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가능성과 아쉬움, 필요한 건 '진심'이다

김성호 2023. 1. 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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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32] <유령>

[김성호 기자]

 
▲ 유령 포스터
ⓒ CJ ENM
 
'끝내주는 영화를 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가 있다. 누구나 왕가위의 <화양연화>나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데미언 셔젤의 <라라랜드> 같은 영화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세련된 영상,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 귀에 꽂히는 대사, 그런 것들이 빚어내는 멋이 그런 영화들엔 반드시 등장하곤 하는 것이다.

<유령>을 보며 혹시 그런 영화는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 십여 분은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영상은 화려하고 인물들도 눈길을 끄는 것이어서 어쩌면, 어쩌면 하는 생각을 거듭하여 했다. 그러나 그 어쩌면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세상의 유명한 사기꾼들은 일부러 먹잇감에게 의심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의심했다 그 의심이 풀리면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던 것보다 상대를 확고하게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어떠할까. 믿었다가 실망하게 되는 것보다 불안한 관계가 그리 많지만은 않은 법이다. 이 영화가 꼭 그러했다. 괜찮은 작품이라 믿었는데 흐지부지 흩어지는 그토록 실망스러운 영화 말이다.

<유령>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주목받은 이해영 감독의 신작이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나온 게 2006년이니 무려 17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여러 실망스러운 작품들이 있었으니 <페스티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독전> 등이다. 이해영을 기대한 이들도 그에게 실망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독전>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했고 <유령>이 그 가능성을 확인케 하리라 믿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 유령 스틸컷
ⓒ CJ ENM
 
나라를 잃고 23년, 조선총독을 암살하라

<유령>은 1933년, 경성과 그 근교 옛 호텔건물을 무대로 한다. 일제강점기를 다루었으나 어디까지나 배경일 뿐 일어나는 사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은 죄다 허구다. 한반도엔 일본에서 파견한 신임 총독이 부임한다. 곧 총독의 취임행사가 있고 그 자리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유령'은 중국 상해를 헤집어놨던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다. 경성의 총독부에도 유령이 잠입해 있는데 총독이 부임하자마자 있었던 암살시도가 유령의 조력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총독과 함께 일본에서 건너온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 분)가 유령을 색출하는 중책을 맡는다. 그는 경성 근교의 옛 호텔건물로 다섯 명의 용의자를 잡아들인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쥰지(설경구 분)와 암호문 기록 담당자 박차경(이하늬 분), 암호 해독 담당자 천계장(서현우 분), 정무총감 비서(박소담 분), 통신과 말단직원 백호(김동희 분)가 그들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이들 다섯에겐 진짜 유령을 찾으란 숙제가 떨어진다. 시간 내에 찾지 못하면 무작위로 고문을 하겠단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영화의 중반부까지를 차지한다.
 
▲ 유령 스틸컷
ⓒ CJ ENM
 
추리물과 액션활극의 경계에서

다섯의 인물이 고립된 장소에서 진실을 찾아간다는 설정은 여러모로 옛 추리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유령>은 일찌감치 진짜 유령이 누구인지를 관객 앞에 알림으로써 추리물의 지적 긴장을 이어갈 의사가 없단 걸 드러낸다. 기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서로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다분히 영화적이어서 추리물의 치밀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며 민낯을 드러낸다. 고립된 장소에서 이내 한 판의 대혈전이 펼쳐진다. 다섯 중 몇이 주둔한 소대 규모 병력을 격파하고 유유히 호텔을 떠나가는 당혹스러운 전개가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여성액션을 간절히 바랐던 소수의 관객을 제외하곤 그 비현실성에 탄식이 나올 만큼 아쉬운 설정이며 연출이 이어진다. 여성서사의 멋을 살려내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최정예 특수요원도 감히 해내지 못할 격투며 총격을 선택한 건 영화의 현실성을 크게 떨어뜨린 악수라 하겠다.

영화는 호텔건물에서의 혈전에서 그치지 않는다. 경성의 총독 취임식 자리에서 또 한 번의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예고된 혈투가 호텔건물에서의 혈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규모와 상황만 조금 달리하여 같은 방식의 클라이막스를 늘어뜨린 꼴이다.
 
▲ 유령 스틸컷
ⓒ CJ ENM
 
아쉬운 실패, 진심이 있었다면

관객들은 지루함만을 마주한다. 영화가 감동을 자아내는 방식 역시 지나치게 전형적이어서 실망스럽다. 애국심과 가족애를 건드리는 게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노골적으로 그에 기대는 건 작가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유령>의 가장 큰 실패는 캐릭터에 있다. 분위기는 살아 있지만 인물들의 선택과 선택 사이가 좀처럼 설득력이 없다.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구라면 같은 상황에서 그와 같이 하지 않을 것이 많다. 심지어는 그들 자신이라 할지라도.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과한 색을 입힌 캐릭터들이 시종 삐걱댄다. 그 속에서 이야기는 부서지고 대사들만 흩날린다.

감독은 알아야 했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진심이 필요하단 것을, 심지어 거짓을 말할 때조차도. 이 영화에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그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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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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