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방위력 증강 외치는 반전평화가, 기시다의 딜레마

전진영 2023. 1.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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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출신 온건파…G7 평화 메시지 강조
방위력 증강 위한 증세 주창…역대 최저 지지율

편집자주 -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 사람이 누군가 싶은 인사들이 많습니다. 일본 뉴스를 담당하는 국제부 기자가 한 주 동안 화제가 됐던 일본 인사, 그리고 그에 엮인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최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둘러싼 수식어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역대 최저 지지율', '교체론 부상' 등이 따라붙고 있기 때문인데요. 나라 안팎으로 부정적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 기시다 총리는 주요 7개국(G7) 개최국 자격으로 해외 순방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내부 여론을 달래는 대신 해외로 떠난 이유는 그의 정치 이력과도 맞닿아있는데요, 최근 바닥친 지지율에 가려져있던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얽힌 현안을 풀어보려 합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이미지출처=기시다 후미오 페이스북]

정치 엘리트...별명은 ‘재미없는 남자’

기시다 총리는 1957년생으로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자민당 중의원을 지내는 정계 ‘금수저’ 입니다. 1982년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뒤 은행에 입사하고, 이후 중의원이었던 아버지의 비서관을 거쳐 정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정치가 집안에서 잠깐 사회생활을 맛보고 정계로 본격적인 발을 들이는 것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비롯해 자민당 내부 유력 정치가들이 대부분 거치는 세습 코스입니다. ‘정치 수저’ 기시다 총리에게 부침이 있다면 집안 모두 동경대 출신인데 혼자 와세다에 들어간 것 정도네요.

기시다 총리는 성실하고 진지한 모범생 이미지가 강합니다. 본인은 '듣는 힘'이 강하다고 강조하는데,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갔을 당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메모한 노트가 30권이 넘는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듣는 힘이 강한 대신 말하는 힘은 약한 것 같습니다. 점잖은 말투에 주장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강연 연사로 서면 객석 대부분이 듣다가 졸게 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재미없는 남자'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좌우명도 봄바람 같은 상냥함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춘풍접인' 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조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강단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그러나 역대 자민당 역사에서는 과격하고 개성 강한 수장 다음에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무난한 사람이 투입되는 경향이 있어 당내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힘을 얻어 당선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죠. 사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제일가는 주당으로 유명합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아베 전 총리의 '흑기사'를 자처하며 술을 대신 마셔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예전 언론 인터뷰에서는 "40대까지는 1년에 한두 번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다. 필름이 끊겨 같이 마시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까지 같이 있었는지 물어보곤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외무상 시절에 러시아 외무장관과 보드카로 주량 대결을 펼친 일화도 유명합니다.

도쿄에 있는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끼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출처=기시다 후미오 인스타그램)
히로시마 출신 온건파...외교로 돌파구 찾을까

배경을 조금만 더 살펴보고 현안과 연결 지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히로시마 출신입니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곳이기 때문에 히로시마는 탈원전과 반핵 기조가 강한 곳입니다. 기시다 총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고향에 대한 애착도 강한데, 부산하면 ‘롯데’듯 히로시마의 야구단 '도요카프'의 팬이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언제나 히로시마식 오꼬노미야끼를 꼽습니다.

이번 G7의 개최지도 히로시마인데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 세계가 갈등을 겪고 있는 시기에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기시다 총리는 7개국 정상들을 히로시마 원폭 박물관에 초대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또 다른 원폭 투하지 나가사키에 초청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진 배경을 외교에 잘 녹여내는 것 같죠? 기시다 총리의 강점은 외교력에 있습니다. 그는 자민당 파벌 중 '고치카이파'를 이끌고 있는데, 이 파벌은 방위력 강화를 서두르지 않은 '경무장'을 지향하며, 한중일 외교에도 방점을 많이 두는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한일 국교 정상화, 중일수교를 이룬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도 고치카이파 출신입니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아베 내각에서 4년 8개월간 외무상을 지낸 이력이 있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에도 외무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현재 지지율이 떨어진 기시다 총리의 돌파구는 내치보다 외치입니다. G7 주최 전 순방길에 오른 것도, 그의 강점인 외교력을 보여줘서 지지율 반등을 꾀하려 한다는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히로시마 야구단 도요 카프의 유니폼을 입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출처=기시다 후미오 인스타그램)

사실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까닭은 복합적입니다. 첫 번째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에 원한을 품은 야마가미 데쓰야에게 피격당해 숨지면서 자민당과 통일교의 연결고리가 논란이 됐기 때문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통일교 논란이 불거지면서 연관 의혹이 제기된 장관들을 잘라내는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방위력 증강 때문입니다. 그는 방위력 증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해 여론의 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평화주의자라면서 방위력 증강을 꾀하고, 미일동맹을 계속해서 강조하다니 기시다 총리가 가진 배경과는 상반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그가 노선을 선회한 이유에는 아베 전 총리가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이었고, 그가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보수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한일관계에 있어 사죄와 반성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주장이 강하지 않은 기시다 총리가 이를 무시하고 직진할 틈이 없는 것이죠. 또한 지지율이 추락하는 와중에 당장 올해 상반기 선거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자민당 내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재미없는 남자’는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고 ‘재미있는’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위안부 합의 등 한일관계 이슈가 다시 부상한 가운데, 기시다 총리가 누군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만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날이 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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