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네’ 샀다가 ‘귀찮아’ 버리는…“토끼도 다 알아요”
이들은 갖가지 이유로 버림받은, ‘후천적’ 산토끼들이다. 사뿐사뿐 몸을 놀리는 귀여운 토끼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있다. 2023년 계묘년, 토끼의 해를 맞아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도심 속 유기토끼 문제를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토끼는 작고 귀엽다. 개처럼 짖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쁜 토끼를 ‘쉽게’ 사고 판다. 성토는 2만원, 어린 토끼도 5만원이면 온·오프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토끼는 생각보다 키우기가 까다롭다. 먹이를 챙겨 주는 것도, 사람과 교감하는 것도 개나 고양이와 또 달라 어렵다. 사람들은 토끼는 모를 거라 생각하고 마치 물건처럼 ‘쉽게’ 토끼를 버린다. 공식 집계된 통계에 따르면 매년 최소 300여마리의 토끼가 유기되고 있다.
토끼보호연대(토보연)는 유기 토끼를 구조하고 입양처를 찾아주는 단체다. 토보연은 이처럼 토끼 유기가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토끼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과 ‘토끼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문화’를 지목했다. 토보연의 말에서 단서를 얻어 토끼를 사고파는 현장을 찾아가봤다.
서울 청계천 애완동물 거리, 지난달 30일 영하의 날씨 속에서 어린 토끼들이 좁은 철창 속에 ‘전시’돼 있었다. 배설물 청소가 쉽도록 구멍이 숭숭 뚫린 철창 바닥에 4~7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가격은 마리당 2만원. 매장 주인들은 토끼들을 어디서 데려왔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모른다거나 ‘농장’이라고 답했다. 토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었다.
경기도 모처의 한 대형마트에서도 토끼를 판매하고 있었다. 마트 지하 2층 한쪽, 통유리로 된 공간에 토끼 한 마리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청계천에서는 보지 못한 ‘롭이어’ 품종으로 보였다. 롭이어란 귀가 쳐진 외모의 품종으로 유전병이 쉽게 나타날 수 있는 종이다. 귀여운 외모 덕에 최근 유행품종이기도 하다. 계묘년을 맞아 각종 토끼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형마트에선 ‘진짜 토끼’에도 가격표를 붙여 판매하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토끼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포털사이트에 ‘토끼 분양’을 검색해 토끼 전문업체로부터 분양가를 확인해봤다. 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략 5만원선에서 토끼 구매가 가능했다. 이미 다 자란 토끼는 보다 저렴한 2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개·고양이의 경우 최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토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인 셈이다.
이렇게 판매된 토끼들은 쉽게 버려진다.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사단 법인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2016-2020 유실 유기동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유기된 토끼는 2016년 329마리, 2017년 392마리, 2018년 263마리, 2019년 292마리, 2020년 329 마리로 추정된다. 해마다 300마리에 가까운 토끼들이 유기되고 있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에 비교하면 숫자는 적지만 유기토끼를 품는 사람들이 있다. 토끼보호연대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풀토동(풀 뜯는 토끼 동산)’에서는 토끼들의 새 가족을 찾는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로 유기토끼를 안내한다. 유기토끼 반려인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토끼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토끼를 덜컥 사지 말고 충분히 알아보고 준비한 뒤 입양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최지연(가명)씨는 친오빠가 펫샵에서 사온 토끼를 억지로 떠맡아 기르다 정이 든 케이스다. 지난 6년간 토끼를 키우면서 사람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최씨는 13일 “토끼도 길러보면 사람과 똑같다. 주인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주인 기분이 우울한 것 같으면 애교를 부려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고, 또 자기가 기분이 안 좋으면 기분을 풀어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한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키울 지 아무 생각 없이 입양한 후 유기한다면, 토끼들은 자기가 버림받고 있다는 걸 다 알 거다”고 했다.
김수지씨는 토끼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는 어릴 적 구매한 ‘깐순’, 3년 전 배봉산에서 구조한 ‘토리’, 그리고 2년 전 동네 공원에서 직접 구조한 ‘막내’와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토끼를 키우기 전,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한다. 토끼를 위해 집안 곳곳에 토끼가 좋아할 만한 은신처를 마련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는 “준비가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그는 “토끼를 데려오면 키우는 동안 토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토끼는 초식동물인데다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아 돌연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토끼의 특성상 토끼만 둔 채 떠나는 장기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시중의 반려동물 호텔이 대부분 개나 고양이 대상이라 토끼를 맡길 곳도 여의치 않다. 토끼를 키우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이다.
김지수씨는 6년 전 경기 고양시 보호소에서 유기토끼 ‘백구’를 입양했다. 김씨는 “토끼들은 인간과 교감해 온 역사가 강아지처럼 길지도 않고, 감정 표현 방식도 다르다 보니 사람들이 토끼에 익숙지 않다”며 “토끼들은 감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물건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토끼를 위해선) 사람들이 차라리 관심을 두지 않으면 좋겠는데, 귀엽고 구입하기 쉽다보니 물건처럼 취급된다”고 꼬집었다.
두 사람이 제발 토끼를 사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토끼를 샀다가 후회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 토끼를 데려올 때 김수지씨는 펫샵에서, 김지수씨는 트럭에서 팔던 토끼를 ‘구입’했다. 김지수씨는 “어렸을 때 엄마에게 졸라서 토끼를 샀는데, 제대로 돌보지 못해 얼마 못 살고 죽었다”며 “많이 뉘우치고 후회했다”고 전했다.
김수지씨는 “저도 첫째 깐순이는 돈 주고 사 왔다”며 “이미 토끼를 사온 분들이라면 이 친구의 평생을 꼭 책임져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토끼도 희로애락을 다 느끼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도 구분한다”며 “분명 버려지는 것도 알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초, 류동환, 박성영, 서지영, 이지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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