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이 아쉬운 삶… 근로·자녀장려금, 사막의 오아시스
이들에 사회 안전망, 생존의 문제
아이 2명 있는 맞벌이 가구 경우
국세청, 올 최대 490만원 현금 지원
가난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통계로는 그 실체가 드러난다. 13일 통계청 가계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월 200만원도 못 버는 가구는 전체의 19.9%에 달한다. 5가구 중 1가구꼴로 연소득이 2400만원 이하인 셈이다. 학원비로 월 300만~400만원을 쓰는 이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학원비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통계를 가구 수로 추려보면 체감도는 더 높아진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가구 수는 2092만6710가구다. 여기에 ‘19.9%’라는 수치를 대입해보면 416만4415가구가 월 200만원조차 못 버는 가구로 분류된다. 해당 통계의 시점이 서로 다른 만큼 정확한 수치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인구감소가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난한 이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 중에서도 활용도가 높은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에 특히 관심이 집중된다. 그중 하나로 한국을 비롯해 몇 개국에서밖에 운용하지 않는 근로장려금(EITC)과 자녀장려금(CTC)이 꼽힌다.
두 제도는 거저 주는 돈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ITC는 말 그대로 ‘근로’를 하는 저소득층에게만 지급된다. 지난해 귀속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지급 대상이 된다. 한 예로 단독가구의 경우 연간 총소득이 2200만원 미만이면서 재산가액이 일정 수준 미만이어야 지원대상에 포함된다. 가구원 수가 많아질수록 소득 기준점은 높아진다. 맞벌이 가구의 경우 부부합산 연소득이 3800만원 미만일 경우 EITC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재산가액은 가구 유형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얼마나 받을까. 지난해 기준으로는 단독 가구는 최대 150만원, 홑벌이 가구와 맞벌이 가구는 각각 최대 260만원과 300만원이 지급된다. 국세청은 심사를 통해 소득액에 적합한 금액을 지급한다. 고소득자에게야 큰돈이 아니지만 벌이가 적은 저소득층에는 적지 않은 액수다. 단독 가구가 최대액을 받는다고 하면 매달 12만5000원 현금을 국가에서 지급받는 셈이다.
지원금액은 올해 더 늘어난다. 지난해 세법을 개정하면서 올해부터는 단독 가구의 경우 최대 165만원, 홑벌이 가구와 맞벌이 가구는 각각 최대 285만원, 330만원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저소득 가구에 좀 더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부터 재산가액 기준도 2억원 미만에서 2억4000만원 미만으로 바뀌었다. 추산하기에 70만 가구 정도가 더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ITC와 CTC를 중복해서 받는 가구는 더 큰 혜택이 있다. CTC는 만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저소득층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EITC와 마찬가지로 근로를 해야만 받는다. 연소득이 4000만원 미만이면서 재산가액이 올해 기준 2억4000만원 미만이라면 대상자가 된다. 올해부터는 자녀 1인당 최소 50만원, 최대 80만원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 맞벌이 가구이면서 아이가 2명이라면 EITC와 CTC를 합해 연간 최대 490만원을 받게 된다.
EITC나 CTC 혜택을 본다고 해서 저소득 가구가 곧바로 가난을 탈출할 수는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체감하는 삶의 질은 일정 부분 나아진다.
만 18세에 미혼모가 돼 중학생 딸을 키우며 노모를 부양 중인 저소득 근로자 A씨에게 EITC와 CTC는 가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A씨는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 살고 있는 취업준비생 B씨에게도 EITC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처음 고시촌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가졌던 큰 포부와 목표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당장 생계비 마련을 위해 단순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살기조차 바쁘다고 한다. 정부는 30세 이상이던 EITC 수급 연령 제한을 2018년에 없앴다. 덕분에 EITC를 받을 수 있게 된 B씨는 “EITC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지금껏 힘들게 지내온 시간에 대한 위로와 격려같았다”고 말했다.
국가 간 차이를 경험하는 이도 있다. 6년 전 입국한 북한 이탈주민 C씨는 한국이 부익부 빈익빈이 판치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배우며 자랐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하는 데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EITC를 받으며 적잖이 놀랐다고 회고했다. C씨는 “(이런 제도도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지급 대상이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9년 첫 지급 당시 대상 가구는 59만 가구, 총지급액은 4537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지급액은 4조9837억원에 달한다. 지급 가구 수는 499만 가구로 집계됐다. 제도 확대 탓이 있기는 하다. CTC는 2015년부터 지급을 시작했다. EITC도 2019년부터는 제도가 큰 폭으로 바뀌면서 지급 대상 가구 수나 총지급액을 급격히 늘렸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한국에 사는 가구의 약 4분의 1 정도가 가난에 시달린다는 민낯을 숨기기는 힘들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소득이 적은 독거노인 증가로 이 수치가 쉽게 낮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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