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한국의 양조위…나는요, 정성일에 완전히 붕괴됐어요
고유의 매력으로 완성한 '나이스한 개XX'
호기심과 본능 사이…섬세한 연기 호평
금수저를 물고 나온 남자, 인생의 모든 순간이 '갑'(甲)인 도영이 있다. 세상은 쉽다. 금수저를 물고 나오니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아군으로 가득하다. 삶은 바둑판처럼 선명하다. 어려움 따윈 없다. 그저 흑과 백으로 구분될 뿐. 인생이란 대국에서 평생 '흑'(黑)을 잡아온 그는 유리한 삶을 살았다. 언젠가부터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내게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 한껏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달리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여자. 오직 내 손에 들린 바둑알에만 관심이 있는 그를 도통 알 수 없다. 안개만이 자욱한 여자가 궁금하다.
배우 정성일이 지난달 30일 공개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연기하는 하도영의 네러티브다. 지독한 폭력에 영혼은 가루처럼 부서지고, 웃음을 잃은 문동은(송혜교 분)이 스스로 펼친 지옥길에서 하도영과 마주한다. 절망의 꽃은 필까.
하도영은 문동은에게 학교 폭력을 가하는 박연진(임지연 분)의 남편이자 국내 최고 건설사 대표다. 재력과 명예를 모두 갖춘 권력자. 도영은 바둑을 사랑해서 들른 기원에서 문동은과 마주한다. 그날부터 동은이 자꾸 떠오른다. 대국이 끝나면 꼿꼿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선심쓰듯 삼각김밥을 건네는 여자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동은이 눈앞에 있다. 마침내, 상상하던 내 공간속으로 걸어들어온다. 다시 마주한 동은과의 대국. 도영은 동은 앞에서 '백'(白)이 된다.
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 당하며 서로를 발가 벗겨.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땐 그저 바둑인 거지.
바둑을 이용해 도영의 일상에 스며든 동은은 곧 연진이 닫아둔 판도라의 상자를 그와 마주하게 만든다. 도영은 동은이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실을 눈치챈다. 가해자가 자신의 아내인 연진이었던 것이다. 동은은 인생을 건 복수의 길에서 연진의 남편인 도영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다. 도영 앞에서 연진은 당당하게 사실임을 인정한다.
"태풍 일으킨 비단 날갯짓" 한국의 양조위 호평
'더 글로리'는 공개 사흘만에 2541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 3위에 올랐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싱가포르, 모로코, 홍콩 등 19개 국가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송혜교와 이도현의 로맨스가 관심을 받았지만, 정성일에게 푹 빠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호기심과 본능이 켜켜이 쌓인 감정,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매혹당한 눈빛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견고하기만 하던 도영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무너졌다. 마치 영화 '화양연화'(2000)의 한 장면처럼. 이를 통해 '한국의 양조위'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도 받았다. 섹시하고 젠틀한 매력에 '입덕'했다는 반응을 얻으며 이름을 각인시켰다.
'더 글로리'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는 "정성일이 인생이 가장 크게 하락하는 인물인 도영을 잘 표현했다. 차가울 땐 차갑고, 웃을 땐 나이스 한 표현을 정말 잘해줬다. 특히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어떻게 써도 명대사처럼 들린다.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안길호 감독은 도영을 "태풍을 일으키는 비단 날갯짓"에 비유하며 만족감을 보였다.
무대에서 쌓은 탄탄한 내공, 빛을 내다
정성일은 오랜 시간 대학로에서 탄탄하게 내공을 쌓은 배우다. 20대 초반 데뷔했으나, 군 제대 후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강풀의 바보'(2007)를 시작으로 '라이어 1탄' '보고 싶습니다'(2010), '극적인 하룻밤'(2011) '쉬어매드니스'(2015) '6시 퇴근'(2018) '언체인'(2019) '난설' '미오 프라텔로'(2020) 등 무대에 올랐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흘린 땀은 많은 관객에게 인정받았다. 뮤지컬 '미오 프라텔로'에서 배우 김대현·최호승과 뭉친 '현승일' 페어가 인기를 얻으면서 '대학로의 아이돌'이라 불리기도 했다.
안방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정성일은 드라마 '비밀의 숲2' '산후조리원'(2020) '배드 앤 크레이지'(2021) '우리들의 블루스'(2022)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연출자들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다.
정성일의 필모그라피에서 '더 글로리'는 중요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크고 작은 작품에서 다양한 배역을 오가며 노력해온 그의 진가가 드러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은숙 작가가 쓴 마성의 극본을 탁월하게 소화해서다.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다정한 아빠와 남편으로서 평안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날카로움마저 느껴지는 냉소적인 성격을 지닌 캐릭터. 극 중 '나이스한 개XX'로 묘사된 도영을 고유의 매력으로 완성했다는 평을 이끌었다.
'더 글로리' 파트2는 오는 3월 공개된다. 동은의 '피의 복수'가 예고된 바. 유일하게 시청자의 시선에서 극을 읽어가는 도영, 정성일이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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