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부작용'으로 관심받으려다... 충격적 행동의 결말
[장혜령 기자]
▲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요즘 북유럽 영화의 전성기다. <어나더 라운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슬픔의 삼각형> 등 시크하게 정곡을 찌르는 날 선 감성이 인기 요인이다. 대열에 합류한 영화 <해시태크 시그네>는 자기혐오에 빠진 어설픈 관종이 결국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블랙 코미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 봤다. 불완전한 나를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지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회귀도 불가능하다면? <해시태그 시그네>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시그네(크리스틴 쿠야트 소프)는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개에게 물린 손님을 얼결에 도와 유명세를 맛본다. 사실 남자친구 토마스(아이릭 새더)가 행위예술가로 이름을 알리는 게 내심 불편했다. '걔는 그런 애가 아닌데...' 토마스의 실체를 까발리고 싶지만 꾹 참아왔었다. 하지만 점차 유명해져만 가는 토마스 옆에서 존재감은 사라져만 간다. 항상 소외당하던 시그네는 뭐라도 해야 되나 싶어 매일 고민해왔다.
그러다, 정체불명 알약으로 세상의 관심을 독차지하려 한다. 어떻게? 부작용을 알면서도 복용했다는 게 함정이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란 생각이 앞섰다. 알약을 먹으니 처음에는 피부에 발진이 시작되었다. 이내 목도 부어올라 음식물을 제대로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몸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언론은 희귀병에 걸린 시그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린 피해자를 세상은 궁금해했다.
시그네는 충분히 유명해졌지만 결코 약 복용을 멈추지 못했다. 아마 죽음의 공포보다 잊히는 게 더 두려운 이유일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떨림과 구토, 토혈, 탈모 등이 심해졌다. 꿈에 그리던 모델이 될 기회를 앞두고 있었지만 결국 충격적인 일이 터지고야 만다.
▲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흔히 관종과 나르시시즘을 비슷한 맥락으로 알고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관종은 '관심종자'를 줄여 쓴 말로 남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을 뜻한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 쪽에 가깝다. SNS의 수많은 사진과 영상은 '나 여기 있으니 봐 달라'라는 무언의 시그널이다. 내가 올린 게시물의 인기가 커질수록 충만함이 차오르며 뭐라도 된 것만 같다.
둘 중 타인의 관심에 목마른 관종인 '시그네'는 부족한 나르시시즘을 채우기 위해 일부러 약을 먹어 아프기 시작했다. 대체 애정결핍과 열등감이 얼마나 심하면 저럴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시그네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싫으면 싫을수록 오히려 내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분명 불쾌한데, 친근하고, 은은한 끌림이 생겼다. 정도의 차이였지 내 이야기인 거다.
▲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시그네가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것은 타인의 관심이다. 끔찍한 일에 자신을 던지는 무모한 용기는 무섭기까지 하다. 토마스를 질투하면서도 인정 욕구가 강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짠하다. 자의식과 자기애가 한참이나 부족한 유형이다. 아픔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과시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자기 파괴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라 할 수 있다.
시그네의 행동은 토마스로부터 출발한다. 둘은 사랑이란 단어로 명쾌하게 풀어낼 수 없는 주종관계이자, 협력관계 그 이상이다. 연인 사이 주도권을 세우는 징글징글한 커플이다. 둘은 상대를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중독적인 관계 그 자체로 보인다.
시그네와 토마스의 의미 없는 경쟁은 결말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관종 커플은 상대방보다 더 앞서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훔친 가구로 전시회를 열고 판매까지 하는 토마스는 시그네를 면박 주는 데 익숙해 보인다. 이를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인 시그네는 위험한 선택을 벌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주변의 성과나 성공에 타는 듯한 질투심과 시기심을 느낀다면 미성숙한 자아의 증거일 수 있다. 자신감이 없을 때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스스로 격려해야 한다. 자존감이라는 뿌리와 양분으로 충분히 '나'라는 존재감을 열매 맺기도 하니까 말이다. 미움받을 용기를 내고 부족하지만 계속 자기를 사랑해 주어야 한다.
덧붙여 이 영화가 흥미로웠다면 미국 감성으로 풀어낸 영화 <낫 오케이>, 아들러의 심리학을 적용한 책 <미움받을 용기>를 추천한다. <낫 오케이>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테러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이야기다. 다만, 이 영화 속 관종은 너무 얄미워서 연민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지만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쓰러진 여자친구 곁을 지키다 경찰에게 쫓겨났습니다
- 인천공항에 갇힌 외국인들... 벌써 석 달 째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양두구두(羊頭狗頭)
- '진짜 사장' CJ대한통운 교섭거부, 부당노동행위
- 남욱·정영학 "우리 힘의 근원은 검찰... 만배형 박영수가 불러왔다"
- '청담동 술자리' 수사 중인 경찰, <오마이뉴스> 기자 이름도 포렌식
- 검경, 이태원 유족 18명에게 부검 제안... 대검 거짓말했나
- 대통령실, UAE·스위스 순방 전용기에 'MBC 탑승' 허용
- "당신들에 가장 필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이해"... 생존자의 마무리 발언
- [단독] 성폭력 강의 중 욕설한 구의원, 1심에서 '유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