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에 교섭 나오라는 법원, 하청 노동3권 보장한 것"

김성욱 2023. 1. 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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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인터뷰] 택배노조 대리한 조세화 변호사 "원청 사용자성 논란 정리되길"

[김성욱 기자]

 경기도 광주 CJ대한통운 성남터미널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상하차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원청에 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게 하청 노동자의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재판부가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CJ대한통운이 하청 대리점에 소속된 택배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1월 12일 법원 판결을 두고 민주노총 법률원 조세화 변호사가 한 말이다. 조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 택배노조를 대리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용석)는 전날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1심에서 CJ대한통운의 청구를 기각하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택배 시장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하청 대리점에 위·수탁계약을 주면, 하청 대리점이 다시 개별 택배 노동자들과 배송 위탁계약을 맺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돼 있다. 이같은 '특고(특수형태근로자)' 신분인 탓에 택배 노동자들은 한 해에 16명이 과로사 한 2020년에도 원청과 직접 교섭을 할 수 없었다. 현재 CJ대한통운에만 1만7000여 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더라도,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하청 노동자들과 교섭할 책임을 진다고 못박았다. 이미 대법원이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판결 때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처음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경영계는 '원청이 하청 노조의 활동을 방해(지배·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일 뿐, 단체교섭까지 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는 식의 논리를 생산해왔다. 이번 1심 판결은 경영계 논리에 대한 재반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특히 다른 사업장의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희소식이다. 지난해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던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역시 원청인 대우조선에 교섭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불법'이 됐었다. 노동계에선 이번 판결이 특고·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13일 통화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 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에 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이번 판결은 다른 여러 간접 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했다. 다음은 조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헌법과 현실 두루 살핀 판결... 노조법 개정, 판결 취지 잘 살려야"
  
 지난 2020년 10월 12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김원종씨의 유가족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 장례식장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인의 아버지가 아들의 낡은 작업복을 보여주며 힘들게 일한 근무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 권우성
 
- 1월 12일 1심 판결의 의미는.

"원청 사용자와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원청에 교섭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이 헌법상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취지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하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대법원이 원청 사용자성을 최초 인정한 2010년 현대중공업 판결에 대해서, 그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노조 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등 방해 행위(노조법 81조 1항 4호)에만 한정되는 것이지,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노조법 81조 1항 3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의 논란이 있었는데, 그런 구분이 맞지 않다는 것이 명시됐다. 사실 노동법 학계에서는 2010년 판결만으로도 원청이 하청의 교섭 상대방으로서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통설이었다."

- 판결문을 보면 "원사업주(하청)에 비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 '원사업주 이외의 사업주'(원청)가 사업상의 필요에 의해 하청 소속 근로자의 노무를 자신의 지배 또는 영향 하에서 이용하는 계층적·다면적 노무제공관계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청에게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시킬 경우 근로조건의 개선, 유지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의 근로3권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써놨다.

"재판부가 헌법부터 시작해 최근의 현실을 두루두루 살핀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앞서 중노위 판정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었다. 사실 그간 여러 다른 하급심에서도 각론 정도로는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된 판례들이 있었다.

이번 판결처럼 원청 사용자에 교섭의무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직접적인 주요 쟁점이 아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최근 이 문제를 두고 지노위나 중노위 판정이 다소 모순된 경우들이 발생해왔는데, 이번 판결로 좀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

- CJ대한통운 측은 항소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까지 갈 사안이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법원에서도 유지됐다. 서울행정법원은 1월 12일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선고를 마치고 나온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오른쪽 세번째) 등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번 판결이 다른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이 있을까.

"그렇다. 업무 수행 과정에 있어서 원청이 하청에 어떤 구조적인 지배력,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된다는 취지인데, 우리나라의 하도급 관계는 여전히 원청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아예 사내하청도 많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

- 관련 법안인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입법을 통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지금처럼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을 하기 위해 소송을 하고 대법원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사이에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 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보장이 안 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국회에서 입법이 제대로 돼야 한다. 조문화 작업을 할 때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들이 협의를 하게 되면 법 내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입법이 되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관련 기사]
'진짜 사장' CJ대한통운 교섭거부, 부당노동행위 http://omn.kr/22cei
"대법 판결에도 12년 째 하청 뒤에 숨는 원청... 정부·국회 뭐했나" http://omn.kr/2023g
[노란봉투법⑥] 올해만 단식 세번째... "CJ대한통운, 약속 지키랬더니 20억 손배" http://omn.kr/21x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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