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장갱단 뚫고…76세 목사의 목숨건 韓구호품 수송 작전

김민주 2023. 1.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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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원(원 목사님). 앞쪽 길이 갱단들에게 장악됐다고 해요. 다른 길로 우회하겠습니다.”
지난 3일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한국에서 도착한 구호품을 트레일러에 실어 세관을 빠져나오던 원승재(76) 부산소망성결교회 목사가 현지 운전자 외침에 급히 몸을 숙였다.

지난 8일 아이티 푸지의 희망기술학교 마당에서 원승재(사진 가운데) 목사가 아이티 지진 난민 1만2000여가구에 보낼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원승재 목사

2021년 8월 규모 7.2 강진으로 인한 피해가 장기간 수습되지 못해 연료 부족 등 기근으로 이어지자 아이티에서는 소요 사태가 일었다. 연료 공급망을 틀어쥔 갱단이 무장한 채 거리를 활보했다. 아이티 치안과 행정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잘못 붙들리면 어렵게 공수해온 구호품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 “며칠만 더 말미를 주소서.” 트레일러 조수석에 납작 엎드린 채 원 목사는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년 5개월 만에, 韓 구호품 아이티 난민 품으로


다행히 원 목사는 갱단을 피해 푸지에 있는 희망기술학교에 무사히 도달했다. 희망교육학교는 앞선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원 목사가 현지에 개설한 교육 시설이다. 그는 “현지 인부들과 함께 컨테이너 4개에 담긴 옷가지와 신발·담요·라면 등 생필품과 식자재를 작은 꾸러미로 다시 포장했다. 꾸러미 하나당 라면 6개와 신발 6켤레, 옷가지 20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이 꾸러미는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푸지와 포르토프랭스 레카이 등지 난민촌과 고아원, 종교시설 등에 나눠줬다.

시민이 모은 구호품, 포스코가 길 터줬다


이들 물품은 구호품 모집을 통해 마련됐다. 모집이 시작된 곳은 부산 삼성여고와 삼성중학교다. 기독교 재단인 두 학교는 50만명의 사상자를 낸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도 성품과 응원의 편지를 보냈고, 2014년 아이티에서 소년 소녀 11명으로 구성된 ‘기적의 합창단’이 삼성여고를 찾아 공연으로 감사를 전하는 등 인연을 맺어왔다.
지난 10일 원승재 목사가 강진 피해가 복구되지 않은 레카이 지역 난민에게 보낼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원승재 목사
2021년 8월 규모 7.2 지진 때는 7000여명이 죽거나 다치고 3만여 가구가 집을 잃었다. 이에 학생들은 물론 뜻 있는 사업가, 종교인 등 부산시민이 옷가지 5만벌과 신발 3만 켤레 등 1TEU(가로ㆍ세로 2.4m, 높이 8m) 컨테이너 4개 분량 구호품을 모았다. 구호품 모집을 주도했던 게 원 목사다. 곧장 구호품을 배에 실으려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물류비용이 당초 2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뛰었다. 이런 이유로 구호품은 10개월간 삼성여고 운동장에 발이 묶였다.

이 소식을 접한 김광수 포스코플로우 사장이 “비용을 떠안고 배편을 수배해 책임지고 구호품을 아이티로 보내라”고 지시하며 ‘수송 작전’ 물꼬를 텄다. 구호품은 지난해 8월 10일 삼성여고 운동장을 떠나 파나마 발보아, 멕시코 만사니요 등지를 거쳐 소형 선박으로 환적한 끝에 한 달여 만인 9월 15일 포르토프랭스항에 도착했다.


‘모가디슈’ 방불케 한 치안 속 교포도 힘 보탰다


원승재 목사가 아이티에 입국한 건 지난해 10월 7일이다. 갱단 소요사태 등 위험이 커 당국 허가를 받기 어려웠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구호품을 옮겨왔지만 포르토프랭스 세관은 관세 명목으로 3만5000달러(4300만원)를 요구했다.
부산시민이 모은 아이티 지진 구호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지난해 8월 10일 부산 삼성여고 운동장을 떠나 부산항으로 향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원 목사는 “평소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소요 사태로 인한 행정 마비 등이 관세 폭등 원인이었던 듯하다”며 “현지 법원, 고아원 등을 돌며 관세를 낮춰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모아 관세를 2만5000달러(3100만원)까지 조정했다. 소식을 들은 한국의 독지가와 아이티 현지 교포들이 2000만원 넘는 돈을 모아줘 지난 3일 겨우 물건을 찾았다”고 했다. 이들은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구호품 꾸러미를 난민촌에 전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원 목사에 따르면 아이티 치안 상황은 영화 ‘모가디슈’ 속 탈출 직전 상황을 방불케 했다. 갱단은 무장한 채 거점을 옮겨 다녔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들을 마주칠 위험이 늘 도사렸다. 원 목사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는 “선교사와 교포 등 현지 사정에 밝은 분들 도움을 받아 다행히 구호품을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며 “물품을 모아준 학생과 시민, 예상 못 했던 포스코플로우와 교포 등 도움까지 돌이켜보면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는 오는 19일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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