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들고 임시정부 답사 떠날 날을 고대합니다

김경준 2023. 1. 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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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현직 국어교사의 역사 답사기 '임시정부를 걷다 대한민국을 걷다'

[김경준 기자]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중국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중국에 다녀온 것은 2020년 1월. 그러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기 직전이었다. 당시 나는 광저우에서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동했던 '임정로드'의 일부 구간을 걷고 돌아온 바 있다.
 
 충칭 연화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각각 2013년 여름, 2020년 겨울 촬영)
ⓒ 김경준
그해 3월 대학원에 입학해 역사학 석사 과정을 밟았던 나는 작년 8월 독립운동가 무강 문일민(1894~1968) 선생의 삶을 조명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일민 선생은 1920년 8월 평남도청 투탄 의거의 주인공이자 해방 직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였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그분이 걸었던 발자취를 머릿속으로 따라 걸었고, 자연스레 임정로드 위에서의 기억들도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러면서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됐다. "문일민 선생이 걸었던 임정로드 위에서 석사학위논문을 들고 인증샷을 찍고 싶다"는 꿈 말이다. 그러나 중국으로 가는 길이 꽉 막힌 상황에서, 나의 그러한 꿈은 여전히 꿈으로 머물러 있는 중이다.

서울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길을 걷다
 
 <임시정부를 걷다 대한민국을 걷다> 표지
ⓒ 레드우드
이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듯 최근 <임시정부를 걷다 대한민국을 걷다>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답사기가 출간됐다. 저자는 서울 한성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현직 교사다.

2013년 상하이 답사를 시작으로 2020년 1월 코로나 팬데믹 직전까지 제자들과 함께 국내 10곳, 중국 내 28곳에 달하는 임시정부 유적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렇게 찍은 사진만 수만 장에 이른다. 이번에 출간된 <임시정부를 걷다 대한민국을 걷다>는 바로 그러한 기록의 산물이다.

중요 유적마다 삽입된 'QR코드'는 해당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안내해준다. 또 부록으로 3박 4일·5박 6일·11박 12일 코스 등 임정로드를 효율적으로 답사할 수 있는 저자만의 추천 코스를 정리해뒀다. 이러한 장치들은 답사기로서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세련된 레스토랑으로 변해버린 백범 김구의 거처 상하이 '영경방 10호'에서 느낀 아쉬움, 난징의 일본군 위안소에서 북받쳐 오른 슬픔,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 걸린 독재자 전두환의 친필 휘호를 보고 차오른 분노 등 저자는 길을 걸으며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곳을 직접 가보지 않은 나조차도 저자의 감정에 몰입되는 바람에 책장을 넘기는 동안 번갈아 드는 다양한 감정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참혹한 역사도 기록되어야 하기에 한 가지 사실을 밝혀둔다. 첫 번째 연화지 청사 답사 때 감격스러운 기분을 잡친 일이 있었다. 청사 내부를 둘러보던 중 임정 요인 누군가의 유묵인가 싶어 살핀 액자에는 '大韓民國 第十二代 大統領 全斗煥(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쓰여 있었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가 괴발개발 '愛國丹心(애국단심)'이라고 썼으니 참담한 일이다. 그것도 조국광복을 위해 평생 풍찬노숙한 임정 요인의 자취가 남은 이곳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 말이다." - 144쪽

김구·윤봉길 이별의 장소를 상상하다

1932년 4월 29일 아침,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은 김해산의 집에서 김구와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서로의 시계를 교환하며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윽고 '천하영웅' 윤봉길을 태운 자동차는 거사 장소인 홍커우공원을 향해 달려갔다. <백범일지>에 묘사된 김구와 윤봉길의 마지막 순간이다.

기존에는 <백범일지>의 기록을 따라 김해산의 집(원창리 13호)에서 김구와 윤봉길이 시계를 교환한 것으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저자는 좀 더 과감한 상상력을 보태 두 사람의 시계 교환 장소로 새로운 장소를 지목한다.
 
