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같은 예스런 석조 건축물… 지역사회 밝히는 ‘빛’

서윤경 2023. 1. 14. 03: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18> 익산 이리중앙교회
전북 익산시 구도심에 있는 이리중앙교회는 해가 지면 외벽에 조명을 켜 도심을 밝힌다. 70년 넘게 옛 모습을 간직하며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교회당 건물이 조명을 받아 어두컴컴한 도로에 따뜻함을 선사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가 지난해 도시 재생 지역으로 콕 집은 구도심 동네 중엔 중앙동이 있다. 이곳은 KTX 익산역과 가까운 데다 왕복 6차선 대로변인데도 구도심 지역을 입증하듯 해가 지니 어두컴컴해졌고 인적마저 뜸해졌다. 순간 붉은벽돌 건물 외벽에 불이 들어왔다. 예스러운 석조 건축물이 빛을 받으니 불안은 사라지고 경계마저 풀게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이리중앙교회(조성천 목사)는 1951년 건축 당시 모습을 간직하며 지역을 밝히고 있다.

최근 교회에서 만난 조성천(64) 목사는 “도시 공동화로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은 저녁만 되면 어둡다. 외벽 조명을 통해 지역에 빛을 비추기로 했다”면서 “익산의 상징적 건물이라는 점에서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했는데 잘한 결정 같다”고 말했다. 조 목사의 설명은 이리중앙교회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연구원)과 익산시 등이 구축한 ‘디지털익산문화대전(디지털익산)’에 실린 이유이기도 하다. 2010년 익산문화원이 발행한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에도 같은 이유로 교회가 소개됐다.

호남신학대학교 신재식 교수는 이를 ‘지역 공동체의 뿌리’라는 말로 표현했다. 신 교수는 연구원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지역 문화와 건축물 등 자료를 디지털로 구축하는 작업에 참여해 익산 광주 전주 등 지역교회를 조사했다. 디지털익산엔 신 교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이리중앙교회 내용이 실렸다.

연구 학기로 미국에 있는 신 교수는 “이리중앙교회는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 한자리에 서 있는 나무와 같다”면서 “교회는 크지 않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도 아니지만, 지역 안에서 일종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역사를 품다

이리중앙교회의 시작은 1933년 1월 후리교회(이리제일교회)에서 50여명의 성도가 분립해 초대 집사 박길부씨 집에서 드린 예배에서 출발한다. 그해 수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이리(현 익산)시 인화동에 예배당을 신축했고 다음 해 지금의 이리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44년 일제에 의해 제일교회와 강제 합병됐지만 해방과 함께 교인 수가 늘면서 다시 분리됐다. 교회 건축은 한국전쟁 중 이뤄졌다. 49년 이리시로부터 지금의 장소에 부지를 양도받아 건축을 시작했지만, 이듬해 6·25전쟁이 터지면서 공사는 일시 중단됐다. 전쟁을 피해 흩어졌던 성도들이 돌아오면서 1년 뒤 공사가 재개됐고 그해 예배당이 완공됐다.
교회는 2010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나서며 종탑 맞은편 좌측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이리중앙교회 제공


교회는 77년 예배당을 1662㎡(약 503평) 규모로 증축했고 2010년 리모델링에도 나섰다. 100년 이상의 오래된 교회 건축물은 아니지만 이리중앙교회 건축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옛 모습을 간직해 어릴 적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을 반기던 아름드리나무처럼, 정겨우면서도 건축적 미학을 놓치지 않았다.

연구원의 디지털익산은 이리중앙교회의 건축물을 “우측에 종탑이 있으며 전면에 황등석, 양 옆면은 붉은 벽돌을 사용한 비대칭 양식의 석조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교회 전면은 황등석 기둥을 세우고 정방형 화강암을 차곡차곡 쌓았다. 우측 종탑은 건물 좌우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리중앙교회 제공


설명대로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전면은 우측에만 종탑이 있어 좌우 비대칭을 이룬다. 외벽 벽재도 다양하다. 전면은 정방형 화강암을 차곡차곡 쌓았다면, 측면 2층과 3층은 붉은 벽돌을 화란식으로 올렸다. ‘네덜란드식 쌓기’라고도 하는 화란식 쌓기는 벽돌의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를 번갈아 하는 조적 방식이다. 시공이 간편해 모서리나 벽 끝 강도를 높여 주는 동시에, 벽돌 벽면에 무늬 등을 넣기도 쉬워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마구리는 벽돌의 끝이나 단면을 말한다.

