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가게 사장님이 환경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법

이준수 2023. 1.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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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소비기한 계도 기간... 초신선 식품 선호와 초신속 음식 폐기는 별반 다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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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기자]

올해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으로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마트를 찾았다. 내가 소비기한 도입에 귀를 쫑긋 기울인 이유는 마트에서 '마감 세일 상품'을 자주 사 먹기 때문이다. 나는 맛이나 위생 측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식품을 단지 유통기한이 하루 지났다는 이유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멀쩡한 음식을 정가보다 싸게, 운이 좋으면 반값에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비기한제 도입으로 세일 품목이 늘어났을 줄 알고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겼다. 들뜬 마음으로 세일 코너 앞에 섰으나 작년과 별 차이는 없었다. 마트 측이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혼자서 왠지 시무룩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세일 확대를 기대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소비기한제 도입 첫 해는 계도 기간
 
 마트에서 할인 판매하는 상품. 유통기한이 넉넉한 데도 30%나 저렴했다.
ⓒ 최은경
통상적으로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날짜가 더 길다. 예컨대 요거트는 냉장보관을 잘하여 개봉하지만 않는다면 기존의 유통기한에서 열흘이 지나도 먹을 수 있다. 두부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90일 이상 보관도 가능하다. 소비기한이 늘어나면 식품이 상할 수 있으므로 마감 세일을 해서라도 빨리 처분하지 않을까, 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명백한 오판이었지만.

의외였던 점은 소비기한이라고 표시된 식품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름 마트 곳곳에 홍보 안내문도 붙어있고, 연말연시에 뉴스에서 제법 반복적으로 보도가 나왔는데 소비기한보다 유통기한 표시가 더 흔했다.

알고 보니 올해는 소비기한제 도입 첫 해라 1년 간 계도기간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즉 2023년에 식품회사는 유통기한으로 표기해도 되고, 소비기한으로 표기해도 되는 것이다. 어떤 제품은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이라는 용어 없이 날짜만 찍혀 있기도 했다. 

나는 다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음식을 가급적 오래 먹으면 좋지 뭐'라는 생각을 하며 알뜰 코너에서 세일하는 제품을 집어 들었다. 소비기한 제도의 도입 취지 중 하나는 짧은 유통기한으로 인한 음식물 폐기를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시행 초기라 변화가 잘 실감 나지는 않지만, 소비기한제 도입 자체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우리는 꽤나 잔인하고 역설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지구 인구 열 명 중 한 명은 굶주림을 면치 못하는데, 생산되는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진다. 소비기한제의 효과가 미미하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쉽게 버려지는 음식의 위험성을 알리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기준 미달로 버려지는 음식들
 
 매주 주문해서 먹는 못난이 유기농, 무농약 채소들.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런 채소들이 부지기수로 버려진다.
ⓒ 이준수
 
음식이 버려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식판에 받은 급식이 맛이 없어서 혹은 양이 많아서 버릴 수 있다. 또는 김밥이 쉬어서 버릴 수도 있다. 곰팡이가 핀 고구마도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진심으로 안타까운 것은 단지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괄 버려지는 깨끗한 음식이 상상초월로 많다는 점이다. 명품 의류 브랜드가 불황 시즌에도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안 팔린 옷을 소각시켜버릴지언정 염가 판매를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시장가치가 없는 제품이라고 해서 비위생적이거나 맛까지 떨어질까? 무농약으로 텃밭을 꾸려 본 우리로서는 마트 전단지에 등장하는 예쁜 파프리카와 참외가 얼마나 나오기 힘든 결과물인지 뼈 저리게 알고 있다.

우리가 키운 야채는 못 생겼다. 그림처럼 반듯한 샐러리와 브로콜리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잘 안 됐다. 그렇지만 비닐하우스도 아니고, 농약도 안 친 노지에서 반은 버리고(벌레와 새들에게 강제로 헌납하고), 남은 반을 먹는 우리로서는 못생긴 야채와 과일이 얼마나 건강하고 맛있는지 혀로 경험했다.

