방과후 속의 사람들 풍경을 풀어낸다. 제작진은 5~6년간 지속적으로 촬영을 진행했지만 특히 코로나19 이후 몇 년간에 집중한 구성을 택했다. 영화는 한 학기의 시작과 끝처럼 영화적 시간이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의도하는 구성을 취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창궐 후 공교육이 마비되어버린 상태에 주목한다. 줌 수업 등 온라인으로 전환된 교육과 공적 돌봄의 공백에 직면한 도토리 마을 방과후 주체들의 고민과 대응을 담아냈다.

제작진은 '친밀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미증유의 대란에 직면한 마을 방과후 관계자들의 고충을 해설하는 데 집중한다. 황다은 공동감독의 내레이션은 마을 방과후 교사의 목소리를 의도한 것처럼 다가온다. 시작부터 내레이션을 통해 마치 교사가 업무일지 겸 일기장을 써 내려가는 것처럼 관객에게 전하고픈 행간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이들은 10년을 마을 방과후에서 활동했더라도 관련 경력을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20대에 사회 첫 직장으로 출발한 교사가 10여 년이 지나 40대가 되었음에도 혹 이직을 한다면 이들의 이력서 경력란은 공백으로 남는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핸디캡에도 '공동체'라는 가치에 기반을 두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에 마을 밖을 나가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악조건을 견디는 교사들의 고충과 의문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늘 따라붙던 문제이지만 역병의 창궐 후 몇 겹 더 심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협동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고민과 분투는 거듭 이어진다. 수년간 그들을 지켜봐 온 제작진은 '그림자 노동'을 떠맡아 몸부림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인 그들을 조명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그 목적성을 위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관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명백히 깨닫게 된다.

초반부에서 마을 방과후의 일상과 고충이 설명된 직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가 이미 겪고 봤던 상황이 시작된다. 방과후 교실의 기본전제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부모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유예된 시공간인데 그 대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타인들과 섞여 들게 하기 망설인다. 20여 년간 축적해 온 활동형태가 붕괴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속 편하게 덩달아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장 고립된 초등학생들은 국영수를 넘어서는 '교육'에서 단절되어 버렸다. '급식'이 중단되어 끼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 영화는 우리 사회 전체가 치렀던 숙제를 압축적으로 모색하고 답을 제시해야 했던 이 지극히 작은 공동체의 고뇌를 찬찬히 전하려 노력한다. 이 영화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99.9%는 이들의 고민과 실천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버릴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이 기록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스펙터클 등속과는 담을 쌓은 채 이들이 모여서 회의를 거듭하고 도시락을 만들어 가가호호 방문하고 집단수업 대신 과제 꾸러미를 전하는 순간들을 담아낸다. 이렇게 영상으로 편집되기 전에는 공동체 바깥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호명의 순간이 스크린 가득히 펼쳐진다. 관객은 다른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본 작품의 속도에 현기증이 나다가도 어느 순간 만든 이들의 본의와 접속하게 된다면 우리 각자가 지난 3년 간 어떻게 견뎌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영영 잃어버렸는지 반추하게 될 테다.

형식논쟁을 넘어 공동체와 돌봄의 본질을 묻다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
ⓒ 스튜디오 그레인풀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19의 시기를 회고할 수 있게 해 준 영화의 시간이 저물면서 마치 학기 종업식을 지켜보는 것 같은 순간이 재현된다. 바로 '작별'의 순간들이다. 5명 남짓한 교사 중 '논두렁'이 새로운 삶을 출발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는 결단을 내린다. 하지만 본인도 주변도 모두 힘들고 슬프다. 새 출발을 축복하지만 언제든 돌아오길 권한다. 뭉클한 풍경이다. 그리고 공적인 초등 돌봄 교실보다 훨씬 커버하는 영역이 넓은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졸업' 행사가 뒤따른다. 결국 초등학생 시절이 끝나면 이곳에서 감당하는 시간도 마치는 터라 6학년을 마치면 공식적인 방과후 교실 인원에서도 졸업해야 한다. 카메라는 그렇게 몇 겹의 작별을 통해 이 공간이 갖는 본령에 대해 관객이 성찰해 주기를 권한다. '간절히' 말이다.

관찰 다큐멘터리의 정석과는 동떨어진 것 마냥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내레이션이 영화 내내 이어지고 자막 해설도 시작과 마무리에서 제법 늘어지게 등장한다. 요즘 유행하는 '미학적', '예술적' 표현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영화를 만든 공동감독 중 국내 대표적인 촬영감독으로 손꼽히는 박홍열의 이름값을 떠올리면 의문스러운 작업방식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이 본 작업을 시작하게 된 기원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은 어렵지 않다.

에필로그에서 논두렁 외에도 영화 내내 마을 방과후를 지켜왔던 교사들 다수가 각자의 사정으로 이곳을 떠나게 되었음이 밝혀진다. 그렇게 존재하는 마을공동체 속 돌봄 교실을 누군가가 떠올려주기를 바라며 애써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관객은 문득 깨닫게 될 테다.

그저 훈훈한 소감으로 그치는 게 아닌, 돌봄의 공적 논의를 떠올리는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제작진은 소망하며 카메라를 들었을 게 분명하다. 여기에서 추가적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금껏, 그리고 여전히 한국사회 내 소수자 옹호와 지지를 수행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에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 행해지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그 본원적 태도가 망실되는 것 아닌가 염려하는 이들에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청량감 넘치는 작업으로 다가올 것이다.

본 작품은 2012년 제작된 <춤추는 숲> 이후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사적 역사기록으로도 유용한 효용을 지닌다. 영화가 다루는 쟁점이 결국 개별 교육이나 복지제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 공동체 기능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와 돌봄 문제의 해답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두 작품을 연작으로 관람하는 것도 충분히 권할 만하다.

추가로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내밀한 속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을 위해 영화 속 주역이라 할 교사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도 출간되었다.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돌봄과 교육 사이> (지은이 박민영, 손요한, 한은혜, 박상민, 베르단디, 2023)를 함께 본다면 이 영화 속에 응축된 감성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제에 더 깊숙이 대면할 수 있을 테다.
 
작품정보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The Teachers: pink, nature trail, ridge between rice paddies, plum
2022|한국|다큐멘터리
2023.01.11. 개봉|94분|전체관람가
감독 박홍열, 황다은
출연 분홍이, 오솔길, 논두렁, 자두
내레이션 황다은
제작 및 배급 스튜디오 그레인풀
 
2022 23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2022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코리안쇼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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