교회 측면은 화란식 붉은 벽돌을 쌓고 중간중간 화강암 굴뚝을 세웠다. 종탑엔 안전을 위해 철거한 뾰족탑 대신 종을 설치했다. 이리중앙교회 제공


예배당 입구 전면 황등석 네 개의 기둥은 한결같이 교회를 떠받치는 듯 보인다. 황등석은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서 채굴되는 화강암이다. 건축 자재와 조각, 석재 조형물에 사용되며 국회의사당, 대법원 청사 등에도 쓰였다. 기둥 사이 세 개의 첨두아치는 측면의 길쭉한 창과 연결된다. 측면 20개의 길쭉한 창은 아치 끝에 마름모꼴 화강암을 배치해 세련미를 갖췄다.

또 하나 측면 외벽에서 눈여겨볼 게 있다. 첨두아치 창 사이를 세로로 구분하는 화강석 기둥이다. 기둥처럼 보여 기둥이라 표현할 뿐이고 사실은 굴뚝이다. 상단엔 연기를 배출하는 구멍이 있고, 하단엔 재를 긁어내는 입구가 있다. 조개탄이나 나무를 태워 난방하던 시절 필요하던 환기구는 이제 긴 건물을 수직으로 분할하면서 창과 함께 반복적인 리듬감을 주는 미적 요소가 됐다.

외부에 세운 엘리베이터도 시선을 잡는다. 리모델링 때 비대칭을 이루던 우측 종탑 반대편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자칫 전통이 있는 석조건물의 아름다움을 해친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과감하게 외부로 노출한 투명한 엘리베이터는 놀랍게도 스페인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레이나소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레이나소피아 건물은 1788년부터 종합병원으로 사용됐다가 철거 논쟁에 휘말렸고, ‘18세기 건축양식’으로 보존 가치가 인정되면서 미술관이 됐다.

좌측 투명 엘리베이터는 석조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다. 이리중앙교회 제공


88년 건축가인 안토니오 바스케스가 건물 외벽에 유리와 강철로 이뤄진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게 그 유명한 엘리베이터 탑이다. 규모나 소재에선 레이나소피아에 한참 못 미치지만 70년 넘은 석조 건축물에 세워진 투명 엘리베이터는 보행이 불편한 노약자를 위한다는 의미로만 보면 뒤지지 않았다. 조 목사는 “전통 교회라 노인과 몸이 불편한 분이 많다. 그분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0년 리모델링을 통해 조명과 음향을 보완하기 전(위)과 보완 후 예배당 내부 모습. 이리중앙교회 제공


지붕은 목조 트러스 위에 함석을 이었다가 지금은 박공형 지붕에 덴틸(Dentil) 장식을 더했다. 교회 내부 구조는 옛 예배당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근의 교회 건축이 예배당 형태가 가로로 넓다면 이리중앙교회는 강대상이 있는 예배당 앞에서 출입구가 있는 뒤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게 특징이다.

성도들이 예배에 집중하는 데도 신경 썼다. 본당 옆 벽은 물결 모양으로 마감해 소리를 확산시키는 동시에 흡음하도록 했다. 조명도 밝혔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주변에 교육관과 비전센터 1·2관도 마련했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출석한 오규식(65) 장로에겐 교회의 건축과 증축, 리모델링의 역사가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오 장로는 “모든 성도가 함께 청소하며 가꾼 곳”이라며 “증축이나 리모델링할 때 옛 모습들이 조금씩 사라져 아쉬움은 있지만, 그때 모습을 간직하려고 힘쓰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역을 끌어안다

외벽에 불이 들어오면 구도심을 밝히듯 이리중앙교회는 지역 사회를 밝히는 역할도 하고 있다. 디지털익산에도 “이리중앙교회는 중앙동을 비롯해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교회는 매년 11월이면 1년 동안 모은 동전으로 지역 주민 100명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는 이삭줍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전센터1에 있는 하늘정원카페는 좀 더 특별하다. 비전센터1 건물은 원래 교회 정원이 있었다. 그 부지를 매입한 기업이 건물을 세웠고, 이후 교회가 이 건물을 다시 샀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건물을 사용하기로 한 교회는 주민들이 모일 만한 장소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카페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음료를 제공하면서 지역 사랑방이 됐다. 동시에 수익금은 지역 사회로 환원했다. 시청의 어려운 청소년 가정 돕기, 교육청 사업 등을 지원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와의 협업도 늘었다. 주택가인 데다 시장이 인접해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도록 주차장을 열어놨더니 시청은 ‘열린 주차장’ 운영을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시청의 노인 행사엔 교회 식당과 주방도 제공했다. 조 목사는 “지역 사회를 밝히는 건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겸손히 말했다.

익산=글·사진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