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116)] ‘박정윤’이 이뤄낸 첫 번째 꿈, 뮤지컬 배우
1월1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월부터 부산·고양·창원·대구 등 투어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뮤지컬 배우 박정윤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미술대학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다. 세계에서 명성 있는 디자인 대학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만큼, 박정윤은 이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당시 자신의 꿈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순서상 ‘두 번째 꿈’이 됐지만, 사실 그에게 디자이너보다 앞선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어린 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무대를 사랑했던 박정윤은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도 어린 시절 꿈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과감히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2014년 뮤지컬 ‘온조’로 어린 시절 꿈이자, 진짜 첫 번째 꿈을 실현시켰다.
-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 기존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 온 상실감, 허무함은 없었나요?
한국으로 귀국하고 직업을 바꾸면서부터 제 꿈은 뮤지컬배우였습니다. 상실감과 허무함 보다는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 꿈을 이뤄 이렇게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웃음).
-뮤지컬 배우의 길을 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한 적은 거의 없어요(웃음). 그래도 꼽으라면 코로나가 심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마스크 착용이 불가능한 직업이다 보니 공연이 중단되거나 취소될 수밖에 없는 일이 잦았고 그때는 정말 막막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어 공연을 다시 할 수 있게 되고 너무 많은 관객분들이 찾아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공연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럼 ‘뮤지컬 배우 하길 잘했다’ 싶었던 순간은요?
어떤 특정한 순간이 있기 보다는 무대에 서면서 문득문득 ‘아!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찾아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뉴욕에서 지내던 시절엔 뮤지컬 배우가 막연한 꿈이었는데 무대에 서는 지금 그 꿈을 이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데뷔 당시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데뷔는 2014년 ‘온조’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직업으로 일하다가 뮤지컬배우 데뷔를 하다 보니 나이는 많고 아는 건 없고 해서 많이 헤맸어요. 심지어 여자 앙상블 중에는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요. 하지만 그때 너무 좋은 선배 앙상블 오빠들과 동료 배우들을 만나서 많이 배우고 예쁨 받을 수 있어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이후 슬럼프는 없었나요?
아무래도 경력이 짧다보니 큰 슬럼프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 같아요. 슬럼프가 찾아와도 이겨낼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제가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제 전공과 직장을 포기했던 그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 늘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브로드웨이 42번가’와는 2016년부터 인연이 됐다고요. 여러 시즌에 참여하신 만큼, 누구보다 ‘42번가’의 매력을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저도 ‘42번가’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사람으로서, ‘42번가’의 첫 번째 매력은 화려함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분들이 눈을 뗄 틈이 없을 만큼 속도감 있게 바뀌는 신들과 반짝이는 조명 그리고 쉴 틈 없이 바뀌는 의상과 현란한 탭댄스까지 관객분들을 사로잡을 요소가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또 악역도 없고, 어떤 캐릭터의 죽음도 없이 공연 내내 긍정적이고 밝고 행복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에 공연 보러 오시는 모든 분들이 그런 에너지를 받아 가실 수 있는 힐링이 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계속 참여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제가 첫 시즌에 참여했을 땐 탭 실력도 너무 초보였고 안무도 너무 많고 무대경험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스텝과 안무를 해내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쉬움이 생겨 한 번 더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다시 할 때마다 새롭게 제가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2020년도에는 지방공연이 취소되어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전 시즌의 아쉬움을 만회하고자,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들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이렇게 다섯 시즌 째 참여하게된 것 같습니다.
-전 시즌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시즌만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저희 앙상블들만 봤을 때 매 시즌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다 보니 그려지는 그림이 조금씩 달라져 늘 새롭게 느껴졌었어요. 특히 이번 시즌에는 오루피나 연출님이 새로 참여하셔서 디테일한 부분들이 많이 수정되었고 저 역시도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필리스’ 역을 맡고 계십니다. 캐릭터 설명 부탁드려요.
‘필리스’는 극중극 ‘프리티레이디’에서 코러스 걸로 출연하는 배우 중 한명이에요. 약간 엉뚱하긴 하지만 마음도 여리고 사랑이 많은, 무엇보다도 ‘페기’를 향한 무한 애정을 방출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도 궁금해요.
극 중 대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필리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을 한 것 같아요. 극중극 작품인 만큼 저 스스로와의 연결성을 많이 찾아보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저 자체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임하는 배우 박정윤의 마음가짐이 ‘프리티 레이디’에 출연하는 코러스걸 ‘필리스’를 표현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매 회 공연하면서 ‘프리티 레이디’라는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답게 당당하고 프로다운 모습은 유지하면서 엉뚱하지만 밉지 않은, 사랑이 많은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페기’에 대한 무한 애정도 담아서요!
