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만큼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권오설의 슬픈 사연
황광우 2023. 1. 13. 11:33
[황광우 역사산책 7] 그는 왜 주검으로 옥문을 나와 철관에 묻혀야 했을까
3.1운동으로 옥사한 유관순은 알아도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끝내 주검이 돼 옥문을 나선 권오설(1897년~1930년)의 슬픈 사연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권오설은 부모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숨겼다. 하지만 동생 권오기에게만큼은 자신의 몸이 심상치 않음을 숨기지 않았다. 1929년 12월로 추정되는 편지에서는 이렇게 밝혔다.
권오설은 1930년 7월 출옥할 예정이었다. 1930년 2월 25일자 편지에서는 이렇게 썼다. 그것은 마지막 편지였다.
이 편지에서 권오설은 아직 살아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데 1930년 4월 17일, 돌연 권오설의 병사통지서가 날아왔다. 괴이한 일이었다.
권오설의 부친 권술조가 전보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는 아들의 시신이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아버지는 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부모가 죽으면 자식은 부모의 시신을 땅속에 묻으나,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권술조는 슬픔을 이렇게 적었다.
일경은 출소를 앞둔 권오설 선생을 또 다시 고문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나? 일경은 권오설의 시신을 철관 속에 넣고 땅속 깊이 묻어버렸다.
[황광우 작가]
▲ 독립운동가 권오설 |
ⓒ 보훈처 |
3.1운동으로 옥사한 유관순은 알아도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끝내 주검이 돼 옥문을 나선 권오설(1897년~1930년)의 슬픈 사연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권오설은 주검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나왔으며, 그의 주검은 철관에 묻혀야 했을까? 나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된 권오설의 철관 앞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고 묵상에 잠겼다.
권오설의 삶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나 권오설을 이야기하는 평전은 없었다. 오랫동안 나에게 그는 전설이었다. 뜻밖이었다. 권오설의 심문 조서와 옥중 편지를 모은 자료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푸른역사>가 출간한 <권오설> 1권과 2권을 받아들고 나는 뛸 듯 기뻐했다.
권오설은 1920년대 활동한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였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되는 반면, 식민지 지식인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됐다. 권오설에게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의 타파를 뜻했다. 자료를 뒤지니 권오설이 진술한 고문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문: 경찰에서 고문당한 사실이 있는가?
답: 경찰에서 취조를 받은 것은 때마침 여름이었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라며 둥근 의자를 넘어뜨려 그 위에 나를 앉혔다. 그때 요시노 경부보가 나의 무릎 끝을 발로 차는 바람에 나는 앞으로 쓰러져 앞니를 부딪쳤다. 그 이후에는 앞니가 덜그럭거리며 움직여 바람이 스치면 고통스럽다. (...) 요시노 경부보가 양손을 목 뒤로 접고 끈으로 동여매었다. 그리고서 5, 6명의 경관이 죽도록 나를 마구 때렸다. 이어서 앉아 있는 다리의 안쪽에 각목 2개를 끼우고 하루 밤낮을 계속 고문했다. 다음날 각목 1개는 빼냈지만, 그것으로 인해 상반신이 붓고, 다리가 마비됐고, 머리가 휘청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권오설 1>, 552쪽
권오설은 부모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숨겼다. 하지만 동생 권오기에게만큼은 자신의 몸이 심상치 않음을 숨기지 않았다. 1929년 12월로 추정되는 편지에서는 이렇게 밝혔다.
나는 머리가 몹시 아프며 우반신은 놀리기에 매우 임의롭지 못하다. 이빨도 노인과 마찬가지로 모진 것은 물어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이 차면 시어서 견디기 힘들다. - <권오설 2>, 285쪽
권오설은 1930년 7월 출옥할 예정이었다. 1930년 2월 25일자 편지에서는 이렇게 썼다. 그것은 마지막 편지였다.
형은 무사하다면 무사하다 하겠으나 몸이 조금 괴롭다. - <권오설 2>, 288쪽
이 편지에서 권오설은 아직 살아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데 1930년 4월 17일, 돌연 권오설의 병사통지서가 날아왔다. 괴이한 일이었다.
