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드림 월드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전작에 이어 또다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23년의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될 거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나 역시 일찍이 흥행 대열에 합류해 러닝타임 192분이 ‘순간 삭제’되는 경험을 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진 환상적인 수중 세계, 스크린 밖으로 쏟아질 것 같은 에메랄드빛 바다. ‘아바타2’는 내게 시각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집합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캐머런 감독이 ‘아바타’의 서사를 바다로 끌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흥행수표가 보장된 영화계 거장이지만 바다 사랑이 남다른 심해 탐험가이기도 하다. 캐머런 감독은 어린 시절 SF 소설에 푹 빠져 있었고 미지의 세계인 우주와 바다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해저 탐험을 꿈꾸며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나이가 열다섯 살, 해저 세계에 대한 단편소설을 쓴 것은 열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성인이 된 그는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어비스-심연’(1989)을 만든다. 침몰한 핵잠수함에서 정체불명의 수중 생물을 만나는 SF 영화다. 이 작품에서 물의 움직임을 CG로 처음 구현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타이타닉’(1997)은 ROV(무인잠수정 로봇)를 이용해 3800m 아래로 가라앉은 실제 타이타닉호를 촬영한 뒤 영화에 활용했다. 캐머런 감독은 ROV로 타이타닉호를 탐사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아바타’(2009)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 전까지 캐머런 감독은 10여년간 해양 탐사 다큐멘터리를 세 편이나 제작했다. 2012년에는 직접 설계에 참여한 심해 잠수정을 타고 가장 깊은 바다인 태평양 서쪽의 마리아나 해구에 다녀왔다. 에베레스트산 높이를 뛰어넘는 수심 11㎞, 그 심연의 바다를 혼자서 잠수한 최초의 탐험가로 기록됐다. ‘대체 그곳에 왜 갔나요?’ 사람들의 질문에 캐머런 감독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어린아이라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해구가 거기 있고, 아직 가본 적이 없으니, 잠수정을 만들어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캐머런 감독의 이토록 순수한 모험심은 스쿠버다이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 해양탐험가 자크 이브 쿠스토와 닮아 있다. 스쿠버다이빙은 수중호흡기(SCUBA) 장비를 이용해 잠수하는 수중 다이빙을 뜻하는데, 쿠스토는 현대식 개인 스쿠버 장비를 최초로 만든 주인공이다.
쿠스토 역시 고글을 끼고 바다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억제할 수 없는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육지 동식물과는 완전히 다른 해양 생태계에 눈뜨고 나니 땅 위 공간은 지구의 표피층에 지나지 않았다. 일종의 다이빙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침묵의 세계(The Silent World)’에서 쿠스토는 중력을 거스르고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세상을 유영하는 기분을 이렇게 묘사한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그곳의 색채와 빛의 오묘함을 즐길 수 있으며 바다가 고독하게 홀로 독백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아경의 세계로 돌아가 바닷물을 손가락으로 휘저어 보며 물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은 자기가 그 어떤 장벽을 뚫고 넘어온 특권이 부여된 인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 ‘침묵의 세계’(1956)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쿠스토가 사진으로, 영상으로, 글로 남긴 해양 탐사 기록들은 SF광이었던 소년을 바다로 이끌었다. 바다를 자신의 ‘드림 월드’라고 말하는 캐머런 감독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고스란히 ‘아바타’에 쏟아부었다.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무모함으로 무작정 몸을 던져야 알 수 있는 세상이 있다. ‘첨벙’ 소리와 함께 두 세계의 경계를 깨버리고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처럼 비로소 ‘직접’ 해보아야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있다. 1년 365일 탐험가의 마음으로 매 순간 모든 것을 새로이 보고 매일 모험을 떠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와중에 가슴 한켠에서 아주 작은 호기심이 일렁인다면, 그 순간만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쿠스토가 그랬듯, 캐머런 감독이 그랬듯,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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