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홍명보, 끝까지 품격 지킨 아마노

이준목 2023. 1. 1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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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홍 감독 발언 정당한 비판 수준 넘어선 '공격', 사과해야

[이준목 기자]

▲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 기자간담회 11일 오후 울산시 동구 울산현대축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홍명보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2년 울산 현대에 17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안긴 주역들이 불과 반년도 안 되어 '원수'가 됐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과, 올시즌 전북 현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일본 출신 미드필더 아마노 준이 이적을 둘러싸고 언론을 통하여 진실공방을 벌이며 축구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아마노는 2022시즌 울산에서 임대 선수 신분으로 활약하며 각종 대회에서 총 38경기 출전 11골 2도움으로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리그에서만 9골·1도움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공격 포인트 이상으로 팀 경기운영의 연결고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기에 울산은 17년 만의 K리그1 우승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울산은 아마노의 활약상을 인정하여 원 소속팀 요코하마와 임대 계약 연장을 추진했고, 선수도 이에 동의하며 재계약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는 분위기로 보였다. 그런데 아마노가 돌연 전북 현대행으로 방향을 돌리며 울산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울산을 떠난 것도 예상밖이지만 하필 전북은 울산과 K리그에서 매년 우승을 다투고 있는 라이벌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북은 울산보다 아마노에게 연봉 10만 달러(약 1억 2500만 원)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는 울산 구단과 팬들 입장에서 서운할 수는 있지만 축구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프로는 비즈니스이고 선수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으로 이적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하여 아마노를 강도 높게 저격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돈 때문에 이적, 일본 선수 중 최악" 선 넘은 발언

홍 감독은 지난 1월 11일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아마노의 이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원래 프로는 돈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아마노는 '돈은 상관없다'면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랬던 선수가 돈만 보고 전북으로 떠났다. 처음부터 돈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협상을 도울 수 있었다. 우리와 이야기할 때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은 돈 때문에 전북 현대로 이적한 것"이라고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홍명보의 급발진은 여기에서 그치치 않았다. 홍명보는 "아마노는 거짓말을 하고 전북으로 갔다. 지금까지 만나본 일본 선수 중 역대 최악이다"라고 맹비난했다. 아마노에 대한 노골적인 악감정을 드러낸 홍명보의 발언은 언론을 통하여 대서특필되었고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화제가 되고 있다. 

'아마노가 역대 최악의 일본 선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공감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홍명보의 비난이 특정 선수를 겨냥한 공개 발언 수위로 '역대급'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보인다. 그야말로 철천지원수에게나 할 법한 강도 높은 발언에 듣는 이들도 충격에 빠졌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 지난 시즌까지 팀의 핵심 선수가 하필 라이벌팀으로 이적하는 것은 누구라도 심기가 불편할 만한 일이다. 또한 홍 감독의 주장대로 아마노가 협상 과정에서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 게 사실이라면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의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과,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차원이 다르다. 선수가 사생활-음주운전 등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지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아마노같이 이적하는 사례는 축구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아마노에게 정당한 비판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비난이자, 인신공격'을 했다.

비난에도 금도가 있다. 공개석상에서 선수를 '거짓말쟁이'로 규정하고 굳이 '국적'까지 들먹이며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에 가깝다. 더구나 축구계에서 라이벌팀으로의 이적이나 금전적인 문제로 불화를 빚은 사례는 많지만, 일반 팬들도 아니고 공적인 위치에 있는 감독이 선수를 이런 식으로 폄하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설사 선수가 비판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게 사실일지라도, 이는 개인과 클럽간의 계약 문제일 뿐이다. 만일 해외 구단에서 뛰는 한국 선수가 이적문제로 갈등을 빚었다고 국적까지 들먹이며 전 소속팀 감독이 "그는 역대 최악의 한국 선수"라고 비난한다면 과연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홍명보의 이런 발언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선수의 명예를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자칫 양팀의 라이벌리와 팬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적과정에서 서운함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노가 울산의 우승공신이라는 사실은 바뀌지않는다.

또한 울산과 전북은 다음 시즌도 같은 K리그에서 우승을 놓고 수차례 맞붙어야 할 경쟁팀이다. 그런데 감독이 상대팀 특정 선수를 노골적으로 저격하는 것은 자칫 팬덤까지 자극하여 '좌표'를 찍는 꼴이 될 수 있는 데다, 다음 시즌 양팀의 경쟁구도를 필요 이상으로 과열시킬 수 있는 소지도 다분하다.

'성숙한 대응' 아마노의 판정승
 
▲ 전북 현대 아마노 준 기자회견 프로축구 K리그1 전북 현대의 아마노 준이 12일 전북 완주군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아마노도 결국 입장을 밝혔다. 마침 하루 뒤인 12일에는 전북도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전북 유니폼을 입고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아마노는 홍명보 감독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아마노는 "홍 감독이 언론을 통해 그런 발언을 한 것에 충격을 받았고, 실망 아닌 실망을 했다"고 밝히며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돈을 선택해 이적했다고 말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아마노는 "울산은 나에 대하여 진심으로 협상을 제안한 적이 없었다. 울산은 전북에서 나에게 정식 오퍼를 하고서 하루 뒤에야 미팅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아마노의 주장에 따르면 울산에 남고 싶어 홍 감독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울산의 협상태도가 소극적이라 결국 더 진지하게 협상을 제시한 전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아마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울산이 정말 아마노를 잡으려는 의지를 보였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와 아마노,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대응'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마노의 확실한 판정승이었다. 아마노는 "홍명보 감독은 나를 K리그에 데려온 은사이자 우승을 함께한 전우이고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상대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서도 홍명보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끝까지 자제하고 예의를 지켰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선수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과 막말을 일삼은 홍명보와 극명하게 대비된 부분이다.

이적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울산과 홍명보 감독은 아마노의 국적을 들먹이며 인신공격한 부분에 있어서는 공개 사과해야 한다. 이는 감독과 선수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리그 차원의 품격과 관련된 사안이다. 수많은 사연들이 넘쳐나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뒷이야기를 하나하나 문제 삼아서 도를 넘는 막말까지 정당화된다면, 축구판은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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