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냐 비호감 등극이냐... 중대 기로에 선 빅토르 안

이준목 2023. 1. 1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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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성남시청 빙상팀 코치직 지원, 비판 시선 분명히 있다

[이준목 기자]

러시아의 전 쇼트트랙 선수인 빅토르 안(Viktor Ahn, 한국명 안현수)이 다시 한국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빅토르 안은 최근 성남시청 빙상팀 코치직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상태다.

빅토르와 함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대표팀을 지도했던 김선태 전 감독도 면접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시청 지도자 모집 공고에는 빅토르와 김선태 등 총 7명이 지원했고, 성남시는 이달 말까지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빅토르는 쇼트트랙계에서는 전설적인 선수로 꼽힌다.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던 시절, 빅토르는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17살 나이로 태극마크를 단 것을 시작으로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사 최초로 올림픽 3관왕이 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동메달도 하나 추가하면서 단일 대회 올림픽 메달 4개를 따낸 최초의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빅토르는 이후 부침을 거듭하며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릎 부상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경험했고, 이후 빙상연맹과 쇼트트랙 대표팀 내 파벌 싸움에도 휘말렸다. 2011년에는 소속팀이던 성남시청 빙상팀이 해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빅토르는 그해 말 러시아로 가더니 돌연 전격 귀화를 선언했다. 한국 국적과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인 빅토르 안으로 돌아온 그는, 2014년 러시아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세계무대에 복귀했고 다시 한번 올림픽 3관왕에 오르며 건재를 증명했다. 하지만 은퇴 무대로 삼으려 했던 2018 평창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선수단 도핑 스캔들에 휘말려 출전이 불발됐다. 빅토르의 공식적인 은퇴 무대는 2019/2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으로 마지막까지도 금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빅토르는 2020년 이번엔 중국대표팀 코치가 되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본명인 빅토르 안이 아닌, 한국 시절의 이름을 중국 발음으로 호명한 '안셴주'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한국 팬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김선태 감독-빅토르 안을 통하여 한국 쇼트트랙의 노하우를 흡수하고 판정 논란까지 등에 업은 중국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린 2022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메달 4개(금 2, 은1, 동1)를 수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극심한 홈 텃세와 편파판정 논란 등으로 국내의 반중정서가 극에 달한데다. 러시아 귀화에 이어 또다시 한국 대표팀의 '적군'으로 나타난 빅토르에 대한 반감도 높아졌다.

베이징 대회 이후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져갔던 빅토르는 최근 성남시청 지도자 모집에 전격 지원하며 다시 한국에서의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대중의 여론은 썩 우호적이지 않다. 경력과 실력이야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그동안 이미 여러 차례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렸고, 그때마다 자기중심적인 처신과 진실성이 의심되는 해명으로 좋지않은 이미지가 깊이 뿌리박힌 탓이다.

급기야 한국빙상지도자연맹이 공식 입장문을 내고 빅토르 안의 한국 활동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빙상지도자연맹은 13일 성명서를 내고 성남시의 쇼트트랙 코치 공개 채용 과정에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연맹은 빅토르와 함께 김선태 감독의 지도자 채용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다.

연맹이 지적한 부분은 빅토르의 거짓 해명과 이기적인 처신이다. 빅토르는 한국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로 귀화했을 당시 매국 논란이 일자 '이중국적이 가능할 줄 알았다'고 해명한바 있다. 하지만 그는 귀화 직전 4년치 올림픽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간 사실이 추후 드러났다. 규정상 연금은 국적을 유지할 때만 받을 수 있고, 다만 국적 상실 예정자는 그 전에 일괄 수령을 요구할 수 있다. 빅토르가 이중국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서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간 뒤 몰랐던 척 했다는 의심을 샀다.

또한 일각에서는 아직도 빅토르가 국내 빙상계 파벌싸움의 희생양이며, 국내에서 배척당하여 갈 곳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해외무대로 눈을 돌려 러시아 귀화를 선택했다고 잘못 알고있는 이들도 적지않다. 하지만 2014년 빅토르의 부친인 안기원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성남시청이 해체되기 전에 러시아 가는 것이 확정이 되어있었기에, 팀 해체가 귀화의 결정적인 동기는 아니다"라고 해명한바 있다. 또한 대한빙상연맹과의 불화설이나 파벌로 인한 불이익에 관한 의혹들에 있어서 빅토르 본인이 인터뷰에서 몇 번이나 부정한 바 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빅토르가 러시아로 귀화하여 소치올림픽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을때만 해도, 오히려 빅토르를 품지못한 한국 빙상계를 비판하는데 초점이 맞춰졌고 빅토르는 비난보다는 오히려 동정과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연금 의혹 등 러시아 귀화와 파벌싸움을 둘러싼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빅토르의 행적들도 재조명되면서 차츰 여론이 바뀐 것이다. 또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중국의 편파판정 논란에는 침묵하고 한국을 상대로 금메달을 따낸데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미지가 크게 악화됐다.

요약하자면 빅토르 안은 온전히 자신의 개인적 이유와 이득을 위하여 한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으로 떠난 인물에 가깝다. 심지어 한국 쇼트트랙에서 습득한 기술과 노하우를 경쟁 국가에 제공하여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이제와서는 또다시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서 취업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택은 본인의 자유지만, 국민들이 그의 행적에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기 어려운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밖에 연맹은 김선태에 대해서도 "심석희 선수의 폭행 및 성폭력 피해가 올림픽 직후 드러나며 빙상연맹으로부터 지도자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인물"이라며 지적했다. 이어 "직업 선택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그것이 스포츠의 최우선 가치인 공정을 넘어설 순 없다"고 김선태와 빅토르 안의 행적을 싸잡아 비판했다.

연맹은 "한국 빙상이 국민께 다시 신뢰받고 사랑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지도자의 정직한 직업윤리와 건강한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면서 "성남시는 한국 빙상의 메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코치를 선임해 한국 빙상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공정 대신 사익을 취하는 건 제대로 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반대의 명분을 밝혔다.

만일 빅토르가 코치로 뽑히면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간판스타이자 성남시청 소속인 최민정, 김길리 등을 지도하게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재능과 실력만큼은 아까워하면서, '그가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지도자로서 선수만 잘 가르친다면 앞으로 한국 쇼트트랙에도 더 이득이 아니냐'는 반응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중들은 체육인들이 단지 성과와 실력 이상으로 인성-신뢰-도덕성 등을 강조하는 추세다. 국민들의 공감을 자아내지못하는 지도자가 과연 선수들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도 생각해봐야한다. 성남시가 만일 빅토르를 채용한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비슷한 선례로 남을수 있는 사안이기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과연 성남시가 빅토르 안에 대하여 어떤 최종 결론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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