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가 매력적인 이유, 그럼에도 불편한 이유 [싫어도-살자]
[강성국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
ⓒ 넷플릭스 |
지난해 12월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가 흥행 중이다. 시청횟수와 시청시간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순위에서 <더 글로리>는 1월 10일 기준으로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전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 대만, 홍콩, 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16부작 중 현재 파트 1만 공개된 것을 감안하면 파트2까지 종료 후 <더 글로리>는 최종적으로는 <킹덤><오징어 게임><지옥><지금 우리 학교는>등 한국에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뒤를 잇는 흥행작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더 글로리>의 이야기 줄기는 무척 단순하다. 고등학교 시절 연진(임지연), 재준(박성훈), 사라(김히어라), 혜정(차주영), 명오(김건우)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인 동은(송혜교)은 지독한 학교폭력 속에서 가족과 학교,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결국 학교폭력을 피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 학교폭력의 가해자들 앞에 나타나 복수를 이루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에피소드 전반에 흐르고 있는 사적인 복수의 비장함과 달콤함 때문이다.
"난 네가 시들어가는 이 순간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거든.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동은은 끔찍한 학교폭력으로 인해 학교를 자퇴한 뒤 오로지 복수를 위해 살아간다.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고(심지어 동은의 끼니도 대부분 김밥이다), 숙식을 제공하는 방직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가까스로 검정고시와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교육대학교에 진학해 교사 임용까지 성공한다. 이 모든 불가능한 것들이 연진과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라는 일념으로 가능했다.
이제 17년 만에 피해자인 동은은 가해자인 연진의 딸 예솔의 담임교사가 되었으며 바둑을 매개로 연진의 남편 도영(정성일)에게도 접근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동은이 연진을 당혹스럽게 하는 대사 그대로 '우연'이란 단 한 줄도 없었다.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질 때마다 동은은 학교폭력의 주동자였던 연진에게 편지를 쓴다. 대한민국에서 유서와 편지를 자신이 가장 잘 쓴다는 김은숙 작가의 자신감대로 이 편지들은 <더 글로리>의 비장함의 가장 주된 장치인 동은의 독백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자신들의 괴롭힘 대상이었던 약하고 보잘 것 없던, 아무도 지켜주지 않던 동은이, 그래서 고등학교를 도망치듯 자퇴하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숨죽이고 비참한 삶을 간신히 유지할 것만 같았던 동은은 이젠 어엿한 교사가 되어 나타난다. 그것도 연진의 하나 뿐인 초등학생 딸의 담임교사가 되어서 말이다. 바로 이 순간 드디어 17년 전의 상황은 반전된다. 동은이라는 억압되었던 것의 귀환은 거침 없이 삶을 누리던 가해자들에게 언제든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낯설고 불길한 올가미가 되어 안온했던 생활을 옥죄어 간다.
동은이 고교시절 겪은 잔혹한 학교폭력이 초반 에피소드들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만큼 <더 글로리>의 후반부의 복수는 비장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또 그때문에 무려 17년을 묵은 동은의 복수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복수가 정당하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이입되게 함으로 일종의 출구 없는 몰입감을 제공한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 이미지 |
ⓒ 넷플릭스 |
이 의혹은 <더 글로리>에서 묘사되는 학교폭력이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해자들인 연진과 재준, 사라의 부모들이 단지 부유하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이 학교폭력의 윤리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인 동은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학교폭력의 구조와 원인을 응시해 보려는 그 어떤 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의도적으로 모른척 한다. 그저 학교폭력과 그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들이 절대 악으로 존재해야 하며 그 폭력으로 너덜너덜해진 상처로 가득찬 동은의 신체가 필요하다는 듯한 태도다.
결국 이렇게 지나치게 단순화 된 학교폭력은 연진과 재준 등 가해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을 평면적으로 그려내면서 학교폭력이 오직 사회 전반의 부조리들이 조각조각 모여있는 총체적 현상인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킨다. 물론 이 착시는 용서는 없는, 그래서 영광도 없는 복수를 꿈꾸고 있는 환원주의의 앙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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