권오설의 최후를 목격한 이는 동생 권오기였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3월 17일(음력)에 급하다는 전보를 받고 즉시 달려와서 18일 형님이 계시는 감옥 속으로 달려갔더니 이미 숨이 끊어지려 하고 정신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형님! 형님!' 하고 부르면서 저를 아시겠습니까? 하였더니 이에 눈을 뜨시고 말하기를 '내 아우가 왔느냐? 내가 내 동생을 어찌 모르겠느냐?' 했습니다. 곧 두 손으로 목을 껴안고 볼을 비비면서 형님은 저를 껴안고 저는 형님을 껴안았습니다. 형님께서는 '아우야 오늘 밤은 나와 같이 자자'고 하였으나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감추고 나와 자고 아침에 들어가니 형님은 이미 운명했습니다. - <권오설 2>, 523쪽
▲ 2008년 4월 14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일마을 부근 공동묘지에서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1897~1930, 건국훈장 독립장(2005))의 묘에서 철관이 발견되었다. 고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지 78년만이다. 1930년 4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후 고인의 주검은 철관에 담겨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일제의 방해와 감시로 봉분을 쓰는 것과 친지들의 문상이 금지된 채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발견 당시 철관은 부식이 심한 상태로 두껑은 내려앉은 상태였다. 철관은 현재 경북 안동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
ⓒ 사진제공 권우성 |
권오설의 부친 권술조가 전보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는 아들의 시신이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아버지는 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3월 23일(음력) 문득 전보가 날아들었으니 흉음(凶音)을 알리는 것이었다. 하늘인가 땅인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시대의 탓인가 운명의 탓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땅을 치고 하늘에 부르짖어도 망망하고 참담하기만 했다.
남대문 앞에 다다르니 밤은 이미 깊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형무소에 갔다. 경위를 물으니 이미 치상(治喪)하여 나갔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노파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은 어제 동생의 들것에 실려 나갔습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동생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눈물을 뿌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필시 신간회로 실려 갔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권오설 2>, 522쪽
부모가 죽으면 자식은 부모의 시신을 땅속에 묻으나,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권술조는 슬픔을 이렇게 적었다.
임신년 3월 19일 아비는 눈물을 머금은 채 붓을 잡고 평생의 회포를 서술하여 영원히 하직하는 말을 고하여 이르노라.
아! 원통하고 슬프도다! 내가 너와 인간세상에서 부자(父子)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 겨우 33세인데, 이 33년 사이에 부자의 정을 나눈 것이 어찌 그 삼분의 일이라도 됐겠는가. 생사의 결별은 인간의 도리에 있어서 지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에게 한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과연 죽었느냐? 죽었다면 병으로 죽었느냐? 아니면 충직 때문에 죽었느냐? 고문으로 꺾이고 분질러짐을 당하던 날에도 죽지 않았고 고초를 받으면서도 의지와 기개를 기르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것같이 편안하게 견뎌왔는데 하루아침에 변을 당하였으니 네가 과연 병으로 죽었느냐, 충직 때문에 죽었느냐?- <권오설 2>, 514~515쪽
병사냐, 고문사냐? 제문에서 어버지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이튿날 새벽이 밝을 무렵 수의가 갖추어져서 관 뚜껑을 열어 보니 단정한 모습은 변함이 없이 잠자는 듯하였으며 금니도 번쩍번쩍했다. 그런데 고문한 흔적이 푸릇푸릇한 검은 점을 이루었으니 이 모두가 독(毒)을 쏜 자국이었다." <권오설 2>, 524쪽
일경은 출소를 앞둔 권오설 선생을 또 다시 고문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나? 일경은 권오설의 시신을 철관 속에 넣고 땅속 깊이 묻어버렸다.
* 작가 황광우는 베스트셀러 <철학콘서트>의 저자이다. 1980년대에는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집필하여 민주화운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교 시절 첫 옥고를 치른 이래 20대에는 학생운동에, 30대에는 노동운동에, 40대에는 진보정당운동에 땀을 흘렸다. 지금은 인문연구원 동고송과 장재성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역사정신과 인문정신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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