"나는 답사 때마다 백범과 매헌 두 분의 마지막 길을 동행과 함께 걷는다. 내 상상과 재구성이 잘못됐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시 백범의 아픔과 매헌의 의기를 왜곡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두 분이 시계를 바꿨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지만, 그 장소가 어디인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아 내 가난한 상상력을 동원해 본 것이다." - 57쪽

저자가 지목한 곳은 안탕로(雁荡路)와 회해중로(淮海中路)의 북쪽 교차점. 김해산의 집을 나서면 남북으로 뻗은 안탕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5분 거리에 동서로 이어진 회해중로와 만난다. 다시 이 길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가면 홍커우 공원이 등장한다. 실제 답사한 경험을 토대로 두 사람이 시계를 교환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 곳을 새롭게 추정한 것이다.
 
 안탕로의 북쪽 끝, 회해중로와의 교차 지점이다. 저자는 이곳 어딘가에서 김구와 윤봉길이 작별 인사를 나눴을 것으로 추측한다.
ⓒ 김태빈
 
한편 연구 성과의 축적에 따라 오류로 밝혀진 장소들에 대해서도 바로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항저우의 '청태제2여사(淸泰第二旅舍)'를 들 수 있다. 임시정부는 윤봉길 의거 직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피난하면서 청태제2여사 32호에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게 된다.

기존에는 임시사무소가 인화로(人和路) 22호에 자리한 숙박업소 한정주점(漢庭酒店)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독립기념관의 조사 결과 이는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청태제2여사가 인화로에 자리 잡은 것은 1933년으로 그 전까지는 호빈로(湖濱路)·연령로(延齡路)의 교차지점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현주소상으로는 항저우 연안로 205호와 264호 일대).

저자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흔적을 느껴보자며 동행한 이들에게 한정주점에 숙박하기를 고집했던 일을 언급하며 스스로 "얼치기 전문가 행세를 했다"고 고백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은 마냥 진지한 분위기로만 흐르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웃음 포인트다.

그렇다면 그 길고 길었던 임시정부의 노정을 걸으며 저자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장소는 어디였을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상하이도 충칭도 아닌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었다.
 
"'이승만부터 김원봉까지'는 임정의 통합정신을 계승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모토다. 이는 몇몇 독립 영웅 중심으로 기념관을 꾸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 좌우의 통합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방략에서 외교전에서 무장투쟁까지, 세대적으로는 19세기생부터 20세기생까지, 지역적으로 황해도 평산 분도, 경남 밀양 분도 함께 남과 북 차별 없이 모두를 망라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임정 답사 출발지로서 기능할 것이다." - 182쪽 

임정기념관은 2022년 3월 1일 개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비로소 우리의 뿌리를 기억하는 공간이 세워진 것이다. 선열에 대한 송구함과 도리를 다하지 못한 후손의 부끄러움을 털어내는 곳이기에 저자는 임정기념관에 애틋함을 느낀다. 책의 에필로그를 '첫 임정 기념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장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저자 못지 않게 나 역시도 틈만 나면 임정기념관에 가는 것으로 임정로드를 걷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그렇기에 중국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기 전까지 임정기념관이라도 많이들 방문해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자리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2022년 3월 1일 문을 열었다.
ⓒ 김경준
 
다시 임정로드 위에 설 그날을 기약하며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하루 빨리 종식되어, 다시 임정로드 순례길이 열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는 2020년 임정로드 답사를 마치고 <오마이뉴스>에 9편에 걸쳐 '다시 걷는 임정로드'라는 제목으로 답사기를 연재한 바 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위와 같은 구절을 덧붙였더랬다.

애석하게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도, 중국으로 가는 길이 언제 열릴지도 기약이 없다. 아쉽지만 다시 한 번 같은 말로 임정로드 순례길이 열리기만을 거듭 기원할 따름이다.

한편으로 석사논문을 들고 임정로드 위에서 인증샷을 찍고 싶다는 나의 꿈을 한층 업그레이드(?)하여 새로운 포부를 밝힌다. 언젠가 임정로드에 이어 문일민 선생이 걸었던 길, '무강로드'를 개척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 권의 답사기로 엮어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싶다. 어서 그날이 오기만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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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임시정부를 걷다 대한민국을 걷다 / 김태빈 저 / 레드우드 / 202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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