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은 왜 단색화 거장 윤형근 대표작 대신 ‘습작’ 을 골랐나

2023. 1. 1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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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RM 앨범 ‘인디고’와 추상화 ‘청색’


BTS RM의 첫 공식 솔로 앨범의 커버 일부분. [사진 빅히트 뮤직]

“그는 말했지 늘, ‘먼저 사람이 돼라’ / ‘예술할 생각 말고 놀아, 느껴, 희로애락’”

방탄소년단(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지난 달 내놓은 첫 공식 솔로 앨범 ‘인디고(Indigo)’의 첫 번째 곡 ‘윤(Yun)’의 가사다. 노래에 나오는 ‘그’는 누구일까? 곡의 제목과 앨범 커버에 답이 있다. RM은 “앨범 재킷을 보면 제가 실제로 쓰는 스툴 위에 제가 입었던 청바지들이 쭉 올려져 있고… 높은 곳에 제가 1번 트랙부터 끌고 가는 윤형근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BTS 공식 유튜브 채널 ‘방탄TV’에서 설명한다. 노래 ‘윤’의 시작과 끝에는 윤형근(1928-2007)의 육성도 삽입돼 있다.

최근 몇 년간 윤형근의 전시라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달려간 RM 덕분에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 중에도 이 단색화 거장을 알게 됐다는 사람이 많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재벌가 둘째며느리가 교양을 과시하며 “조카네 갤러리에서 윤형근·박서보 특별전 한다고 해서 그림 좀 사려 했죠. 단색화가 뭔지, 추상화는 또 뭔지 형님 아세요?”라고 첫째며느리를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RM 덕분에 이 대사를 알아들었다!”라는 시청자 코멘트가 여러 개 있었다.

“숨가빴던 20대의 마지막 아카이브”

단색화는 1970년대부터 나타난 한국 추상화의 한 경향으로서, 색채를 한두 가지로 절제하고 화폭에 반복적 행위로 흔적을 남기거나 서예적인 획을 그어 정신성을 강조한 그림들을 가리킨다. 감각적 쾌감이나 재미는 별로 없는 어려운 그림들이다. K팝 음악을 하는 20대 나이의 스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윤형근의 ‘청다색’ 혹은 ‘엄버-블루(Umber-Blue)’라고 불리는 대표 연작은 다른 단색화보다 조금은 쉽게 공명할 수 있는 느낌이 있고, 바로 그 느낌 때문에 RM의 이번 솔로 앨범과도 연결된다. 그건 바로 모든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존재론적 슬픔과 고독이다.

RM의 ‘인디고’ 앨범에 대해 협업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에픽하이 타블로는 “가사를 들으면서 보게 되면 신나는 노래에서도 약간의 슬픔이 있고 약간의 외로움이 있고, 그게 저는 가장 인간적인 것 같아요”라고 방탄TV에서 말했다. 전지구적 인기를 누리는 밴드 BTS의 리더로서 숨가쁘게 달려왔던 RM이, 코로나19 시기에, 또한 멤버들의 군 입대와 얽혀 그룹 활동의 전환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만든 “20대의 마지막 아카이브”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윤형근의 ‘엄버-블루 (청다색)’ (1976-7), 면포에 유채, 162.3x130.6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팀 빠진 넌 사실 뭣도 아니야 너는 / 고속도로서 오솔길로 가려 해 너는”(‘윤’)

“이 모든 명예가 이젠 멍에가 됐을 때 / 이 욕심을 제발 거둬가소서 (중략) 타는 불꽃에서 들꽃으로 / 소년에서 영원으로 / 나 이 황량한 들에 남으리”(리드 싱글 ‘들꽃놀이’)

이들 가사에서 드러나듯 ‘인디고’ 앨범에는 RM이 화려한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밴드 멤버로서, 조용히 창작에 몰두하며 세월을 초월한 음악을 남기고 싶은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일상을 사는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정체성 충돌과 그 중 어느 하나를 버릴 수도 없고 완벽하게 조율할 수도 없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고뇌와 불안이 담겨 있다. 이런 심정을 타인은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고 정답을 줄 수도 없기에 근원적 고독과 슬픔이 앨범 전체에 푸른 빛 공기처럼 감돈다.

RM은 그에 대한 위로와 답을 미술 거장 윤형근에게서 찾는다. 동양의 서예 및 수묵 산수화와 서구 추상화를 합친 듯한 그의 ‘엄버-블루’ 연작은 황혼이나 여명의 어스름한 빛을 받으며 우뚝 솟아있는 절벽들의 검은 실루엣을 연상시킨다. 그 옅은 빛은 젯소(gesso·캔버스에 애벌로 칠하는 흰 물감)를 칠하지 않은 생 마포나 면포의 색깔이며, 그 검은색은 제목에 나오는 엄버(암갈색)와 블루 안료를 섞어서 만든 먹색이다. 윤형근은 40대 중반부터 이 색만으로 작업을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73년부터 내 그림이 확 달라진 것은 서대문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 것이 계기였지. 그 전에는 색을 썼었는데 색채가 싫어졌고 화려한 것이 싫어 그림이 검어진 것이지. 욕을 하면서 독기를 뿜어낸 것이지.”

