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즈베던과 서울시향의 첫 만남... 짜릿하고 강렬했다

2023. 1. 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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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스케 대타 지휘, 사흘간 리허설
일사불란, 명료하고 뚜렷한 표현
볼끝 살아있는 투구 같은 위력
서울시향 단원들도 역량 빛나
12일 밤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른 야프 판 즈베던 음악감독.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상대로 강렬한 지휘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단원들의 역량도 놀라웠다.
12일 밤 롯데콘서트홀, 야프 판 즈베던(63)의 서울시향 지휘 데뷔 얘기다. 현재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판 즈베던은 내년 1월부터 서울시향 음악감독 5년 임기를 시작한다. 서울시향과 첫 연주는 원래 오는 7월 예정됐었다. 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부상으로 12일과 13일 서울시향 공연에 불참하자 판 즈베던이 대타 지휘자로 내한, 시기를 앞당겨 서울시향 지휘 데뷔를 했다. 9일 입국한 즈베던은 10~12일 사흘간 리허설을 가졌다.

공연 당일 12일 밤. 시작 전부터 무대 위에 서울시향 목관과 금관 주자들이 나와 연습했다. 현악 주자들이 입장하며 전단원이 자리 잡자 환호 속에 판 즈베던이 걸어나왔다. 2018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21년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며 한국 청중과 구면인 그였지만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설레는 순간이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빠른 템포로 굵직하게 시작됐다. 맹렬하고 뜨거운 연주다. 거대한 총주의 흐름은 잰걸음이면서 박자의 뼈대가 튼튼했다. 이전의 서울시향 연주와 비교하면 목관악기의 운용이 눈에 띄었다.
오보에의 가녀린 부분에서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 단조롭지 않았다. 착착 맞아떨어지는 확실한 표현에서 달라진 모습이었다. 일사불란한 현의 팽팽한 긴장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나 게오르그 숄티 같은 지휘 거장의 음악을 연상시켰다. 일필휘지로 1악장이 끝났다.

12일 밤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른 야프 판 즈베던 음악감독.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2악장에서는 현악 합주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살렸다. 오보에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등 목관악기를 노래하는 데 효과적으로 썼다. 숲에서 부는 바람같이 울리는 관악군은 악장 웨인 린의 솔로를 금빛으로 뒤덮었다. 악장을 마칠 때 판 즈베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원들에게 신뢰를 표했다.

3악장에서 현악군 사이에 목관이 고개를 내밀었다. 빠른 템포를 따라가기가 버거워보이기도 했다. 현악군은 극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소리를 견지했다.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뜯는 주법) 연주 후 약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연주였다.

4악장에서 독특한 현의 소리와 노래하는 목관은 확실히 달라진 서울시향을 말해주고 있었다. 긴 호흡을 소화하는 호른과 플루트도 좋았다. 코랄풍의 뭉근한 토롬본과 대조적으로 총주는 날카롭고 단단했다.

2부의 시작은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이었다. 웅장한 가운데 음향 풍경이 넓게 펼쳐졌다. 시계 초침같이 정밀한 현악 앙상블 속에 목관과 금관이 녹아들어가는 모습이었는데, 섞인 소리가 불투명하게 다가왔다.
이어진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1막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에서는 호흡에 여유를 찾았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만드는 저역이 그윽했고 파도처럼 수위를 높이는 현악군 위에 금관이 당당하게 포효했다. ‘사랑의 죽음’에서는 최약음을 섬세하게 만들어내는 부드러움이 부각됐다. 판 즈베던은 짧은 시간 동안 서울시향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판 즈베던은 껑충 뛰며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쥐’ 서곡을 시작했다. 우아하고 익살맞은 밝은 현악군은 팽팽한 줄을 늘였다 당기듯 여유로웠다. 빈 특유의 왈츠 리듬을 제대로 살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강렬한 총주의 끝처리는 서예에서 ‘붓끝이 살아있다’ 야구에서 ‘볼끝이 살아있다’는 말을 연상시켰다.

12일 밤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른 야프 판 즈베던 음악감독.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뜨거운 커튼콜을 받던 판 즈베던은 다시 지휘대에 뛰어올라 앙코르로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Op.46-8을 연주했다. 슬라브적인 성격보다는 예민한 연주 역량에 방점이 찍힌 해석이었다. 환한 표정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퇴장하는 서울시향 단원들을 보며 이들 개개인이 얼마나 뛰어난 연주력을 갖고 있었는지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 돌릴 새 없는 공격적인 연주’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판 즈베던의 지휘로 서울시향 단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났던 것도 사실이다. 짧았던 첫 만남이 이렇게 강렬하니 내년부터 판 즈베던의 임기 5년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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