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때 남편이 마련해온 아파트, 이혼 때 재산분할 될까
A씨(여)와 B씨는 약 5년간 사실혼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2018년 여름 관계가 파탄나자, A씨는 B씨를 상대로 사실혼 파기 및 재산분할 소송을 냈다. B씨 명의의 수도권 아파트 두 채가 쟁점이 됐다. B씨는 두 집이 자신이 자력으로 형성한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 집을 A씨와 B씨 공동재산으로 판단했다. 다만 소송에 들어갈 무렵은 아파트 완공 전이라 집 소유권이 아닌 분양권이 재산분할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고, B씨가 A씨에게 2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부 한쪽의 고유 재산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법정 공방은 막대한 재산 분할 문제가 걸린 재벌가 이혼소송의 단골 주제다. 지난해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 판결에서도 관심은 특유재산 인정 범위였다. 하지만 A씨와 B씨 사례처럼 특유재산 문제는 재벌가만이 아닌 거의 모든 이혼소송에서의 최대 쟁점이다.
특유재산이라는 생소한 용어의 의미는 그 반대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특유재산의 반대말은 부부공동재산이다. 대다수 이혼소송의 경과는 결국 독점적 소유권을 갖는 특유재산을 어디까지 분할 가능한 부부공동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로 흐른다. 한 부장판사는 13일 “이혼소송의 90% 이상에서 특유재산이 쟁점이 된다”고 말했다.
법원 판례는 부부 한쪽의 특유재산 주장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부부공동재산으로 보는 방향으로 정립돼 왔다. 1994년 대법원 판례는 ‘특유재산이어도 다른 일방이 적극적으로 그 재산의 유지에 협력해 감소를 방지했거나 그 증식에 협력했다고 인정되면 분할 대상’이라며 예외를 열어뒀다. A씨·B씨 사례에서 법원은 두 사람 모두 경제활동을 하며 가사를 분담했던 점을 고려해 특유재산을 포함해 공동재산 분할 비율을 A씨 30%, B씨 70%로 정했다.
부부 한쪽이 가사노동을 전담한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 법원은 혼인 기간이 길수록, 특유재산 외 분할 가능한 재산이 없을수록 특유재산에 대한 가사노동의 기여도를 인정해 왔다. 2000년대 후반을 지나며 공동재산으로 인정된 특유재산에서 가사노동을 도맡은 부부 한쪽의 기여도를 40% 선에서 인정하는 게 ‘통상의 룰’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한쪽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해 상대가 온전히 사회생활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기여도를 보다 인정해주는 것이다.
30년간 결혼생활을 한 전업주부 C씨와 공무원 D씨 소송에서는 D씨가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토지의 재개발 보상금과 그의 퇴직연금을 공동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은 쟁점이 된 특유재산을 모두 공동재산으로 판단했다. 보상금은 분할 비율을 C씨 45% D씨 55%로, 연금은 C씨 40% D씨 60%로 정했다. 재판부는 “퇴직연금에는 임금의 후불적 성격도 섞여 있다”며 “혼인기간 중 근무에 대해 배우자의 협력이 인정되는 이상 연금수급권 중 적어도 그 기간에 해당하는 부분은 부부 쌍방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이라고 판시했다.
재산분할이 갖는 사회보장적·부양적 기능도 고려 요소다. E씨는 20여년 결혼생활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 기간 부인 F씨는 육아·가사노동, 가족 부양을 사실상 전담했다. 결혼생활이 끝났을 때 F씨 재산은 1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E씨 소유 지방 땅 등 특유재산을 포함한 9억여원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보고 그 비율을 E씨 60%, F씨 40%로 정했다. 다만 별거 직전 E씨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아파트의 경우 F씨의 재산 유지 기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제외했다.
재벌가 이혼소송에서는 부부 한쪽의 특유재산 주장을 폭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추세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이 사장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등 재산 대부분을 특유재산으로 보고 임 전 고문이 청구한 1조2000억원 중 141억원만 인정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혼소송에서도 조 전 부사장 특유재산이 재산분할에서 제외돼 남편 박모씨 몫으로 13여억원만 인정됐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 1심 판결도 마찬가지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12월 두 사람이 쌍방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당초 노 관장이 청구한 1조원대 재산분할액 중 665억원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SK㈜ 주식의 경우 최 회장이 상속받은 특유재산이며, 해당 주식의 형성과 유지·가치 상승에서 가사노동 기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부부간 사적 분쟁이 그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사업체 운영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고려됐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배구조 변동 등 재산분할로 인한 다른 경제 이해관계인들의 피해 가능성을 판결문에 적시한 것”이라며 “당사자 입장에서는 재벌가 일원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했다고 볼 수 있는 논리”라고 말했다. 동일한 특유재산이어도 부동산 등과 달리 사업체 주식처럼 가정과 분리된 재산에서 가사노동 기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재산 유지나 감소 방지에 적극 기여’라는 대법원 판례 문구의 추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산분할 판단이 담당 법관의 개인적 성향과 고정관념에 따라 달라지고 있어 법률에 가사노동 기여 등 명시적 기준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또 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실무에서 기여도를 놓고 특유재산과 공동재산을 분류하는 작업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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