장인이자 스승이었던 김환기가 타계한 1974년, 윤형근이 자신의 신촌 아뜰리에에서 찍은 사진. 벽에 자신의 새로운 작품 '엄버-블루(청다색)'(左)과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右)가 나란히 걸려 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형근은 1950년 보도연맹 사건 때 좌익으로 몰려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탈출하는 등 정치적인 이유로 4번 체포됐었다. 마지막 체포가 그의 작품세계를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73년 자신이 십여 년 간 교사로 근무해 온 숙명여고에서 한 학생의 부정입학 사실을 지적했다가 황당하게 반공법으로 투옥된 것이다. 그 학생이 중앙정보부장 자금을 대는 재벌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윤형근을 반공법에 얽어 넣은 죄목도 황당했는데, 그가 쓴 모자가 레닌 모자를 닮았다는 이유였다. 그 모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장인이자 존경하는 스승인 추상화 거장 김환기(1913-1974)가 뉴욕에서 보내온 사진 속 모자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윤형근이 직접 재봉틀로 비슷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게 ‘빨갱이’로 엮는 구실이 될 줄 꿈에나 생각했을까. 그는 서대문형무소 구금 한 달여 만에 사직서에 사인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RM이 ‘윤’에서 “시커멓게 탄 심장 / 재를 뿌린 그 위에 시를 쓰네 / 사선을 오갔던 생과 / 당신이 마침내 이 땅에 남긴 것들에게”라고 노래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지식 없이 윤형근의 ‘엄버-블루’ 연작을 볼 때는 그런 개인사를 짐작하기 힘들다. 많은 것을 품고 있지만 침묵하는 그림이며 “잔소리는 싹 뺀 외마디소리”(윤형근의 1977년 메모) 그림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즈워너 David Zwirner 파리에서 지난 주에 시작한 윤형근 개인전 전경. 세계 주요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빗 즈워너는 2019년에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파리 지점을 개관했고, 2023년 새해 첫 전시로 한국 단색화 거장 윤형근 개인전을 택했다. [사진 PKM 갤러리]


윤형근 그림의 검은색은 분노와 독기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나무는 그 무서운 풍우상설(風雨霜雪) 혹한 속에서 견디어 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고 묵묵히 침묵한 후 쓰러져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986년 9월 19일 일기) “흙 빛깔은 자연이 썩어서 정화된 빛깔”이며 “영원성을 지닌 미”인데, 자신의 ‘엄버-블루’ 연작에서 바로 그러한 땅의 빛깔인 엄버와 하늘의 빛깔인 블루가 합쳐서 ‘천지(天地)’ 즉 우주를 이룬다고 했다. (1977년 메모들)

그러니 윤형근의 검은색은 고통과 독기 어린 저항과 침묵의 인내를 모두 내포한 색깔인 동시에, 미술사학자 김현숙의 말대로 옛 동아시아 철학에서 심오하고 거대한 우주의 검은색을 표현하는 한자 ‘현(玄)’을 구현해낸 색깔인 것이다. 윤형근이 ‘천지문(天地門)’이라고 표현한 대로 그의 여러 그림에는 땅의 색과 하늘의 색이 합쳐진 우주적 검은색의 두 획이 문 형태로 서 있으며, 그 사이의 여백이 마치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빛처럼 보인다. 그것을 보며 느껴지는 것은 숭고함에 대한 아득한 슬픔, 즉 찰나적 애수나 참담한 비통함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유한함과 닿을 수 없는 영원과 무한에 대한 동경에서 오는 존재론적 슬픔이다.

RM “아직 인생작 못 찾았다고 생각”

윤형근은 말했다. “진실로 서러움은 진실로 아름다움하고 통한다.” (1988년 8월 17일 메모) “약삭빠른 사람들은 질러가게 마련이다. 되도록 많이 돌아가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하는 체험이 쌓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예술이란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돌아가면 자연 고난이 따르고 구질구질한 것이 많다… 그 서러운 인생을 체험해 보지 않은 인간은 진실로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도 없거니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1999년 8월 29일 메모)

윤형근의 ‘블루(청색)’(1972). [사진 윤형근 에스테이트 PKM 갤러리]


이렇게 삶의 고통조차 참된 예술을 위해 길을 돌아가는 과정으로 여긴 윤형근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RM은 ‘인디고’ 앨범에서 갈 길을 찾는다. 윤형근에게 헌정한 첫 번째 곡에서 “나는 예술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고 싶어. 잔인한 세상이지만 내 몫도 있을 거야. 진정한 아름다움은 진정한 슬픔이니까. (영어 파트 번역)”라고 몇 번에 걸쳐 되뇐다. 또한 리드 싱글 ‘들꽃놀이’에서 하늘에 솟아올라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곧 사라지는 불꽃 대신 땅에 뿌리를 두고 조용히 피고 지며 영원히 대지를 뒤덮는 들꽃이 되겠노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RM은 윤형근의 철학과 직결되며 그의 시그니처(signature·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거나 명성의 근거가 되는 특징 혹은 대표작)에 해당하는 ‘엄버-블루’ 연작 대신 그 이전 단계의 그림인 ‘블루’(1972)를 앨범 커버에 등장시켰을까? RM은 방탄TV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시그니처가 나오기 직전 페인팅이에요. 마지막 습작 같은 페인팅이에요. 아직도 저의 시그니처를 못 찾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습작을 가져온 거죠.”

이 말에서 RM이 윤형근의 작품세계에 대해 갖는 깊은 이해와 아티스트로서의 야심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새해를 맞은 이 때, 비록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시그니처를 언제, 어떻게 찾을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문소영 문화전문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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