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사직서 내자, 尹 두 공직에서 동시에 해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동시에 해임했다. 3년 임기 장관급인 저출산위 부위원장에 임명한 지 3개월만이다. 윤 대통령이 장관급 공직자를 해임한 건 처음이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오늘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신임 저출산위 부위원장에는 김영미 동 위원회 상임위원을, 신임 기후환경대사에는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를 내정했다”고 부연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제출한 나 전 의원에 대해 '사표 수리'나 '해촉'이 아니라, '해임'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또한 나 전 의원이 사의를 밝히지 않은 기후환경대사에 대해서도 해임 결정이 내려졌다.
나 전 의원은 표면적으론 지난 5일 간담회에서 '출산시 대출 탕감' 정책을 제안하면서 대통령실과 긴장 관계를 형성해왔다. 저출산위 부위원장 사의 표명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나 전 의원이 13일 오전 부위원장 사직서를 공식 제출하고, 이것이 차기 대표 '출마 예고'로 받아들여지면서 윤 대통령도 결국 해임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나 전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자신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압박해 온 친윤계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어 나 전 의원은 2019년 12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 끝에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면서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도 숲은 그 자리를 지키고,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고 했던 언급을 상기시키며 "그 뜻과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라고 했다. 그러면서 "잠깐의 혼란과 소음이, 역사의 자명한 순리를 가리거나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는 해임된 나 전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친윤계 핵심인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마치 박해를 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전형적인 약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에서 가장 혜택을 받은 사람이 도대체 누군가. 장관급 자리를 2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퍼스트 클래스 타고 다니면서 장관급 예우를 받는 것이 약자는 아닐 것"이라며 "두 번이나 대통령 특사를 다녀오고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고 장관들을 위원으로 두고 있는 위원회의 부위원장이 약자인가"라고 반문했다.
또다른 친윤계 박수영 의원도 SNS에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 그래서 제2의 유승민은 당원들이 거부할 것"이라고 썼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사퇴하겠다는 사람을 붙잡아 기어코 자기 손으로 해임하다니 참 잔인한 대통령"이라며 "나경원 전 의원과 함께 어울리지 말라고 주홍글씨를 새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나 전 의원은 이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충북 단양의 구인사를 찾아 천태종 총무원장 무원스님을 만났다. 구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예비후보 시절, 부인 김건희 여사가 당선인 시절 각각 방문했던 곳이다.
安 “공천연대의 공포정치”…金 “토착왜구는 민주당 용어”
다른 당권 주자들의 신경전도 격화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13일 강남을 당원간담회에서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를 가리켜 “요즘 김장연대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공천연대”라며 “일종의 공포정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거기(김장연대)가 공천을 다 좌지우지할테니 합류하지 않으면 공천에서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며 “윤 대통령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원칙과 공정인데 이에 반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안 의원은 전날 김 의원이 ‘당원투표 100%’ 경선규칙을 “한국 축구팀의 감독을 뽑는데 일본 국민의 의견을 30%로 반영하라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빗댄 데 대해 “민주당의 ‘토착 왜구’ 세계관과 다르지 않다”고 했었다.
이에 대해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토착왜구는 민주당이 우리당 인사들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할 때 즐겨 쓰는 혐오 용어”라며 “‘죽창을 들라’는 슬로건마저 등장할까 우려된다. 아무리 지지율이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역공했다.
한편 김기현 의원은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를 영입했고, 안철수 의원은 김영우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다영·박태인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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