채소를 많이 먹는 우리 집은 작은 텃밭 생산량으로는 도저히 식사량을 맞출 수 없어서 유기농, 무농약 채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유기농이라 하니 이용료가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의외로 별로 비싸지 않다.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사 먹기 때문이다. 매주 종이상자와 최소한의 생분해비닐에 싸여 배송되는 못난이들은 제각기 사연이 있다.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생김새가 표준적이지 않아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 표면에 자잘한 무늬가 남아서 정규 시장에 공급되지 못했다. 

텃밭에 익숙한 우리가 보기에는 충분히 매끈한 고급품이지만, 냉정한 시장의 기준에는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입에 넣어보니 역시 맛있고 신선했다. 건강 생각해서 유기농에 발 디뎠다가 맛있어서 그만두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기농, 무농약 식재료는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이렇게 근사한 식재료가 획일적인 '예쁜이 농산물 기준'에 미달하여 썩어 없어질 운명이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소비기한제 도입에 찬성하는 까닭 중 하나는 초신선 제품 선호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단골 도넛 가게 사장님이 저녁 일곱 시 무렵에 문자를 주셨다. 사정이 생겨 가게를 일찍 닫아야 해서 남은 도넛을 좀 싸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일생산 당일판매 원칙을 지키는 가게다 보니 그냥 폐기하기 아까워서 단골손님을 호출한 듯했다. 나는 답례로 유기농 사과 두 알과 작은 히말라야 소금통을 챙겨 도넛 가게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이 이 도넛 가게를 애용하게 된 사연은 맛도 당연히 좋지만 '개인 스테인리스 통' 포장에 적극 지지를 보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빵집, 아이스크림 전문점, 디저트 카페가 즐비한 동네에서 지나친 플라스틱 사용을 함께 가슴 아파해 주시는 도넛 사장님이 좋았다. 개인 용기를 들고 가서 도넛 여섯 개를 사면 사장님은 "저의 환경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만 같아 고맙습니다" 하면서 서비스로 한 개를 더 끼워주시고는 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장님이 '당일생산 당일판매' 원칙을 세운 것은 손님들이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자영업을 했더라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고객의 선호를 반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다소 겸연쩍게 "요즘은 다들 너무 포장을 과하게 하지요. 버려지는 음식도 많고"라고 말씀하셔도 단순한 고객응대 요령이나 변명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초신선을 추구할수록 늘어나는 폐기 음식물
 
 단골 도넛 가게 사장님께 선물 받은 도넛.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에 따라 마감 시간이 지나면 폐기된다.
ⓒ 이준수
 
우리 부부도 수많은 가게를 다녀봤지만, 기질이나 성향상 코드가 맞는 사장님들이 종종 있는데 몇 번 가서 대화를 나눠보면 알 수 있다. 도넛 가게 사장님도 그랬다. 생계를 위해 상품을 포장하고 당일 생산된 제품이라고 손님을 안심시키지만, 내심 불편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은 단골손님이나 개인 용기를 지참하는 사람에게 도넛을 선물로 주기도 하면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었던 것 같다.

과연 소비기한제는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계도 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는 정부 지침에 따라 꼼짝없이 표시해 놓기는 하겠지만 마트에 즐비한 초신선 식품 홍보 문구를 접하면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오늘 낳은 계란, 즉석 도정미, 새벽 수확 딸기가 메인 상품으로 눈에 잘 띄는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이 지나면 폐기한다는 설명까지 있기도 하다. 

모바일 이커머스 세계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새벽 배송과 샛별 배송, 가장 새것에 가까운 상태로 당신 집 앞까지! 상황이 이러니 오프라인의 소규모 자영업자도 높아진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포기하기 힘들 것이다. 세상이 초신선을 추구할수록 초신속 음식 폐기량도 덩달아 늘어난다.

초신선 식품을 선호하는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중신선 제품 할인이라도 자주 해 주었으면 좋겠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사람이나 우리 가족처럼 '마감 세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할인된 중신선 제품을 이용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폐기되는 음식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일단은 우리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부터 싹 비우고 다음 마감 세일을 노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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