-특히 ‘42번가’는 ‘앙상블’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라고들 하잖아요.
오프닝의 오디션 장면과 2막의 첫 장면인 분장실 장면처럼, ‘42번가’만큼 앙상블들의 합으로 만들어내는 신들이 많이 있는 작품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페기’라는 캐릭터도 앙상블로 시작되는 캐릭터이다 보니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정윤 배우가 생각하는 ‘앙상블’이란?
‘페기’의 대사 중에 ‘작은 먼지들이 모여서 무대 위를 아름답고 생기 있게, 또 화려하게 만들고 결국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인용하고 싶어요. 한명의 배우로서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몫을 다하며 무대를 채워주고 관객들에게 풍성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앙상블로서 무대에 서면서 고충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작품마다 앙상블이 출연하는 분량과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마다 저의 고민이 달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참여했던 최근 작품 중 ‘귀환’의 경우에는 연기적으로 많은 신들을 채웠어야 해서 연기적인 부분과 연기적인 움직임을 신경 썼다면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아무래도 많은 양의 탭과 안무를 해내는 데 많은 시간을 쏟은 것 같습니다.
-‘42번가’ 중 박정윤 배우의 최애 넘버(혹은 장면)와 이유는?
저의 최애 넘버는 두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Lullaby on Broadway’라는 넘버에요. 모든 캐스트가 ‘페기’를 설득하러 가는 씬입니다. 기차역 세트도 그렇고, 가사 하나 하나도 그렇고 저를 뉴욕 한복판으로 다시 돌아가 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넘버에요. 게다가 역할적으로도 ‘필리스’가 너무 애정하는 ‘페기’를 설득하러 가는 장면이기 때문에 설득할 때의 간절함과 ‘페기’의 ‘할게요’라는 말에 느껴지는 뭉클한 감정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에요. 이 신을 할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눈물을 꾹꾹 참으며 할 때도 많을 정도로 저에게 온갖 감정을 다 불러일으키는 장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저희 공연 2막의 빅넘버라고 할 수 있는 ‘42nd Street’입니다. 이 신에서는 ‘페기’와 ‘빌리’ 그리고 전체 앙상블이 각각 그 시절 뉴욕의 다른 캐릭터들로 등장해서 연기해요. 씬 초반에 ‘페기’ 노래가 끝나면 긴 시간동안 탭소리와 안무로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브로드웨이 42번가’만의 특징이 묻어나 있는 넘버라고 생각해요. 저는 순진한 시골처녀로 등장해서 해군에게 반하는 연기를 하는데 파트너와 교감하면서 춤과 탭으로만 감정과 스토리를 연기하는 게 특별하고 즐거워서 정말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계단씬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의 꽃 같은 넘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서울 공연이 며칠 남지 않았어요.
정말로 공연이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 번 남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투어 공연이 많이 남아서 이렇게 말하면 주책일지는 몰라도 벌써부터 커튼콜 때 눈물이 글썽여지더라고요. 하하. 여러 시즌을 다시 오디션에 도전하여 참여할 정도로 제가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마지막 공연까지 잘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가장 큰 깨달음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탭댄스를 처음 접했을 때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절망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은 작품을 하며 탭댄스를 즐기고 있는 저를 발견하며 역시 하면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또 올해 ‘42번가’는 제가 ‘필리스’로서 세 번째 참여하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같은 배역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연기적으로, 노래적으로, 그리고 춤적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이렇게나 더 많이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앞으로 작품을 할 때 세 시즌 째에야 보이고 채워 넣을 수 있게 된, 이런 디테일들을 볼 수 있게 되는 실력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애정하는 작품은?
모든 공연이 저에게는 의미가 있고 특별하지만, 지금 참여하고 있는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애정하는 작품입니다(웃음). 물리적으로도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작품이라 앞으로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품(혹은 캐릭터)와 그 이유는?
제가 작년 7월에 뉴욕 여행을 하면서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작품이 뮤지컬 ‘해밀턴’이었는데 여자주인공의 ‘Burn’이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요. 저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면 ‘해밀턴’의 여자주인공 역을 해보고 싶습니다.
-박정윤 배우가 배우로서 지켜나가고자 하는 신념이 있을까요?
무대에 서는 순간 순간에 온전히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공연하면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해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보러 오신 관객분들께 그리고 함께 무대에 서는 선배님들과 동료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한사람의 배우로서 온전히 무대에 존재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궁금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귀띔해주세요.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4개월간의 지방공연이 남아있어서 올해 상반기는 남은 ‘42번가’ 무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그리고 최종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저에게는 무대위에 서있는 순간이 정말 특별하고 행복해요. 올해, 그리고 제 삶에서의 목표는 행복한 사람, 행복한 배우입니다. 지금처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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