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발행금리 어느새 3%대 넘본다
회사채 투자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 대폭 줄어
전문가들 “추세적 하락세 이어질 것” 전망
[아시아경제 이민지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연초부터 적극적으로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금리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민간채권평가회사(민평) 평균금리가 3%대로 진입하면서 지난해 8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기관들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는 연초 효과에 금리 불확실성이 맞물린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사채 발행 시장도 조단위 주문을 받아내며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전일 입찰에서 총 4400억원어치 채권(AAA) 발행을 확정했다. 2년물 1100억원, 3년물 3300억원 규모다. 이날 입찰에는 각각 3300억원, 7500억원어치의 자금이 들어와 총 1조800억원이 유입됐다. 한전은 올해들어 총 4차례 채권 발행에 나섰는데, 조달 규모는 6700억원에 이른다.
이 기간 발행금리 하락세는 더 뚜렷해졌다. 2년물 금리는 4.0%, 3년물은 4.08%로 9일 각각 기록한 발행금리 4.2%와 4.28% 대비 20bp(1bp=0.01%포인트)씩 하락했다. 2년물 금리를 보면 지난달 22일 4.15%에서 이달 3일 4.40%로 상승했지만, 지난 5일과 9일엔 4.2%로 하락한 후 계속 내림세다. 3년물 금리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전기 요금 인상분이 시장 예상보다 낮게 책정되자 수급 부담이 부각되면서 금리(2년물 기준)가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연초 기관들의 유동성이 대거 유입되자 금리 방향성이 바뀐 것으로 분석된다.
주목할 부분은 발행 금리에 영향을 주는 민평 금리가 3%대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발행의 기준이 된 지난 11일 기준 한전의 2년물, 3년물 민평 평균금리는 각각 3.971%, 4.088%였다. 바로 전 입찰에서 2년물과 3년물의 민평 평균금리는 각각 4.218%, 4.378%였다. 2년물 민평 평균금리는 지난 8월 3% 후반대에서 5% 후반으로 뛰어오른 후 지난달 중순 처음으로 4%대에 진입했다. 금리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금리가 1%포인트 넘게 빠졌다.
유통시장에선 한전채와 국고채의 금리 스프레드가 많이 좁혀진 상태다. 전일 기준 국고채 3년물은 3.466%, 한전채 3년물은 4.081%로 61.5bp 차이를 보였다. 1년 전 수준(30~40bp)보다는 높지만, 지난해 11월 160bp 이상을 기록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전보다 스프레드가 많이 좁혀졌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한전채 금리가 급격하게 올랐던 만큼 추세적인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전기요금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올해 영업적자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란 점도 금리 하락 요인이다.
채권시장 양극화 … 비우량물은 비인기
한전채뿐만 아니라 최근 발행시장에 발을 들인 회사 대부분은 이전보다 완화된 조건에서 회사채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유동성 공급 효과가 시장에 반영된 가운데, 기관들의 풍족해진 자금 여건과, 금리 불확실성 해소 등으로 기업의 금리 부담이 줄었다.
발행시장에선 지난 10일 현대제철(AA-)과 CJ ENM(AA-)이 각각 2000억원, 1700억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조8050억원, 76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받아냈다. 현대제철은 민평 평균금리보다 최대 70bp가량 낮게 발행금리를 확정해 3500억원 증액 발행에 나설 방침이다. 유통금리 하락세도 이어지고 있다. 기관들의 회사채 투자심리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 3년물 금리에서 같은 만기의 국고채 금리를 뺀 수치)는 한달 전 174bp에서 전일엔 123bp를 기록해 50bp나 축소됐다. 회사채 3년물 평균 유통 금리는 4.69%로 한달 전(5.35%)보다 크게 하락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 결정에 부담을 줬던 환율이 1240원대로 내려왔고, 인플레이션도 둔화와 유럽의 에너지 대란 우려 완화 등이 크레딧 강세에 힘을 더했다”며 “수급적으로도 연기금과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매수세, 기관들의 저가 매수세가 몰리면서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채를 비롯해 우량등급 채권이 강세를 보이면서 A등급의 비우량채권이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온기가 퍼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경기 둔화에 따른 A등급 실적 저하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로 A등급을 부여받은 건설사들의 신용도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A등급은 펀더멘털 우려뿐만 아니라 A등급 공모 회사채 지원 정책이 코로나19 때보다 적은 상황”이라며 “저신용 회사채·CP 매입기구(SPV)와 같이 A등급 공모 회사채를 지원하는 정책이 나와야 불균형 해소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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